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가즈아’ 외치다 ‘시체’ 됐네

2018-07-04 (수) 조윤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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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화폐 투자열풍을 타고 한때 2만달러를 넘어섰던 비트코인 가격이 하락을 거듭하며 3일 현재 6,500달러 선으로 떨어졌다. 지난 12월 대비, 70% 이상 폭락한 것이다. 폭락의 패턴과 폭이 2000년대 초 닷컴 버블을 연상시킨다. 비트코인은 그나마 나은 편이다. 수백개 다른 가상화폐들의 가치는 아예 사라져 버렸다.

한바탕 가상화폐 투기광풍이 휩쓸고 지나갔던 한국에서는 투자자들의 곡소리가 한층 더 진동하고 있다. 가상화폐 가격이 정점에 도달했을 때 산 사람들의 현재 수익률은 -90%이다. 10분의 1 토막이 난 것이다. “지금이라도 팔아야 하는데 혹시 팔고 나면 가격에 뛸까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는 게 이들의 딱한 처지다.

현 상황은 가상화폐의 진정한 가치가 ‘희소성’에 있다고 주장하는 옹호론자들의 논리가 얼마나 허약한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비트코인의 경우 개수가 2,100만개로 제한돼 있어 이 주장은 그럴듯하게 들린다. 하지만 현재까지 만들어진 가상화폐만 무려 1,500종류가 넘는다. “가상화폐 만들기보다 쉬운 것은 없다”는 말까지 나올 정도니 희소성은 더 이상 가치의 근거가 되기 힘들다. 가상화폐 시장의 ‘유혈사태’는 새 화폐 발행은 계속되는데 돈의 유입은 정체되면서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가상화폐 투기광풍이 몰아쳤을 때 수백만 한국인들이 여기에 뛰어들었다. 마치 목숨을 건 사람들처럼 보였다. 하지만 이들이 모두 가상화폐의 개념을 정확히 이해하고 투자에 뛰어든 것 같지는 않다. 그보다는 남들이 가상화폐 투자로 큰돈을 벌었다는 얘기들이 나돌면서 자기도 뛰어들지 않으면 낙오될지 모른다는 두려움과 불안감이 집단적으로 작동했다고 보는 게 더 합리적이다. 한국사회의 유별난 쏠림현상이 작동한 것이다.

투자가들 가운데 가장 위험한 것으로 분류되는 유형은 어정쩡하게 조금 아는 사람들이다. 제대로 알고 있으면 원치 않는 곳으로 끌려가지 않고, 아예 모르면 시작하지도 않겠지만 어중간하게 아는 사람들은 섣불리 뛰어들었다가 낭패를 보기 일쑤다. 가상화폐 투자자들 가운데 상당수가 여기에 속할 것이다.

그런데 한 가지 기억해야 할 것은 항상 소수의 성공 스토리는 빠르게 확산되고 부풀려지지만 다수의 실패와 몰락은 묻히거나 잘 드러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투기시장은 예외 없이 폰지 게임을 닮아있다. 다수의 투자를 일부가 수익으로 챙겨나가는 구조이다.

가상화폐 시장도 예외는 아니다. 일부의 성공은 곧 다수의 피눈물을 의미한다. 가상화폐 가격을 조작하는 세력을 은어로 ‘운전수’라고 한다. 그리고 호기롭게 ‘가즈아’를 외쳤다가 이들에게 놀아나 손해를 보는 투자가들을 ‘시체’라고 부른다. ‘운전수’들이 헤집고 지나간 자리에는 ‘시체’들만 가득 널브러져 있는 게 투기시장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20세기 골드만삭스의 전설적인 투자가로 유명했던 로버트 멘셜은 아주 오랫동안 군중의 광기를 들여다보는 작업을 했다. 그가 품었던 의문은 “혼자 있을 때 그렇게 똑똑하던 사람들이 왜 군중 속에 있으면 바보가 될까”였다. 그리고 이런 의문과 관련해 그가 내린 결론은 집단적 히스테리였다. 그는 이런 성향을 ‘레밍 어프로치’라고 불렀다. 레밍은 우두머리 쥐를 따라 맹목적으로 달리는 것으로 잘 알려진 동물이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군중이 지닌 힘의 옳고 그름은 결국 각자가 내리는 개인적 판단의 문제로 귀결된다. 금전적 결정이든 취향의 문제이든, 정치적 위기이든 유행의 바람이 불 때 중요한 것은 밖으로부터 느껴지는 압력을 차단하고 스스로 생각하는 것이다.”

가상화폐의 미래에 대한 전망은 엇갈리고 이를 둘러싼 논쟁은 계속될 것이다. 손에 만져지는 실체가 없다보니 개념을 이해하는 것조차 쉽지 않은 가상화폐. 가상화폐 투자와 관련해서도 절대 부화뇌동하지 말고 휩쓸리지 말라는 멘셜의 조언은 유효하다. 결국 현명한 투자가가 되는 지혜는 현명한 시민이 되는 것과 일맥상통한다.

<조윤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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