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황무지 모래톱’

2018-07-24 (화) 12:00:00 고형렬 (195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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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무지 모래톱’

박다애,‘무제’

해변의 황무지를 쓰고 죽고 싶다
풀 서너줄기 이어진 석양의 모래톱

고독한 동북아시아,
변방의 한 시인 어린 킹크랩의 눈단추처럼
늘 기울어진 하늘을 찾는 물별을
기다리며

스스로 황무지가 된 해변의 나는
안쪽에 옹벽을 올린 절벽의 주거지에서
새물거리는 동북의 샛눈


황무지 모래톱에 눕고 싶어라
황무지 풀밭에서 나를 붙잡고 싶지 않아라
못 죽어 눈물도 없이

바람 우는 황무지 해당화야
흰 불가 갯메꽃 나 수술에서 혼자 운다

먼 곳에서 해변의 황무지가 된다

고형렬 (1954 -) ‘황무지 모래톱’

왜 우리는 버려진 것에 매혹되는가. 폐허에는 대체 무엇이 있어 우리를 이토록 유혹하는 것일까. 슬프고 고독한 바람과 별과 꽃 때문일까. 황야에 기대어 핀 존재들의 뼈아픈 열망 때문일까. 한 때 그것이었던 우리의 기억 때문일까. 아니면 돌아갈 본향이라서 일까. 누구도 알 수는 없으리. 그러나 인적 없는 바닷가, 절벽 사이로 해당화가 피고 푸른 보라의 갯메꽃이 필 때, 그 버려진 모래톱 같은 곳을 찾아가 보시라. 당신도 황야의 유혹에 빠지지 않을 수 없으리, 어느 슬프고 허무한 날에. 임혜신<시인>

<고형렬 (195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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