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딜브레이커’ 강경론자들

2018-05-30 (수) 조윤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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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과 북한은 6월12일로 예정된 북미회담을 둘러싸고 지난 며칠 간 아찔한 외교 곡예를 벌였다. 트럼프의 일방적인 회담취소 발표로 북미정상의 역사적 만남은 물 건너간 듯 보였으나 이내 북한이 유화적인 태도로 나오고 트럼프가 이를 받아들이면서 협상이 재개된 상태이다.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며 지켜보는 이들을 어지럽게 만들었다. 김정은의 최측근인 김영철은 핵심의제 조율을 위해 현재 미국을 방문 중이다. 최종 결정은 지켜봐야 하겠지만 29일 저녁 현재까지는 신중한 낙관론이 지배적이다.

트럼프의 회담 취소발표가 나오자 그의 변덕스러운 기질 때문에 역사적인 기회가 날아가 버렸다는 혹평에서부터 전형적인 미치광이 협상전략일 수 있다는 분석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의견들이 나왔다. 하지만 북한이 대화를 원한다며 자세를 낮추고 나오자 “판 깨기를 감수하면서 지렛대를 극대화해 협상력을 높이려고 던진 트럼프의 승부수가 먹혔다”는 평가가 많다.

그렇지만 트럼프가 마치 비즈니스 거래를 하듯 외교, 특히 북핵문제에 접근한 것에 대한 비판도 만만치 않다. 비즈니스에서는 승부수가 실패해도 기껏 딜 하나가 깨지는 것으로 끝난다. 하지만 핵을 놓고 벌이는 협상에서는 실패에 따른 대가와 비용이 이에 비할 바가 아니다. 트럼프의 접근방식이 아슬아슬하고 위태롭게 보이는 이유다.


트럼프식의 벼랑 끝 협상전략이 한 번은 먹힐지 몰라도 계속 약발을 발휘하기는 힘들다. 특히 신뢰를 바탕으로 해야 할 북한과의 대화에서 트럼프가 보인 태도는 북한의 의구심을 자극했을 가능성이 크다. 그동안 북미협상이 난항을 거듭한 것은 서로에 대한 신뢰가 전혀 형성돼 있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북한이 취할 조치들은 일단 시행하면 다시 되돌릴 수 없는 반면 미국의 약속들은 언제든 철회할 수 있다는 ‘비대칭성’ 때문에 북한은 단계적 비핵화를 고집해 왔다.

순조롭게 흘러가는 것 같던 북미정상회담이 암초를 만나고 급류에 휘말린 상황은 트럼프 행정부 내 강경파들이 초래한 측면이 적지 않다. 행정부 내 대표적 ‘매파’로 분류되는 존 볼튼 국가안보보좌관과 펜스 부통령 등 강경론자들은 협상이 진행 중인 가운데서도 북한을 위협하고 압박하는 발언들을 계속 쏟아냈다. 그러면서 북한의 대응도 거칠어지고 급기야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의 적대적 태도를 이유로 회담취소를 발표하게 이른 것이다.

북미정상회담은 비핵화의 종결이 아니라 시작이라고 봐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정상회담에서 원칙적 합의가 나온다 해도 구체적인 실천과정에서 지속적인 조율이 뒤따라야 한다, 대화와 소통, 그리고 상대에 대한 이해가 필요한 것이다. 따라서 매파들의 목소리를 잠재우지 못할 경우 난관에 봉착할 가능성이 높다.

강경한 목소리와 온건한 목소리가 충돌할 때 주도권을 잡는 것은 대개 매파들이다. 왜 비둘기파가 아닌 매파가 승리하는지를 연구한 학자들은 ‘낙관주의적 편향’이 작용하기 때문이라고 결론 내렸다. 매파들은 “승리는 쉽고 빠르다”는 가정 아래 인내를 요하는 외교수단보다 군사행동을 선호하며, 이런 주장은 온건론보다 강한 설득력을 갖게 된다는 것이다. 미국의 베트남전과 이라크 침공 결정은 “상황을 식은 죽 먹기로 여기는” 이런 ‘낙관주의적 편향’의 결과였다.

그런데 이보다 더 심각한 매파의 문제점은 “상대의 양보를 저평가하려는 심리적 편견”이라고 연구진은 밝힌다. 이런 심리적 편견이 양보와 타협을 전제로 한 협상과 대화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언급할 필요도 없다. 매파들은 본질적으로 ‘딜메이커’가 아니라 ‘딜브레이커’이다. 그러니 이들을 배제하지 않고서는 미국과 북한간의 협상 성공을 기대하기 힘들다. 그 결정권을 가진 사람은 오직 트럼프뿐이다.

1차 세계대전 당시 프랑스의 총리였던 클레망소는 “전쟁은 너무 중요한 일이라 군인들에게만 맡겨둘 수 없다”고 말했다. 강경파 득세의 위험을 경고한 것이다. 북한의 비핵화, 그리고 나아가 영구적인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협상에서도 클레망소의 경고는 유효하다.

<조윤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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