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애국자의 길

2018-09-25 (화) 김갑헌 / 맨체스터대 철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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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달 존 매케인 연방 상원의원이 세상을 떠났다. 대통령에 준하는 장례식을 보면서 조국을 위해 평생을 바친 한 애국자의 삶과 그 삶을 견인한 원칙이 과연 무엇이었는지 생각해 보았다.

그는 미국의 유수한 군인 가문에 태어나서 군인의 길을 선택했다. 해군 사관학교에 입학하던 그 날로부터 시작된 그의 공적인 삶은 전형적인 군인의 길 이상의 것이었다. 전쟁 포로로 잡혀있던 시절 그를 고문했던 베트남 장교의 술회는 매케인의 인품을 아마도 가장 잘 보여주는 기록일 것이다.

“그는 어떤 상황에서도 장교의 품위를 잃은 적이 없다. 조기석방의 기회가 여러 번 있었으나 그는 그 것을 거절했다. 다른 포로들이 잡혀 있는데, 자신만 특별히 먼저 석방되는 것을 수치로 여기는 듯 했다. 솔직히 이해할 수 없었다.”


그의 장례식에는 전직 대통령 세 명을 비롯해 미국의 소위 유명인사들은 모두 모인 것 같았다. 그의 삶과 죽음을 애도하는 전직 대통령들의 조크 섞인 조사가 이어지고 딸 메간의 감정에 북 바치는 조사가 또한 깊은 인상을 남겼다.

그러나 나의 느낌으로는 헨리 키신저 전 국무장관의 조사가 가장 무게와 깊이가 있는 것 같았다.

전쟁 종결을 협상하기 위해 하노이를 방문했을 때, 베트남 당국은 매케인을 키신저의 전용기에 태우고 돌아가도록 제안했다고 한다. 키신저는 “미국은 아무도 특별대우를 하지 않는다”고 이를 거절했다고 기억을 더듬었다.

마침내 포로들이 석방되고 그들이 백악관에 초청 되었을 때, 매케인은 키신저에게 다가와 “나의 명예를 구해 주어서 대단히 감사하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 장관에 그 군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평생을 군인으로 또 상원의원으로 미국과 미국인들에게 봉사한 그의 삶은 미국이 추구하는 이상과 이념을 국내외에 실천하는 것이었다. 힘에 의한 세계평화, 자유, 민주, 인권 등 미국의 기본가치를 수호하고 그것들을 세계에 전파하는 것이 그의 사명이었다.

나는 그를 깊게 존경하는 사람 중의 하나이다. 그러나 그의 정책에 다 찬성하거나 동의한 것은 아니었다. 그중에도 특히 그의 러시아 적대 정책에는 항상 동의하지 않았다.

비록 러시아의 이념과 이상이 미국과 같지 않더라도 러시아를 적으로 삼아야 할 합리적인 이유를 나는 찾기 어려웠다. 러시아의 크리미아 반도 합병도 사실 엄밀하게 따져보면 나토(NATO)의 분별없는 동방 팽창정책에 대한 러시아의 자위적 반응이었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었다.


또 하나, 그가 대통령으로 출마했을 때 지명한 알래스카 출신 여자 부통령 후보에 대한 실망감은 아직도 나에게 충격으로 남아 있다.

매케인 상원의원은 여야로 부터 다 존경을 받은 사람이었다. 적을 동지로 만들고, 그를 고문한 자들을 용서했으며, 정치적 견해가 다른 민주당 의원들이라도 그들이 미국과 미국민을 위해 같이 일하는 동료라는 의식이 분명한 사람이었다.

애국자, 정치인, 전장의 용사, 그리고 영명한 지도자였던 존 매케인은 우리 곁을 떠났지만 그가 보여준 애국자의 길과 삶속에 실천했던 여러 덕목들은 길이 후세에 남는 표상이 될 것이요 자라나는 청소년들에게는 빛나는 본보기가 될 것이다.

<김갑헌 / 맨체스터대 철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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