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밤마실’

2018-05-31 (목) 권애숙 (시집 ‘흔적 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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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마실’

정동현,‘Companion’

처마 밑이 흔들리는 소리

담벼락이 푸드덕거리는 소리

달도 없는 밤이 자박거리는 소리


새들이 달아나고 따라가는 소리

소리가 소리를 집어삼키는 소리

막 생겨나는 어둠이

새 역사의 서문을 쓰는 소리

권애숙 (시집 ‘흔적 극장’) ‘밤마실’ 전문

저녁 빛 천천히 물러서며 느리게 밤이 올 때, 세상은 하나의 조그만 우주가 된다. 그 조그만 우주 속에 눈뜨는 더 작은 산 밑 마을, 처마 밑으로 스며드는 어둠을 따라 한 사람이 밤마실을 나선다. 달도 없는 밤, 풍경의 나지막한 곳들은 그때 가장 깊고 순한 눈을 뜬다. 자박거리며 어린 생명들이 자리를 보는 밤이다. 정적이 깨어나는 소리로만 가득한, 지금은 새것들이 태어나기 좋은 시간이다. 행여 지상의 모든 허물을 덮고 새 역사가 쓰여지려나. 아주 고요하고 감미로운 방황처럼 한 사람의 마음속에 밤이 깊는다. 임혜신<시인>

<권애숙 (시집 ‘흔적 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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