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경계해야 할 ‘도덕적 우월감’

2018-05-09 (수) 조윤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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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미국 대선에서 힐러리 클린턴이 다 잡은 것처럼 보였던 승리를 놓친 데는 여러 가지 원인이 있었다. 그런 패착 가운데 하나가 이메일 스캔들을 둘러싼 논란에 대처한 방식이었다. 클린턴이 자신의 잘못과 실수를 깨끗이 인정하고 사과했으면 의외로 잘 수습될 수 있었던 이슈였지만 그는 변명과 부인으로 일관하다 여론의 역풍을 맞았다.

특히 클린턴이 “다른 국무장관들도 다 그렇게 했다”며 물귀신 해명을 한데 대해 실망한 유권자들이 적지 않았다. 한 유권자는 신문 독자투고를 통해 “마치 초등학교 교실에서 선생님한테 꾸중을 듣자 ‘다른 애들도 그랬다’며 고자질 하는 어린애 모습과 다르지 않다”고 꼬집기도 했다.

도덕과 관련한 이슈에 터지면 흔히 “나는 그래도 다른 사람보다는 깨끗하다”라거나 혹은 “덜 더럽다”는 식의 비교를 통해 상대적 우월감을 드러내거나 자기 방어를 하는 경우가 많다. 사적 영역이라면 무슨 생각을 갖던 개인의 자유겠지만 공적 영역에서는 문제가 다르다. 공적인 예산을 만지고 공적 이익을 위해서 일해야 하는 공직자들에게는 상대적 도덕성이 아닌, 절대적 도덕성이 요구되기 때문이다. 좀 더 깨끗하다거나 덜 더러운 게 아니라, 더럽지 않은 게 중요하다는 말이다.


그런 점에서 지난달 여러 가지 의혹을 받던 김기식 금융감독원장이 물러난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한 가지 아쉬운 것은 이 논란에 대해 대통령과 집권당이 보여주었던 안일한 인식이다. 이들은 피감기관 출장 등 의혹들에 대해. 위법이 아님만큼 문제될 것이 없다는 자신감을 가졌던 것 같다.

그러나 논란이 장기화되고, 위법은 아닐지라도 적절성에 있어 문제가 될 만한 행적들이 계속 나오면서 결국 사퇴했다. 문대통령은 김기식 사태와 관련해 평균적 도덕성을 언급했다. 도덕성이 평균 이하로 드러나면 사퇴시키겠다는 것이었는데, 도덕성에 문제가 있었는지가 중요한 것이지 평균적 혹은 상대적 잣대를 운운할 일은 아니다.

여당은 수세에 몰리자 피감기관 돈으로 외유성 출장을 떠난 사례가 상대당에 더 많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피감기관 돈으로 외유성 출장을 떠났다는 부적절성에 있어서는 여야가 마찬가지다. 물타기가 아닌, 자기반성이 우선했어야 했다.

피감기관 후원 출장 같은 관행이 위험한 것은 그 속에 자리 잡고 있는 호혜성 때문이다. 듀크대의 행동경제학자인 댄 애리얼리 교수는 “무언가를 상대에게 안겨주면 받는 사람에게는 사회적으로 은폐된 호의가 생겨난다”고 지적한다. 그러면서 ‘인사이드 잡’이란 영화 내용을 예로 들었다.

이 영화는 미국 금융권이 미국정부를 부패하게 만들어 감독을 방임하게 하고 그로 인해 2008년 금융위기가 일어나는 과정을 상세히 묘사하고 있다. 금융계가 학과장이나 총장 직함을 전문가들에게 돈을 주고 보고서를 쓰게 해 월스트릿의 컨설턴트인양 행세토록 하는 과정들을 보여준다. 크든 작든 어떤 지원과 호의를 받다보면 알게 모르게 상대의 관점에 동화된다는 게 애리얼리 교수의 진단이다.

남북정상회담 이후 한반도에 평화무드가 조성되면서 대통령의 지지율이 하늘을 찌르고 있다. 하지만 높은 수치에 취해 오만할 경우 한순간에 곤두박질치게 돼 있는 것이 인기와 지지율이다. ‘조폭 스폰’ 의혹을 받는 의원의 시장출마 논란 등 지방선거를 앞두고 계속 터져 나오는 여당 내 잡음이 우려되는 이유다.

공정한 정치에 대한 기대를 업고 출범한 문재인 정부는 김기식 사태로 ‘도덕자본’의 상당부분을 날려버렸다. 문재인 정부가 절대적 잣대로 스스로를 엄중히 검증하고 평가하면서 국정을 운영해 나가지 않는다면 제2, 제3의 김기식 사태는 반복될 수밖에 없다. 그것은 현 정부가 표방한 국정 목표와 기치를 손상시키고 갉아먹는 자충수가 될 것이며 개혁의 기관차는 동력을 잃고 선로 위에 힘없이 멈춰 서게 설 것이다.

<조윤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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