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고맙다는 말 한마디

2018-05-26 (토) 박혜자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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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밤 내린 비로 촉촉하게 젖은 앞마당에 나가보니, 한 달 남짓 웅크렸던 모란 꽃봉오리가 활짝 펴지며 노래하는 듯 했다. 자연은 겨울이 지나 봄이 오고 여름이 다시 오는데 인간세계는 한번 가면 다시 젊음이 돌아오지 않는 것은 어쩐 일인가 하고 엉뚱한 생각을 해보았다.

며칠 전, 마켓에서 몇 가지 물건을 사가지고 나섰을 때 젊은 임산부가 카트 한대는 밀고, 다른 카트 한 대는 잡아당기며 애를 쓰는 것을 보았다. 그런데 카트 한 대가 그냥 미끄러져 내려가려 했다.

도와주려는 마음에 나도 모르게 그 카트를 잡으려 했는데 손가락이 손잡이 사이로 끼어 내려갔다. 나는 너무나도 당황해서 손가락을 뺐다. 남을 도와주는 것은 좋은 일이나 내 자신이 누구를 도울 수 있는 처지가 아니란 것을 새삼 느꼈다. 만일 손가락을 바로 빼지 않았더라면 크게 다쳤을 것을 생각하니 정신이 번쩍 들었다.


손가락을 다쳐 내가 손을 움켜잡는 것을 보고도 그 젊은 여자는 고맙다는 말 한마디도 없이 카트를 끌고 갔다. 고맙다는 말을 듣기 위해서 한 일은 아니지만 그 여자의 태도가 몹시도 불쾌하게 느껴졌다.

세상을 살아가다보면 남의 수고를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며 고마운 마음을 표현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누구나 고마울 때는 꼭 입을 열어 표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아내나 남편, 부모 자식 간에, 친구사이에 서로 고마울 때는 꼭 표현을 하면 좋은 관계가 이어질 수 있다고 본다.

살아가는 동안 서로 양보하고 고마운 마음을 나타내면서 아름답게 자기의 삶을 꾸려간다면 얼마나 우리의 인생이 아름답고 살만한 세상이 될 것인가.

<박혜자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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