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신뢰가 좌우할 평화프로세스

2018-05-16 (수) 조윤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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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인 북미정상회담 장소가 싱가포르로 결정되면서 세계의 눈은 아시아의 이 작은 도시국가로 쏠리고 있다. 사상 첫 만남을 갖는 미국과 북한의 정상이 과연 통 큰 합의를 도출해 낼 수 있을지에 국제사회의 뜨거운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그런 가운데 한국시간으로 16일 북한이 돌연 한미 연합공중훈련인 ‘맥스선더’ 훈련을 비난하며 이날 예정됐던 남북고위급회담을 중지하겠다고 밝혀 북측의 의도와 관련한 구구한 해석을 낳고 있다.

북한의 이런 도발적 발표가 북미정상 회담에 미칠 영향에 한미는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하지만 북미회담이 무산될 경우 북한이 감당해야 할 후폭풍을 감안한다면 회담은 당초 예정대로 열릴 것이란 관측이 대체적이다. 이미 미국과 북한은 사전조율을 통해 거의 모든 사안들에 의견접근을 이룬 것으로 보인다. 당일치기 회담으로 결정된 것도 이런 관측을 뒷받침해 준다.

하지만 합의는 합의일 뿐 실천은 별개의 문제이다. 짧은 회담을 통해 세세한 시나리오를 완성한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 양측이 기본적인 시놉시스에 합의해도 실천과정에서는 예기치 못한 돌발변수와 장애물이 속출하게 돼 있다. 그럴 경우 의견조율을 통한 타협이 필요하다.


이것을 원활하게 해 주는 것이 신뢰다. 특히 북한과 미국처럼 오랜 시간 극도의 불신 속에 적대적 관계를 지속해 온 경우 더욱 그렇다. 서로 얼굴을 맞대고 나누는 대면대화는 신뢰구축을 위한 가장 확실하면서도 효과적인 방법이다.

얼굴을 맞대고 대화를 나눌 때 상대의 의중을 좀 더 정확히 읽고 이해할 수 있다. 커뮤니케이션에서는 언어 못지않게 몸짓과 표정 등 비언어적인 요소들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만나서 나누게 되는 스킨십이 신뢰를 형성하는 데 도움이 되는 건 물론이다.

우리는 타인의 행위에 대해 보통 그 사람의 성격과 기질의 문제로 쉽게 판단해 버린다. 반면 자신에 대해서는 어쩔 수 없는 상황이나 선한 의도를 들어 합리화하려는 경향이 뚜렷하다. 이런 자기중심적 해석은 항상 갈등과 오해의 단초가 된다. 사회 구성원들 간에 신뢰가 낮을 경우 거래행위에 있어 불신으로 인한 비용이 많이 발생한다. 그래서 신뢰를 ‘사회적 자본’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국제관계도 마찬가지다. 상대국의 방어적 조치를 공격적 조치로 오해함으로써 서로 간에 적대감이 상승하는 위기가 종종 발생한다. 국가들 간의 심리적 편향이 불필요한 갈등을 부르는 것이다. 그러니 신뢰는 사회적 자본일 뿐 아니라 평화에도 필수적인 ‘외교적 자본’이라 할 수 있다. 이런 편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대화가 필요한 것이고 김정은과 트럼프의 만남에 그래서 기대를 갖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적대의 기간이 길었던 만큼 신뢰를 쌓는 일이 쉬울 수는 없다. 미국 입장에서는 비핵화와 관련해 수차례 북한에 속았던 나쁜 기억 때문에 불신의 골이 깊다. 반면 북한으로서는 비핵화의 대가로 받게 될 미국의 약속은 언제든 백지화될 수 있는 반면 자신들이 포기해야 하는 핵은 되돌리기가 쉽지 않다는 사실 때문에 자칫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저지르는 것 아닌가 멈칫할 수도 있다. 이런 비대칭성 때문에 평화프로세스 진전에는 서로에 대한 더욱 강한 신뢰가 요구된다.

그렇다면 미국과 북한은 서로를 신뢰할 것인가. ‘죄수의 딜레마’는 상호신뢰가 가져다주는 이익에 관한 게임이론이다. 두 사람의 죄수 사이에 서로에 대한 굳건한 믿음이 있을 경우 이익이 극대화되지만 불신할 경우에는 최악의 처지에 빠지게 된다. 미국과 북한의 지금 상황이 그렇다. 역설적으로 16일 북한이 보인 돌발적인 행동은 왜 남북미 사이에 신뢰형성이 시급한지를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그런 과정이 결코 녹록치 않을 것임을 예고해 주고 있기도 하다.

한 가지 다행인 것은 죄수의 딜레마에서는 두 당사자가 격리 수용된 상태이지만 북미관계에서는 한국이 중재자로 양측을 열심히 오가고 있다는 점이다. 아무쪼록 싱가포르에서 북미 정상이 서로 간에 신뢰의 싹을 틔우게 되길 기대해 본다.

<조윤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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