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아시안 갑부의 삶

2018-09-12 (수) 하은선 사회부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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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주 연속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했던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스’(Crazy Rich Asians)는 정통 로맨틱 코미디의 정석대로 만든 영화다. 메이저 영화사 워너 브라더스가 배급한 이 영화는 지금까지 3,865개 극장에서 상영돼 개봉 4주차 1억3,577만 달러를 돌파했다.

올 아시안 캐스팅에다가 최근 메이저 영화사가 기피하는 중예산(2,000~6,000만 달러) 로맨틱 코미디가 2018년 개봉영화 흥행성적 13위에 올랐으니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스’가 웰-메이드 영화이건 확실하다. 개봉 첫 주말 일부 아시안들은 상영관 티켓을 통째로 구입, 지인들을 초대하며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스’를 지지했다.

실제로 개봉 첫 주말 LA 인근 상영관들은 전석 매진을 기록했다. 또, 흥행세가 지속되면서 호기심에 극장을 찾은 비아시안 관객들은 ‘아시안 갑부는 저렇냐’는 비아냥거림으로 상영관을 나섰다. 그런데 2시간의 영화 상영 동안 자리를 박차고 나온 관객은 없었다고 한다.


아시안 남녀가 주인공인 로맨스를 비아냥거림이든 호기심이든 나름대로 재미있게 본 것이다. 영화 제목에 등장하는 ‘수퍼 리치’를 넘어선 ‘크레이지 리치’ 즉 아시안 갑부의 삶은 첫 장면에서 확실히 보여준다.

1985년 비오는 밤 어린 아들딸과 영국의 한 부틱 호텔을 찾아간 일레너 영(미셸 여)은 무례한 호텔 매니저의 태도에 전화 한 통화로 그 호텔을 사버린다. 2016년 중국 자본으로 투자한 영화들이 할리웃 흥행에 실패하며 비웃음을 당하자 아예 할리웃 영화제작사 레전더리 그룹을 인수해버린 중국의 모 그룹처럼 말이다.

누군가는 이 영화가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스’가 아니라 ‘크레이지 리치 차이니즈’의 삶이라고 하지만 글쎄다. 부의 정도가 다르고 배포가 다르긴 해도 ‘아시안’을 통칭하는 게 맞다. 배우 캐스팅을 보면 다양한 국적의 아시안들이 등장한다. 남자 주인공 닉 영을 연기하는 헨리 골딩과 어머니 미셸 여는 말레이시아 출신이고, 뉴욕대 경제학과 교수가 된 여자 주인공 레이첼 추로 등장하는 콘스탄스 우는 타이완 출신이다.

크레이지 리치는 아니지만 ‘수퍼 리치’에 속하는 레이첼의 친구 가족으로는 한인 켄 정, 한인 어머니와 중국계 아버지를 둔 아콰피나가 나온다. 이들 모두 액센트가 있는 영어 구사로 억지 웃음을 만들게 하지도 않고 빼어난 무술 실력을 선보이는 것도 아닌데 2시간이 후다닥 흐른다.

웬만한 할리웃 스타의 저택 파티보다 화려하고 이색적인 싱가포르 갑부의 호화 파티와 결혼식이 로맨틱 코미디 주 관객인 여성의 허영심을 충족시켜주긴 한다.

미국영화협회(MPAA)가 매년 발표하는 관객 동향보고서를 보면 2012년부터 2017년까지 아시안 아메리칸 전 체인구 중 영화관을 찾는 비율은 3.5~3.9% 남짓이다.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스’가 상영된 올해는 아마 영화를 보러 극장을 찾은 아시안 인구가 가파르게 상승했지 싶다.

<하은선 사회부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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