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스타 목사’의 추락

2018-08-15 (수) 조윤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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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성공한 개신교회로 꼽혀온 시카고 인근 소재 윌로우크릭 교회의 빌 하이벨스 목사가 지난 4월 성추행 의혹 속에 급작스레 사임해 교계를 놀라게 했다. 당시 하이벨스 목사는 퇴임을 6개월 앞둔 상태. 40여년의 목회를 마무리 하던 시점이었다.

‘열린 교회’를 표방하며 하이벨스 목사가 1970년대 중반 세운 윌로우크릭 교회는 그의 리더십 아래 성장을 거듭, 교인수 2만5,000에 이르는 미국의 대표적 메가 처치가 됐다. 거의 매년 미국 내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교회 1위를 차지할 만큼 개신교 내 위상은 절대적이었다. 성장에 목을 매는 한국교회들 사이에 윌로우크릭 따라 하기 열풍이 불기도 했다. 하이벨스는 오바마 이민법 개혁을 지지하는 등 사회문제에 목소리 내기를 주저하지 않은 목회자로도 유명하다.

교계와 교인들의 존경과 신뢰를 받던 하이벨스 목사의 입지가 흔들리기 시작한 것은 4년 전 그가 여성신도들과 사역자들에게 부적절한 성적 발언과 행동을 했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이와 관련해 내부조사를 받으면서부터였다. 일단 내부조사에서 별 문제가 없는 것으로 결론이 나고 교인들도 지지를 보내면서 스캔들은 일단락되는 듯 했다.


하지만 지난해 10월 지역신문이 하이벨스 목사와 관련한 성추문 의혹을 다시 조명하고 피해를 당했다고 주장하는 여성들이 계속 나오면서 분위기가 변했다. 결국 하이벨스 목사는 지난 4월 “오해받을 수 있는 상황을 초래한 처신에 대해 교회에 사과한다”는 말과 함께 사임했다. 하지만 성추행 사실을 인정한 것은 아니었다. 자신에 대한 의혹을 그는 “사역을 흠집 내기 위한 시도”라며 부인했다.

그런 가운데 열흘 전 하이벨스 목사의 결백주장을 뒤엎는 한 여성의 결정적 증언이 나왔다. 1980년대 그의 비서로 일했던 여성이 “하이벨스 목사는 내 가슴을 여러 차례 더듬었으며 오럴섹스를 요구하기도 했다”고 폭로한 것이다. 그녀는 당시 상황을 일기와 노트로 아주 꼼꼼하게 기록해 놓았다.

이 증언이 나오자 지난해 하이벨스 목사에 의해 공동 목회자로 임명됐던 여성목사 헤더 라슨(43)과 30대인 스티브 카터(39)목사가 사임했다. 또 내부조사를 담당했던 장로위원회 소속 장로들도 줄줄이 자리에서 물러났다. 장로들은 “하이벨스 목사에 대해 갖고 있던 신뢰라는 렌즈를 통해 피해 주장들을 들여다보는 바람에 판단이 흐려졌다”고 사과했다.

여성을 후임 목회자로 세울 만큼 열린 가치관을 가지고 있던, 그래서 많은 존경을 받았던 하이벨스 목사도 성적 유혹의 돌부리에 걸려 넘어졌다. ‘셀러브리티’ 지위에 올랐던 개신교 스타 하이벨스 목사의 추락이 교계 전반에 몰고 온 충격과 파장은 클 수밖에 없다.

또 윌로우크릭 교회 장로들의 고백은 교회의 셀프자정, 특히 힘 있는 목회자에 대한 조사와 단죄가 왜 쉽지 않은지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교회 내에서 창립자 담임목사의 위치는 절대적이다. 교회 내부인사들이 목회자의 추문과 비리를 객관적으로 조사하기란 구조적으로나 감정적으로 대단히 어렵다.

성직자들의 추문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종교를 가리지 않는다. 하이벨스 목사의 추락을 보며 떠올린 것은 “종교는 인류의 최고 영예이며 또한 가장 깊은 치욕”이라던 20세기의 대표적 신학자 폴 틸리히의 말이다. 틸리히는 거룩한 것이 나타나는 구체적 대상이 거룩한 것 자체와 혼동되는 것을 종교의 가장 치명적인 위험이라 봤다. 그는 이것을 ‘종교의 악마화’라 부르며 경계했다.

절대적 위치에 올라가 있는 성직자들이 거룩한 것 자체와 혼동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이들의 판단력과 도덕적 민감성은 무뎌지기 쉽다. 한 때는 순수했을 대형교회 유명목사들과 큰 스님들의 추문과 타락이 끊이지 않은 이유다.

수십 년간 높이 쌓아 온 물질은 쉬 사라지지 않는다. 하지만 평생 쌓아 온 명예가 날아가는 건 한순간이다. 특히 높은 윤리적 도덕적 기준이 적용되는 성직자들의 경우 작은 추문 하나도 치명적일 수 있다. 하이벨스 목사의 추락이 한인 성직자들에게 던져주는 교훈이다. 그러니 처신을 똑바로 해야 한다. 특히 성직이 권력의 성향을 갖는 문화 속에서는 더욱 그렇다.

<조윤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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