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혈액암 극복 제2인생… 타인 돕는 삶 살고싶어”

2018-07-17 (화) 석인희 기자
작게 크게

▶ ■ 인터뷰 UCLA 치대 보존학과 루벤 김 신임학과장

▶ 항암치료과정 주변 도움 커, 일보다 사람 중요성 깨달아

“혈액암 극복 제2인생… 타인 돕는 삶 살고싶어”

UCLA 치대 루벤 김 교수가 말기 혈액암을 극복하고 학과장의 중책을 맡게 된 과정을 담담하게 이야기하고 있다.

“죽음이 눈앞에 닥쳤다고 생각하니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이전까진 ‘일’을 중심에 두고 살았다면 앞으로는 사람들을 돕는데 집중하며 살아가고 싶습니다”

지난 주 UCLA 치과대학 내 최대 학과인 보존학과 학과장으로 선임된 루벤 김(44·한국명 김한규) 교수의 말이다. 김 학과장은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지난해 혈액암 말기로 암 투병을 했다는 사실을 밝혔다.

작년에 혈액암 4기 판정을 받았던 루벤 김 학과장은 항암치료를 받으며 머리가 빠지는 상황에서도 학생들을 가르치기 위해 모자를 쓰고 강단 위에 서 학생들이 눈물을 흘리며 강의를 듣기도 하는 등 아픔 속에서도 열정과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고 한다. 반년 간의 고통스러운 치료 끝에 병마를 이겨내고 건강을 회복해 제2의 인생을 살아가고 있다는 루벤 김 학과장과의 일문일답이다.


-학과장 선임을 축하드린다. 소감은

▲암 투병 끝에 얻은 직책이라 개인적으로 의미가 크다. 학과장을 지원하기까지 암 환자이기 때문에 고민이 많았다. 건강상의 문제로 학과장 직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할까봐 혹은 끝까지 직책을 책임질 수 없을까봐 걱정이 앞섰다. 하지만 학과장으로서 동료 교수들과 학생들에게 좋은 학과 분위기를 만들어주고 싶다는 꿈이 있었기 때문에 결국 지원하게 됐다. 보존학과가 더 발전할 수 있게끔 최선을 다하겠다.

-암 선고는 언제 받았나.

▲지난해 이맘때까지만 해도 내가 암 환자가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다만 코가 막히는 증상이 계속 있었지만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러다 코 막힘이 계속되자 이비인후과를 찾았고, 혈액암 4기 판정을 받았다. 눈앞이 깜깜했고, 모든 것을 내려놓고 싶은 심정이었다. 하지만 동료들과 학생들이 곁에서 위로해주고, 북돋아준 덕분에 반년 간의 항암치료 끝에 건강을 회복하고 다시 학교로 돌아올 수 있었다.

-완치가 된 건가.

▲혈액암은 암 중에서도 생존율이 높아 착한 암이라 불린다. 혈액암은 항암치료가 끝나고 2년이 지나면 완치 판정을 받는다. 저 같은 경우는 치료가 끝난 지 반년 정도가 지났으니까, 1년 반 후에 완치판정을 받을 수 있게 된다. 현재 건강이 많이 회복된 상태다. 다시 학교로 돌아와 환자들을 돌보고, 학생들을 가르치며, 연구를 하며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무리하면 안 된다는 것을 스스로 너무 잘 알고 있으니까, 시간 배분을 적절하게 하면서 현명하게 일하려고 노력한다.

-암 선고 이후에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에 변화가 생겼나.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 인생에서 중요시 여기는 가치가 180도 달라졌다. 암을 선고받기 이전에는 일을 중심으로 인생을 살았다. 일에서 성취감을 느끼는 것이 중요했고, 때문에 워커홀릭으로 일에만 집중해왔다. 하지만 투병 끝에 크게 깨달은 점은 일은 사람들과의 커넥션을 연결시켜주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결국에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죽음이 눈앞에 바짝 다가오니 남겨질 가족들, 학생들, 동료들 생각에 마음이 찢어질 듯 아팠다. 그리고 아픈 나를 챙겨주는 것도 결국 주변의 사람뿐이더라. 항암치료를 받는 동안에 주변의 도움으로 겨우 생명의 끈을 연장할 수 있었다. 기적적으로 다시 살 수 있게 됐으니 남은 인생동안 주변의 사람들을 도우며 살고 싶다.

-어떤 가정에서 자랐는지 궁금하다.

▲전형적인 이민자 가정에서 자랐다. 제가 중학교 1학년 때 아버지가 크게 아프셔서 미국으로 이민을 오게 됐다. 아버지는 리커스토어를 운영하셨고, 어머니는 아버지를 도우며 밤낮없이 이것저것 아르바이트 식으로 일을 하셨다. 누나들과 저는 부모님이 힘들게 일하시는 모습을 지켜보며 ‘공부를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을 늘 품고 살았다. 첫째 누나는 USC에서 피아노를 전공했고, 둘째 누나는 UCLA에서 전자공학을 전공했다. 저는 UC 샌디에고에서 생명공학을 전공한 후 UCLA 치대에 진학했다. 누나들과 제가 성장한 모습을 지켜보며 부모님께서 뿌듯해하셨다.

-치과의사가 된 동기는

▲막연하게 치과의사에 대한 동경이 있었는데, 대학교 때 치과에서 충치를 치료 받은 이후 치과의사가 되어야겠다는 결심이 섰다. 당시 충치가 심해서 치아를 영구적으로 뽑아야하는 상황이었는데, 치과의사 선생님께서 마치 마술처럼 충치를 고쳐주신 것이다. 그 당시 나 또한 치과의사가 되어 나처럼 치아로 고통 받는 환자들을 도와야겠다는 꿈을 품게 됐다.

-치대 진학을 희망하는 학생들에게 조언이 있다면.

▲먼저 성적관리는 가장 기본적인 문제다. 좋은 성적은 기본이고, 대학생 때 최대한 경험을 많이 쌓으라고 말해주고 싶다. 주변 치과병원이나 치대를 찾아가 치과의사가 실제로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인지에 대해 경험해 보는 것이 지원서를 작성할 때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치대 지원서를 작성한 후 최대한 제 3자의 시선에서 지원서를 꼼꼼히 읽어볼 것을 권한다. 본인이 지원서를 통해 ‘아, 이 학생은 치대에 진학할 만한 이유가 충분하군!’하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면 지원서를 다시 써야만 한다. 본인이 설득되지 않는 지원서가 누군가를 설득시킬 수 없지 않나. 치대에 진학하기 전에 ‘내가 왜 치과의사가 되고자 하는지’에 대해 진지한 성찰을 해봐야만 한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힘들 때 곁을 지켜줬던 가족들, 학생들, 동료들에게 이 자리를 빌어 다시 한 번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다. 그리고 지도교수님이시자, 제 인생의 아버지인 박노희 전 UCLA 치대 학장님께도 깊은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싶다. 박노희 교수님께서 제 인생을 여기까지 이끌어주셨다고 생각한다. 이미 저는 한 번 죽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남은 삶은 나만이 아닌 타인을 위한 삶을 살고싶다. 타의 모범이 되는 교수이자, 의사이자, 가장이 되고자 노력하겠다.

<석인희 기자>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