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첫 단추 잘못 끼운 ‘노숙자 셸터’

2018-05-09 (수) 박주연 사회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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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시의 노숙자는 4만 명 이상이다. 이들 중 상당수는 한인타운 지역에 있다. 홈리스 문제는 LA시가 해결해야 할 가장 중요한 문제의 하나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지난주 발표된 LA 한인타운 노숙자 셸터 설치 계획은 첫 단추가 단단히 잘못 끼워진 느낌이다. LA시가 심각한 노숙자 문제 해결을 위한 방안 중 하나로 노숙자들이 임시로 기거할 수 있는 셸터 설치를 추진 중인 가운데 가장 먼저 공식 발표한 첫 번째 셸터의 위치가 한인타운 한복판인 것이다.

이날 발표된 셸터 부지는 인근에 한인 식당과 오피스 등 비즈니스들과 대규모 고층 아파트이 즐비해 통행량과 교통량이 많은 한인타운 버몬트 애비뉴 선상 윌셔와 7가 사이에 위치한 시정부 소유 주차장(682 S. Vermont Ave.)으로 그야말로 한인타운 중심지다.
또 해당 부지에서 불과 2~3블럭 떨어진 곳에 초·중·고교 등 학교들이 즐비하고 전철역이 한 블럭 이내에 있어 보행자들이 매우 많은 지역으로, 안전 대책 없이 노숙자 셸터가 들어올 경우 학생들과 주민들이 범죄에 노출될 우려가 높아진다는 지적이 쏟아지고 있다.

이에대해 치안 문제와 위생 문제를 우려하는 인근 지역 한인들과 주민들의 반발은 갈수록 거세지고 있다.


또한 한인들이 노숙자 셸터에 대해 강한 반발을 하고 있는 이유는 시정부가 노숙자 셸터 설치 계획과 관련해 주민 의견 수렴 절차를 전혀 무시한 점, 그리고 10지구 내에 다른 시 소유 부지들이 많은데 하필 가장 번화한 상업 및 주거 지구로 부상하고 있는 버몬트 구역을 일방적으로 선정했다는 점으로 이는 결국 한인 커뮤니티를 무시하는 처사가 아니냐는 것이다.

시정부 측은 이 부지가 10지구 내 시 소유 땅 중 가장 적합한 장소라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LA시 소유 전체 부동산 현황이 담긴 LA시 웹사이트를 분석한 결과 시의회 10지구 내에 위치한 시 소유 부동산은 총 43곳이며, 이중 버몬트 부지와 같이 시 교통국이 소유하고 있는 주차장도 8곳이나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따라 이곳이 최적의 장소라는 시의 설명은 납득하기 어렵다.

LA시의 노숙자 급증 문제가 방치하면 안 될 심각한 문제라는 것과 이를 위해 커뮤니티의 협조가 필요하다는데 대해서는 많은 한인들이 동의하고 있다. 하지만 커뮤니티의 협조가 이뤄지기 위해 당연히 거쳐야 할 공청회 등 의견 수렴 절차가 깡그리 무시된 채 시정부가 독단적이고 일방적으로 밀어부치는 것에 대해 한인들이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것이다.

차제에 한인 커뮤니티의 단결을 통해 시 정치인들이 선거철 후원금 모금 때만 한인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손을 내미는 행태를 바로잡고, 평소에도 한인사회의 의견이 LA시에서 존중받고,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

<박주연 사회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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