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참극 부른 “아내가 날 무시한다”

2018-05-11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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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의 달’에 들어선지 며칠 되지 않아 한인가정에서 살인-자살 참극이 발생했다. 지난 7일 새벽 텍사스에서 남편이 아내를 총격 살해하고 집에 불을 지른 뒤 자살한 사건은 부부가 모두 미국의 대학교수인 한인사회 엘리트 충이어서 더욱 충격적이다.

사건의 동기는 공식적으로 밝혀지지 않았다. 둘 다 사망했으니 무엇이 한 때는 서로 사랑했을 두 사람을 가해자와 희생자로 가르는 끔찍한 범죄로 몰아갔는지 앞으로도 정확히는 알 수 없을 것이다. 다만 남편이 페이스북에 남긴 글로 미루어 상당기간 쌓여온 가정불화를 짐작할 뿐이다.

“난 웃으면서 죽음을 맞이할 것이다. 굿바이”라고 끝을 맺은 그의 글에는 자신을 ‘존중하지 않는다’고 생각한 아내에 대한 불만들이 담겨 있다. 아내가 가정의 중요한 결정들을 자신과 상의도 없이 하는 것을 더 이상 참을 수 없다고 했고 자신을 의처증으로 모는 것, 시부모에게 잘하지 않는 것에 대해서도 분개한듯했다. 아내가 자신의 모든 말을 “무시했다”고 그는 적었다.


아내의 입장을 들을 수 없으니 사실여부를 확인할 길은 없다. 설사 사실이라 해도 그가 나열한 불만 중 어느 하나도 ‘아내 살인’의 이유가 될 수도 없다. 그러나 문제는 사실여부에 관계없이 남편이 그렇게 느꼈고 그 감정이 누적되면서 부부갈등을 일으켰을 것이고 급기야는 극단적으로 폭발했다는 점이다.

전문가의 상담 등 정신건강 치료로 막을 수 있었던 참극이었다. 힘겨운 생활고에 쫓기는 것도 아니고, 낯선 미국생활에 방황한 것도 아닌, 전문가의 도움과 이성적 판단으로 얼마든지 다른 선택을 할 수 있는 여건을 갖춘 경우여서 더욱 안타깝다.

사랑의 열정이 식어버린 후에도 오랜 세월 행복한 결혼생활을 유지해온 부부들이 공통적으로 알려주는 비결은 상대에 대한 배려와 연민이다. 이번 사건은 각자의 부부 사이를 되돌아볼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나의 남편은, 나의 아내는, 나로 인해 상처받고 있는 게 아닌지 오늘, 스스로에게 물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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