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정말 ‘사회주의 확산’ 이 걱정된다면

2018-08-22 (수) 12:00:00 조윤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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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서 정치경제학 이론으로서 마르크스주의만 언급해도 경기에 가까운 반응을 보이는 독자들이 있다. 전후 맥락은 살피지도 않은 채 마르크스라는 이름을 언급했다는 사실만으로 ‘불온 논객’의 딱지를 붙이곤 한다. 분단과 냉전의 오랜 역사를 거쳐 오면서 이런 의식이 마치 본능처럼 생성되고 굳어진 것을 탓하고 싶지는 않다.

그런데 이런 사람들이 정말 위기감을 느낄만한. 또 그래야만할 추세가 최근 확산되고 있다. 신자유주의 이후 자본주의의 문제점들이 악화되면서 “자본주의의 대안으로 사회주의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젊은이들이 급속히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미국의 한 반공단체가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1980년 이후 출생한 밀레니얼들 가운데 44%가 사회주의국가에서 살고 싶다고 밝혔다. 자본주의가 좋다고 한 응답자는 이보다 적은 42%였다. 설문조사 당사자들이 크게 당황했을만한 결과이다. 물론 연령층이 올라갈수록 사회주의를 선호하는 비율은 낮아진다.


이런 여론의 추이는 갑자기 나타난 게 아니다. 지난 대선에서 사회민주주의자로 분류되는 버니 샌더스에 쏠렸던 젊은이들의 열광과 절대적 지지에서 이미 확인된 바 있다. 물론 젊은층이 호감을 갖는 사회주의는 북한과 중국, 구소련 같은 절대주의 체제가 아니다. 정치적으로 시민의 자유를 보장하면서 경제적으로는 누진과세를 통한 복지확대를 추구하는 유럽식 사회주의를 뜻한다. 과거 공산주의에 대한 기억이 강한 노년층들은 이런 사회주의에 대해서도 거부감을 떨치기 힘들 것이다.

사회주의에 대한 젊은층의 지지가 높아지는 것은 자본주의가 굴러가는 방식과 불평등이 심화되는 경제적 현실에 대한 반동 현상이다. 공산주의 붕괴 후 자본주의의 우월함만을 맹신하며 무분별한 탐욕을 드러내온 극소수 권력에 대한 거부감의 표출이다.

젊은이들에게 사회주의는 더 이상 금기어가 아니다. 가진 사람들은 급속히 더 부자가 되고 있는 데 반해 서민들은 제자리걸음조차 하기 힘든 상황이 지속된다면 사회주의에 대한 호의적 여론은 계속 높아질 수밖에 없다. 맹목적 자본주의 옹호론자들은 심각한 위기의식을 가져야 한다.

몇 달 전 토마 피게티를 비롯한 5명의 저명한 경제학자들은 보고서를 통해 전 세계의 소득불평등이 극단적 수준으로 커졌으며 이를 방치할 경우 파국으로 치닫게 될 것이라고 경고한 바 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37년 간 전 세계 상위 0.1%인 700만 명 부자가 가지고 간 세계의 소득 및 수입 증가분은 하위 30%인 38억 명에게 돌아간 것과 같다. 미국의 경우에도 1980년에는 22%였던 상위 1% 부자의 몫이 2014년에는 39%로 급증했으며 격차의 확대속도 또한 갈수록 빨라지고 있다.

보고서의 결론은 단순하면서도 강력하다. 불평등을 불가피한 것으로 여기지 말라는 것이다. 올바른 정책과 제도를 통해 불평등을 줄여갈 수 있다는 것이다. 심각한 부작용을 보이고 있는 자본주의가 건강을 회복하려면 우선 내부를 곪게 만들고 있는 병증을 찾아내 도려내야 한다. 이것이 바로 국민을 위한 정치, 좋은 정치가 해야 할 일이다.

얼마 전 한국에서는 개헌을 둘러싸고 시끄러운 논쟁이 벌어졌다. 모두가 이런 저런 명분들을 내세웠지만 결국은 정국의 주도권을 잡기 위한 싸움일 뿐이었다. 그런 가운데 수구야당은 여당이 내놓은 개헌안에 대해 ‘사회주의 개헌’이라며 습관적인 색깔론 공세를 벌였다. 이와 관련해 온갖 가짜뉴스들까지 기승을 부렸다.

하지만 이들이 진정 사회주의의 발호를 우려하고 경계한다면 전 세계 젊은이들 사이에 확산되고 있는 사회주의에 대한 호의적 여론이 무엇에서 비롯되고 있는지부터 들여다보고 성찰해야 한다. 자신들이야말로 이런 추세의 가장 큰 원인제공자들이라는 통렬한 책임의식을 가져야 한다는 말이다. 색깔론 공세를 펴기 전에 병들고 고장 난 자본주의를 어떻게 손 볼 것인가에 대한 고민부터 하는 게 순서이다.

<조윤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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