한국일보

‘투키디데스의 함정’

2018-09-26 (수) 조윤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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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세력 사이에 너무나 현격한 힘의 차이가 존재하면 오히려 갈등은 찾아보기 힘들다. 또 두 세력의 힘이 대등한 균형을 이루고 있을 때는 아슬아슬하게나마 현상유지 상태가 지속된다. 관계가 가장 불안정해지고 충돌의 위험이 최고조로 치닫는 상황은 한 세력이 다른 세력의 턱밑까지 치고 올라왔을 때이다.

이것은 고대 그리스의 역사학자 투키디데스가 그리스 도시국가였던 아테네와 스파르타 사이에 벌어진 패권전쟁을 연구한 후 내린 결론이었다. 그는 ‘펠로폰네소스 전쟁사’에서 “마침내 그리스는 누가 보더라도 국력이 절정에 달했음을 알 정도가 됐다. 스파르타가 더 이상 참아낼 수 없다고 느끼고 전쟁을 시작해 가능하다면 아테네의 힘을 무너뜨리기로 결정한 것은 바로 이런 상황에서였다”고 썼다. 그러면서 투키디데스는 “전쟁이 필연적이었던 것은 아테네의 부상과 그에 따라 스파르타에 스며든 두려움 때문이었다”고 진단했다.

이것이 새로운 강국이 부상하면 기존의 패권국가가 두려움을 느끼고 무력을 통해 두려움을 해소하려 들면서 전쟁이 발생한다는, 이른바 ‘투키디데스의 함정’이다. 국제관계학에서 자주 인용되는 이론이다. ‘투키디데스의 함정’은 새롭게 부상하는 신흥세력이 지배세력의 자리를 차지하려 위협해 올 때 발생하는 자연스럽고도 불가피한 혼란을 이른다. 이 진단은 현재 미국과 중국 사이에 벌어지고 있는 갈등과 충돌을 거의 완벽하게 설명해주고 있다.


트럼프가 촉발한 중국과의 무역전쟁은 단순한 경제적 충돌이 아니다. 무서운 속도로 미국의 턱밑까지 치고 올라온 중국을 견제하고 주저앉히려는 반사적이면서 동시에 고도로 계산된 대응이라 봐야 한다. 트럼프라는 퍼스낼리티가 더해지면서 그 양상이 좀 더 과격해지고 강도가 세진 것뿐이다.

중국은 이미 지난 2010년 일본을 밀어내고 GDP 기준 세계 2위의 경제대국으로 올라섰다. 여기에 만족하지 않고 군사적 외교적으로도 미국을 위협할만한 위치에 올랐다. ‘미국 제일주의’를 표방한 트럼프가 중국 견제와 손보기에 나선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단지 그 방식이 보복관세를 통한 무역전쟁인 것뿐이다.

트럼프의 대중 무역전쟁은 소기의 성과를 거두고 있다. 중국 기업들은 큰 타격을 받고 있으며 시진핑의 리더십도 상당한 내상을 입었다. 하지만 미국과 트럼프가 입은 타격도 적지 않다. 중국의 집요한 선별공격으로 미국의 농민들과 자동차업계가 큰 피해를 입고 있다. 최근 수천 개 미국기업들은 트럼프 관세가 미국경제를 해친다며 이에 반대하는 캠페인에 돌입했다.

미중 간의 충돌은 누군가 먼저 핸들을 돌려야만 승부가 나는 치킨게임 양상이 돼가고 있다. 이러다간 자칫 공멸할 수 있다는 위기감도 높아지고 있다, 그렇기에 막판 극적인 대타협이 이뤄질 것이라는 낙관적 관측이 유력하지만 누구도 이를 장담할 수는 없다.

미국의 대표적인 안보 및 국방정책 분석가로 베스트셀러 작가이기도 한 그레이엄 앨리슨은 국제관계에서 “과장된 자기중심주의는 오만함이 되고 비이성적인 두려움은 피해망상이 된다”고 지적한다. 20세기 초 지배세력이었던 영국의 전형적 불안과 신흥세력인 독일의 야심과 분노가 충돌해 발생한 것이 1차 세계대전이라는 게 앨리슨의 분석이다.

현재의 무역전쟁은 어떤 형태로든 수습이 되겠지만 치고 올라오는 중국과 이를 억누르려는 미국의 충돌은 반복될 것이다. 미국과 중국은 극도의 우월의식에 사로잡혀 있는 나라들이다. 특히 두 나라의 현 지도자들은 앨리슨의 표현에 따르면 “자기 나라가 위대해지길 바라는 깊은 열망의 화신들”이다.

만약 21세기 세계대전이 일어난다면 그것은 미국과 중국의 충돌이 될 것이라고 예견하는 사람들이 많다. 현실성이 그다지 높지 않고 상상하기도 싫은 시나리오다. 하지만 전쟁은 항상 예측하기 힘든 우발적인 요인들에 의해 일어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전쟁은 이성의 산물이 아니다. 미국과 중국 사이에 고조되는 갈등과 위기를 잘 관리해야 하는 이유다.

<조윤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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