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한반도의 봄은 쉽게 오지 않는다

2018-09-05 (수) 신기욱 스탠포드대 아시아태평양 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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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의 봄은 쉽게 오지 않는다

신기욱 스탠포드대 아시아태평양 연구소 소장

한반도에 불던 봄기운이 찬바람에 다시금 움츠러드는 듯하다. 옷장에 넣었던 겨울옷을 다시 꺼내 입어야 할지, 봄을 기다리는 마음에 조바심이 난다. 날씨 이야기가 아니다. 날씨만큼이나 변화무쌍한 한반도의 안보 상황이다.

4월초 평양에서 열렸던 남북한 합동 공연의 주제 ‘봄이 온다’가 말해주듯이 전쟁의 위협에 있던 한반도에 평화의 봄기운이 왔다. 4월말 판문점에서는 남북 간이 그리고 6월에는 싱가포르에서 미북 간에 정상회담이 열렸고, 북한은 미사일 실험장 폐쇄와 미군 유해의 송환을, 미국은 한미합동군사훈련 중지 등을 통해 평화와 화해 무드를 이어갔다. 하지만 기대했던 북한의 비핵화는 지지 부진하고 미국은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의 4차 방북을 취소하는 등 다시 대결국면으로 전환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한미 간에도 종전선언과 대북제재를 놓고 이견이 노출되고 있으며 미국 내 전문가들은 이러다 비핵화의 성과는 없이 한미동맹에 균열만 가는 것은 아닌가 우려하고 있다. 중국과 공공연한 무역전쟁 중인 미국은 중국이 북한 비핵화 노력에 협조하지 않는다며 노골적인 불만을 쏟아내고 있다. 9월로 예정되었던 시진핑 주석과 문재인 대통령의 방북 계획도 불투명해지고 있다.


북한은 지난 6개월 동안 중국, 한국, 미국을 상대로 대대적인 ‘정상외교’를 통해 판을 주도해 왔다. 문재인 정부를 활용해 미북 정상회담 합의를 이끌어 낸 후 이를 레버리지로 북중 정상회담을 갖는 등 자신들의 전략적 가치를 최대치로 올렸다. 이를 통해 북한은 ‘정상국가’의 이미지를 만들고 중국과 한국의 대북제재를 완화시키는 데에도 성공했다.

미국이 다시 강경책으로 돌아서더라도 한 중이 적극 협조하기는 어려워졌고, 대북정책을 두고 한미 간에 균열마저 생긴다면 북한에겐 보너스다. 비핵화 속도를 최대한 조절하면서 미국을 향해 종전선언과 대북제재완화 요구 등 공세를 강화하고 있는데, 폼페이오의 방북 취소도 미국의 선조치가 없으면 비핵화의 진전이 어렵다는 김영철 통일전선부장의 편지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후 줄곧 북한 문제를 최우선 외교안보 사안으로 다루어왔으며 6.25 전쟁 참전 이후 한반도가 지금처럼 미국 외교안보의 탑 이슈가 된 적은 없다. 특히 러시아 대선 개입, 섹스 스캔들 등으로 궁지에 몰린 트럼프로서는 북핵 위기를 정치적 호재로 여기고 있으며, 정치적 야심이 있는 폼페이오도 북핵이라는 난제를 해결한다면 포스트 트럼프를 꿈꿀 수 있게 된다.

하지만 강온전략을 통해 판을 흔들며 북한을 다룰 수 있다고 믿었던 트럼프는 전문가들의 예상대로 비핵화 과정에서 고전하고 있다. 북한이 그토록 원하던 미국과의 정상회담을 너무 쉽게 내주었다는 워싱턴 조야의 비판 때문에, 종전선언은 정치적, 상징적인 것에 불과하다는 한국 입장에 동조하기에는 정치적 부담이 크다. 정상회담 취소, 한미연합 군사훈련 중지, 폼페이오 장관의 방북취소 등 주요 사안을 한국과 상의 없이 일방적으로 발표해 문재인 정부의 입장을 곤란하게 하기도 했다.

미 북 사이에서 한국은 더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다. 미 북, 남북정상회담 등을 이끌어내며 ‘중재자’를 넘어서 ‘운전자’라고까지 호기를 부렸지만 현 상황을 타개할 복안과 전략이 마땅치 않다. 북한은 판문점 선언을 이행하라는 압박을 가하고 미국은 종전선언이나 대북제재에 있어 북한 편에 서지 말라고 으름장을 놓고 있다.

실제로 미국을 포함한 국제사회는 문재인 정부가 말로는 북한의 비핵화를 외치지만 실제로는 남북경협 등 남북관계 개선에만 관심을 갖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표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당장 이달 평양에서 열기로 한 정상회담에도 고민이 클 수밖에 없을 것이다. 대북제재가 완화되지 않은 상태에서 북한에 줄 선물도 마땅치 않고, 회담의 성과도 불투명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미 북 모두 동상삼몽을 꾸고 있을지 몰라도 판을 깨기에는 너무 부담이 크다. 밀고 당기는 우여곡절은 계속되겠지만 협상국면은 한동안 지속될 것이며 이번 대북특사의 성과를 기대해 본다. 한반도 평화의 봄날은 쉽게 오지 않으며, 조바심보다는 인내심이 더욱 필요한 시점이다.

<신기욱 스탠포드대 아시아태평양 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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