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한반도 평화와 재외동포의 역할

2018-07-03 (화) 신기욱 스탠포드대 아시아태평양 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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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평화와 재외동포의 역할

신기욱 스탠포드대 아시아태평양 연구소 소장

한반도가 중요한 전환점에 서있다. 한껏 고조되었던 미북 간의 군사적 긴장이 대화국면으로 전환된 것은 천만다행이지만, 길고 험한 비핵화의 여정 앞에선 여전히 기대와 우려가 교차한다. 비핵화에 진전이 있다 하더라도 중국의 부상으로 인한 동북아의 지정학적 환경 변화와 트럼프의 아메리카 퍼스트 정책에 따른 주한미군의 축소나 철수 등 한반도 정세에 크고 작은 변화는 불가피할 전망이다.

이러한 고국의 상황을 바라보는 해외 한인들도 착잡한 심정은 마찬가지일 것이다. 북한의 핵 포기와 정전협정, 그리고 새 평화체제 수립으로 이루어지는 역사적 과정에 기대도 걸어 보지만 언제 또 다시 상황이 악화될지 알 수 없고, 또 미국이 비운 자리를 중국이 채우게 될 경우 더 나은 한반도의 미래를 담보할 수 있을 것인지 걱정도 된다. 그렇다면 한반도 평화정착을 위해 해외에 살고 있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역할은 무엇일까?

지난해 4월말 뉴욕타임스의 요청으로 한 여론조사기관이 1,746명의 미국 성인남녀를 대상으로 지도에서 북한을 찾도록 한 결과 응답자의 36%만이 그 위치를 정확히 표시했다. 북한의 위치를 모른다는 것은 한국의 위치도 모른다는 것인데 이란, 아프가니스탄, 러시아, 인도네시아, 파푸아뉴기니 등 오답의 범위도 천차만별이었다. 4월 한반도 위기설이 나오는 등 북한 관련 뉴스가 미국 언론을 뒤덮고 있었음에도 응답자의 1/3 정도만이 북한의 위치를 알 정도로 한반도에 대한 미국인들의 기초지식이 낮다는 것은 실망스럽지만 놀라운 일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북한의 위치를 정확히 찾아낸 응답자는 그렇지 않은 응답자에 비해 대북문제에 있어 외교나 비군사 전략에 더 찬성하는 경향이 있다는 조사결과였다. 반면 북한의 위치를 모르는 응답자는 북한의 위치를 정확히 알고 있는 응답자에 비해 직접적인 군사 개입, 특히 지상군 파병에 훨씬 더 찬성하는 모습을 보였다.

여기에서 주목할 만한 부분은, 한국계 지인이 있는 응답자가 그렇지 않은 응답자보다 북한의 위치를 잘 알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 (55% 대 34%) 미국이 군사적 옵션보다는 외교적 해법을 찾도록 하는데 재미한인들의 역할이 있음을 암시하고 있다.

이민역사가 깊어지면서 해외한인들의 인재풀도 커지고 있으며 한인회, 민주평화통일 자문회의 등 많은 해외 한인조직들이 세계 곳곳에 포진해 있다. 더구나 이들이 미 중 일 러 등 한국과 북한에 중요한 나라들에 거주하고 있어 한반도 평화를 위해 할 수 있는 역할이 적지 않다. 그동안 이들 단체들은 주로 친목이나 해외한인들의 이익증진을 위한 노력을 해왔고 경제, 비즈니스, 학술 문화 등 한국과의 교류도 활발히 진행 중이다. 이제는 그 폭을 넓혀 외교 안보분야에서도 그 역할을 모색할 때가 되었다.

가령 한인회나 평통의 경우 해당 지역 미국인들을 대상으로 왜 북한이 핵을 가지려 하는지, 비핵화는 가능한지, 각국이 제시하는 해법은 무엇인지 등 한반도의 외교안보 상황을 설명하는 강연회 등을 열어 일반인들의 이해를 도울 수 있을 것이다. 특히 한인들이 많이 사는 지역보다는 한국을 접할 기회가 적은 중서부나 남부지역을 타깃으로 지역 내 대학과 연계하는 등의 방법으로 학생들과 지역주민에 한반도 이슈를 다루는 프로그램을 진행한다면 그 효과는 더욱 클 것이다.

지난해 10월 북미관계가 악화일로를 겪고 있을 때 캔자스 주의 로렌스라는 대학도시에서 북한문제로 강연을 한 적이 있다. 캔자스대학교 동아시아 연구소와 커뮤니티 센터의 공동주최로 지역주민들이 참석할 수 있도록 저녁시간에 연 강연회였는데 대형 강의실이 꽉 차도록 사람들이 많이 모였고 질의응답과 토론이 늦은 시간까지 이어졌다. 대부분의 참석자들이 한국이나 북한을 잘 모르는 미국인들이었는데 북핵문제에 대한 지적 갈망이 얼마나 큰지 실감할 수 있었다.

북핵문제로 한반도에 긴장이 고조될 때면 나 역시 마음이 착잡하지만, 그만큼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많다고 믿기에 몸도 마음도 분주해진다. 마찬가지로 설사 외교 안보 전문가는 아니더라도 해외동포 모두가 각자의 위치에서 할 수 있는 역할을 고민하고 찾는다면 우리가 원하는 한반도의 평화는 더욱 가까워질 것이다.

<신기욱 스탠포드대 아시아태평양 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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