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3개월, 3일, 그리고 3주

2018-08-01 (수) 하은선 사회부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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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개월 준비했고 3일을 쫓겨났다. 아마도 3주는 지나야 일상으로 돌아갈 듯하다. 스무 가구가 거주하는 건물의 터마이트 텐트 퓨미게이션이 지난 주 끝났다. 분명 페스트 컨트롤 검사결과 우리 집에는 터마이트가 없다는 통보가 왔는데 ‘왜’라는 이유는 꺼내지도 못했다. 나무를 갉아먹고 산다는 터마이트가 건물에 존재하고 언제 우리집으로 침입해 문이나 바닥, 가구 등으로 옮겨 다닐지 모른다는 경고에 입을 꾹 다물었다.

‘아쿠아리우스’(Aquarius)라는 영화 속 주인공 클라라에게 너무도 감정이입이 된 시간이었다. 브라질의 항구도시 헤시피를 배경으로 한 이 영화는 노년의 클라라가 그녀에게 집 이상의 의미를 지닌 아쿠아리우스의 재개발을 거부하며 현재에 위협당하는 과거를 지키려는 필사의 노력을 담았다.

평생을 살아온 오래된 건물 아쿠아리우스를 떠나지 않으려는 클라라에게 재개발을 추진하는 건설사는 협박 아닌 협박을 거듭하는데 최악이 그녀의 집에 일부러 터마이트를 집어넣은 행위다. 자신의 집을 못쓰게 만드는 터마이트를 발견한 클라라는 경악한다. 개인의 역사가 깃든 집을 갉아먹게 한 행위에 분노한 클라라는 보란 듯이 터마이트를 싸 들고 건설사를 찾아가 책상 위에 펼쳐 보이며 영화는 끝이 난다. 터마이트라는 존재가 지닌 위협이다.


터마이트 박멸을 하면 되지 뭐가 걱정인가 싶겠지만 겪어본 사람은 안다. 텐트 속으로 독개스를 넣기 때문에 건물 내 살아 숨쉬는 존재는 모두 죽어버린다는 사실. 집을 철저히 비워야 하고 창문과 출입문, 심지어 캐비넷과 서랍장까지 문이라는 문은 모두 열어두어야 개스가 저장되지 않는다고 한다.

문을 열어두라니. 요즘 같은 세상에 이런 날벼락도 없다. 시큐리티를 고용해 건물 보안을 책임진다 했지만 도둑 걱정을 안할 수 없다. 게다가 누군가 보내준 방독면을 쓴 도둑들의 유투브 동영상에 모두가 안절 부절했다. 울며 겨자먹기로 3개월 전부터 도둑이 보기엔 하등의 값어치가 없어도 소유주에게는 더없이 소중한 물건들을 챙겨 옮기기 시작했다. 그래도 미심쩍어 집을 나오기 이틀 전 가정용 보안카메라인 ‘아마존 클라우드 캠’을 설치했다. 카메라 앞으로 벌레가 날아가기만 해도 ‘움직임 포착’이라는 문자가 날아든다. 귀찮다 싶을 정도로 사소한 움직임에도 반응하는 캠의 성능을 확인하니 좀 안심이 되었다.

그리고 3일 후 다시 집으로 들어갔다. 3개월 동안의 야단법석이 무색하게 건물은 고요했다. 캠으로 포착된 움직임도 터마이트 회사 직원들의 순찰로 인함이었고 건물을 가득 채웠다는 독개스는 거의 기화해 미세한 흔적만이 남아있을 뿐이었다. 옮겼던 짐을 다시 들여놓으려면 3주는 걸릴텐데. 헛된 노력에 쓴웃음만 나온다.

<하은선 사회부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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