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큰 꿈’ 을 안고 뛰는 ‘작은 나라’

2018-07-18 (수) 조윤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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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렬한 스포츠팬으로서 아주 오래전부터 가져왔던 호기심 가운데 하나는 발칸반도의 조그만 나라 크로아티아는 왜 그처럼 스포츠에 강할까라는 의문이었다. 물론 그들이 국제무대서 거둬온 성적에 대한 경이로움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이 호기심은 1992년 바르셀로나올림픽에서 시작됐다. 바로 전 해인 1991년 유고연방으로부터 분리 독립한 인구 400만의 소국 크로아티아는 바르셀로나올림픽 농구에서 즐비한 강팀들을 꺾으며 은메달을 차지해 세계를 놀라게 했다. 나 역시 그랬다.

이름조차 너무나 생소한 갓 독립한 작은 나라가 미국 드림팀이 참가한 올림픽 농구에서 은메달을 차지한다는 건 상상하기 힘든, 기적에 가까운 일이다. 마이클 조던의 조력자로서 시카고 불스 전성기를 이끌었던 토니 쿠코치가 세계무대에 이름을 알린 것도 바로 이 올림픽이었다. 그는 올림픽 다음해인 1993년 불스와 계약을 맺는다. 이후 NBA를 거쳐 갔거나 현재 뛰고 있는 크로아티아 출신은 30명에 육박한다.

발칸의 스포츠 강국 크로아티아의 면모는 이번 러시아 월드컵을 통해 다시 한 번 확인됐다. 비록 결승에서 프랑스에게 패해 준우승에 머물렀지만 이들이 보여준 투혼은 전 세계 축구팬들에게 깊은 인상을 심어주기에 충분했다. ‘작은 나라, 큰 꿈’을 슬로건으로 내걸었던 크로아티아의 목표는 현실이 됐다.


축구뿐 아니다. 이미 언급한 농구 역시 세계 최고수준이며 핸드볼과 수구 등 다른 구기종목에서도 세계정상이다. 팀 스포츠 뿐 아니라 테니스 같은 종목에서도 메이저 대회 우승자를 여러 명 배출했으며(2005에는 160개국이 겨룬 국가대항전 데이비스컵에서 우승했다) 육상스타들도 열거하기 힘들 정도로 많다. 크로아티아에 이른바 ‘대국’들만이 꿈꿀 수 있는 스포츠 성취를 안겨주고 있는 힘의 원천은 무엇일까 궁금해지는 건 당연하다.

이 질문을 크로아티아인들에 던지면 즉각적으로 돌아오는 대답은 한결같다. ‘선천적 능력’이라는 것이다. 스포츠는 유전적인 자질이 크게 좌우한다. 크로아티아를 여행하는 외국인들이 무엇보다 놀라는 것은 남자들의 큰 키이다. 크로아티아 성인 남성들의 평균키는 5피트11인치(180.4cm)이다. 크로아티아 남부로 가면 평균키는 184cm로 늘어난다. 일단 신체조건에서 다른 나라들을 압도한다.

하지만 이것만으로 크로아티아의 경이로운 성취를 다 설명할 수는 없다. 크로아티아는 여전히 작은 나라이고, 체격이 뛰어난 다른 유럽 국가들도 많기 때문이다. 선천적 축복을 후천적 결과로 만들어 내는 것은 체계적인 육성프로그램이다. 크로아티아는 이것이 뛰어나다.

축구의 경우 12살부터 연령별 프로그램을 갖고 단계적으로 어린 선수들을 키운다. 전국적으로 커리큘럼이 같다. 기술적인 면과 선수들이 갖고 있는 비전에 통일성이 있다. 이번 월드컵에서 크로아티아 선수들이 보여준 유기적인 플레이는 유소년 시절의 이런 과정을 통해 다듬어진 것이다.

타고난 유전자와 체계적인 육성프로그램에 더해 크로아티아 스포츠를 떠받치고 있는 또 하나의 기둥은 ‘애국심’이다. 크로아티아인들의 애국심은 뜨거운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선수들의 머릿속에는 “스포츠를 통해 크로아티아라는 나라가 있다는 걸 세계에 알릴 수 있는 것은 영광스러운 일”이라는 인식이 깊이 박혀있다.

월드컵이 한창이던 지난 6월 독일의 유력지 ‘빌트’는 인구대비 올림픽 메달 등을 기준으로 크로아티아를 ‘세계 최고의 스포츠국가’로 선정했다. 마치 이번 월드컵에서의 선전을 예견이라도 한 것 같다. 크로아티아는 이런 칭호를 받을만한 충분한 자격이 있다.
크로아티아의 성취는 한국에 좌절감과 희망을 동시에 안겨준다. 그들의 타고난 체격의 벽은 높아 보이지만 체계적인 육성프로그램은 우리도 얼마든 가능한 것이니 말이다. 독일전에서 보여주었듯 투혼은 이미 정평이 나 있는 나라가 아닌가.

작은 존재들이 흥하는 스토리는 항상 우리에게 감동과 용기를 준다. 러시아 월드컵에서의 크로아티아가 바로 그랬다. ‘큰 꿈’을 향해 ‘큰 가슴’을 안고 뛰었던 ‘작은 나라’ 크로아티아의 여정은 결코 작지 않은 나라 대한민국에게도 시사해주는 바가 크다.

<조윤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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