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한반도 평화 향한 위대한 첫 걸음

2018-06-13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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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평화 향한 위대한 첫 걸음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수십년 적대관계를 청산하고 평화의 길로 가기로 합의했다. 12일 싱가포르 센토사 섬에서 열린 미북 정상회담은 20세기부터 21세기까지 세기를 넘어 이어진 양국의 뿌리 깊은 증오를 종식할 역사적 출발점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북한이 펑펑 쏘아올린 핵과 미사일 실험 그에 따른 트럼프와 김정은의 말 폭탄 싸움이 양국 간 긴장을 극에 달하게 했던 지난 연말까지만 해도 상상할 수 없던 일이다. 한반도에 드리운 전쟁 먹구름을 걷어내고 평화의 푸른 하늘을 불러 들였다는 점에서 가히 세기의 만남, 세기의 대화라고 할 만하다.

트럼프 대통령과 김 위원장은 우선 상호 최대의 성의를 다해 회담에 임했다는 점을 높이 평가한다. 회담에 임하는 자세는 회담의 성과와 무관하지 않다. 미국은 북한이 대등한 입장에서 회담에 임할 수 있도록 회담장 입구에 세운 성조기와 인공기 숫자부터 확대회담 참석 인원까지 같은 수로 배려했다. 김 위원장은 가슴에 김일성-김정일 배지를 달지 않았다. 선대가 갔던 길, 그 자신 지난 수년간 갔던 길로부터 기꺼이 결별하겠다는 의지로 읽힌다. 트럼프 대통령은 회담의 호스트이자 맏형 같은 친근함으로 시종일관 김 위원장을 대했다.

양 정상 단독회담, 확대정상회담, 업무오찬에 이어 공동성명 서명 및 발표로 이어지면서,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던 싱가포르 회담은 성공적으로 끝났다. 6.25 전쟁 이후 68년의 반목과 대결의 역사를 뒤로 하고 양국이 새로운 미래를 만들어나가기 위한 공식적 첫발을 떼었다.


한편 이번 회담 결과에 아쉬움이 없는 것은 아니다. 회담 성과에 대해 실패-성공으로 의견이 갈리고 있다. 공동성명에서 양국은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 와 ‘미국의 북한 체재 안전보장’을 약속하면서 북미 관계 정상화,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등에 합의했다. 지금 여기에서부터 어디로 나아갈지 방향과 목표점을 제시했을 뿐 구체적 내용이 없다. 미국이 고수하던 비핵화의 기본원칙인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 비핵화(CVID)‘가 명시되지 않았고, 비핵화로 가는 구체적 방안이나 시간표도 제시되지 않았다. 한반도 평화정착의 기본인 종전선언 관련 내용이 없었던 것도 아쉽기는 마찬가지다. 북측으로 보면 체재 안전보장의 구체적 방안 역시 명기되지 않았다.

이번 미북 정상회담의 의의는 수십년 적대관계였던 양국 정상이 최초로 만났다는 데서 찾아야 할 것이다. 양 정상이 서로 만나서 비핵화와 평화적 공존의 의지를 확인했다는 사실, 비핵화를 의제로 회담이 열렸다는 사실 자체가 역사적 사건이다. 그렇게 한반도 평화로 가는 문은 열렸지만 평화정착에 이르는 과정은 멀고도 험할 것이다. 북한 핵문제 해결을 위한 협상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협상 프로세스가 시작된 것이 20여 년 전이고, 진전 없이 꽉 막혔던 프로세스가 이번에 10년 만에 재가동되었다는 데 의미가 있다. 오랜 세월 쌓인 불신과 반목이 한 번의 회담으로 일거에 해소될 수는 없고, 비핵화 절차 역시 최대 15년이 걸리는 긴 과정이다. 한반도 평화 정착에 대한 현실적 기대를 가져야 하겠다. 기다림과 인내가 필요하다.

미국과 북한 그리고 한국은 이제 새로운 출발점에 섰다. 남북관계 개선, 이를 발판으로 한 미북 관계의 진전에 문재인 정부의 역할이 컸다. 한반도 문제의 운전자로서 남북미를 아우르는 중재역할은 앞으로 더욱 필요해질 것이다. 미북 정상 간 포괄적 합의가 실무회담들을 거쳐 과정 과정의 구체적 합의로 이어져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정착이 달성되려면 신뢰 구축이 필수이다. 김 위원장은 핵폐기 약속에 대한 진정성을 확실히 보여주기를 바란다. 과거의 벼랑 끝 전술과 약속 뒤집기는 더 이상 용납될 수 없다. 이번에도 북한이 국제적 신뢰를 얻지 못한다면 더 이상의 기회는 없을 것이다.

우리 민족은 남북분단으로 너무 많은 고통을 겪었다. 이제 그 어두운 역사를 뒤로 하고 평화와 번영, 공존의 시대를 맞아야 하겠다. 이번 미북 정상회담을 기점으로 한반도에 평화가 정착하고 세계 평화에 기여하는 새로운 역사가 펼쳐지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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