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학자에서 엄마로 치료연구, 한인 이수경씨 스토리
▶ ■ 8세 이유나 양의 병은, 뇌 발달 좌우 중요 유전자, FOXG1 돌연변이로 발병
희귀한 유전자 질환을 앓고 있는 한인 여아 이유나(8)양과 어머니 이수경씨의 스토리가 지난 주 뉴욕타임스 ‘사이언스’ 섹션에 커버스토리로 소개됐다.
이 스토리가 기막힌 이유는 유나가 갖고 있는 유전자 돌연변이 희귀병이 바로 뇌유전학 분야의 ‘스타과학자’ 이수경씨가 연구하고 있는 전문분야이며, 아직까지 원인도 치료법도 찾지 못한 질환이기 때문이다. 어머니로서, 학자로서 이 병의 치료법을 찾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하는 이수경씨의 이야기를 정리해본다.
오리건 건강과학대학의 발달생물학자 이수경(42)씨와 같은 대학 유전학 전문가인 남편 이재(57, Jae Lee)씨는 2010년 휴스턴에서 사랑스런 첫딸 유나를 낳았다.
태어났을 때 완벽하게 정상이었던 유나는 그러나 얼마 안 있어 이상을 보이기 시작했다. 소리에 반응하지 않았고 모유나 우유를 삼키지 못했으며 삼킨 것은 토해냈다. 온몸을 뒤틀며 발작을 일으키는 일도 많아 응급실에 자주 드나들어야 했고, 울기 시작하면 그치지 않아서 이웃들에게 양해를 구해야 했다. 걷고, 서고, 말하지 못하는 것은 물론이었다. 뇌 촬영, 유전자 검사, 신경 검사 등을 했지만 원인이 무엇인지 도무지 찾을 수가 없었다.
“내가 뭘 잘못했을까, 혹시 임신 중에 오염된 음식을 먹은 것은 아닐까, 학회 때문에 여행을 많이 하면서 스트레스를 너무 많이 받은 탓인가?” 오만가지 생각과 자책으로 괴로운 나날을 보내던 이수경씨는 워싱턴 DC에서 열린 뇌발달 과학자들의 학회에 참석했다가 만찬석상에서 UC 샌프란시스코 의과대학의 닥터 데이빗 로비츠(현 캠브리지 대학 소아과 주임) 옆에 앉게 됐다. 그는 존경받는 신생아학자이며 신경과학자로 명성이 높은 사람이었다.
이씨는 닥터 로비츠에게 당시 두 살이던 딸의 이야기를 했고, 그의 도움으로 UCSF의 세계적인 신경방사선 학자인 닥터 짐 바코비치에게 유나의 뇌 스캔을 보여줄 수 있게 되었다. 수십년 동안 세계 각처에서 보내오는 뇌영상 이미지들을 분석평가해온 닥터 바코비치는 유나의 스캔을 들여다보면서 이제껏 한번도 본 적이 없는 ‘대단히 이상한 패턴’을 발견했다.
유나의 대뇌피질에는 세포들이 죽어가고 있음을 보여주는 비정상적 백질이 있었고, 우반구와 좌반구를 연결하는 뇌량이 너무나도 적었다. 닥터 바코비치는 그 부분을 관장하는 유전자를 찾아냈고, 그 유전자가 돌연변이를 일으키면 유나와 매우 비슷한 패턴을 만들어낸다는 것을 알아냈다.
그 유전자가 FOXG1이다. 뇌의 발달에서 가장 중요한 유전자이기 때문에 ‘제1 뇌인자’(Brain Factor 1)라고 불리는 FOXG1은 다른 유전자들의 작동 여부를 돕는 단백질 청사진을 제공하고, 태아의 뇌 발달에서 세가지 중요한 단계를 돕는다. 따라서 이 유전자에 이상이 생기면 태아의 뇌 발달은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다.
닥터 바코비치로부터 “유나가 FOXG1 유전자의 돌연변이를 갖고 있는 것 같다”는 이메일을 받았을 때 이수경씨는 그 자리에서 얼어붙고 말았다. 그 유전자가 무엇인지, 돌연변이를 일으키면 어떻게 되는지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녀 자신이 FOX 유전자 패밀리를 연구해온 전문가로서, FOXG1의 돌연변이는 극도로 희귀하고, 임신 중에 자발적으로 이루어지며, 유전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이 증상을 가진 사람은 전세계에 300명밖에 안 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씨 부부는 그때부터 학자로서가 아니라 딸을 치료하기 위해 연구에 매달리기 시작했다. 연구의 목표를 정확하게 딸의 치료로 잡은 수경씨는 남편의 도움으로 FOXG1의 작용과 파괴적 돌연변이의 치료법의 연구에 몰입했다.
때마침 둘째를 임신, 유전자 돌연변이가 다음 아기에게도 유전되는지의 여부를 분석한다는 연구 과제를 만들었고, 그 결과 유나의 돌연변이는 임의적이었으며 둘째 아기도 그럴 확률은 거의 없다는 사실을 알아내 안도하기도 했다.
육아와 연구의 줄달음 속에서 수경씨는 2016년 전정신경염으로 쓰러져 몇주동안 일어나지 못했다. 귀와 뇌를 연결하는 신경이 감염된 그녀는 지금도 배멀미하듯 어지럼증과 구토 증세를 겪고 있다. 한번에 컴퓨터를 25분 이상 들여다볼 수 없고, 자폐증 아이들이 사용하는 옐로 필터로 책을 읽으며, 사무실 벽에 붙여놓은 이미지를 이용하여 시각 운동을 한다.
유나처럼 신체적, 직업적, 언어 치료를 받고 있으며, 항우울제를 복용하고, 밤에는 빛과 소음이 차단된 매스터 베드룸의 벽장 속에서 매트리스를 깔고 잔다. 하지만 정상으로 돌아가기는 힘들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소견이다.
부부는 쥐의 뇌를 연구하여 FOXG1과 교류하는 유전자들을 밝혀냈고, FOXG1의 변이가 뇌량을 왜, 어떻게 손상시키는 지도 이해하게 됐다. 각 FOXG1 돌연변이는 다르게 작용하기 때문에 환자마다 증세가 모두 다를 수 있다. 유나는 FOXG1 하나가 기능하고, 다른 하나는 기능하지 않아서 필요한 단백질의 절반만 생성하기 때문에 수경씨는 유전자 치료를 통해 단백질 복원이 가능한지 연구하고 있다. 그러나 FOXG1은 뇌발달 초기에 핵심적이기 때문에 그때로 돌아가 뇌를 발달시킬 수는 없다는게 닥터 로비츠의 의견이다.
현재 유나는 8세이지만 인지적으로는 18개월 아기와 같다. 아직도 기저귀를 차고, 서지도 걷지도 못하지만 부부는 유나가 조금씩 회복되리라는 희망을 버리지 않고 있다. 전문가들이 불가능하다고 했지만 6세 때 처음으로 앉아있게 된 것은 기적과 같은 기쁨이었다. 지금은 배고플 때나 불편할 때 의사 표시를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목표다.
유나를 가르쳐온 언어치료사가 도저히 진전이 없다며 실망감을 표했지만 이씨 부부는 포기하지 않았고, 그림과 컴퓨터 시선 추적 프로그램을 사용해 눈으로 의사 표시를 하는 비주얼커뮤니케이션을 하도록 독려하고 있다.
유나는 휠체어를 타고 특수교육보조원 오드리 렁거하우젠과 함께 브리들마일 초등학교 2학년에 다니고 있다. 사회성을 개발하고 다른 학생들과 교제하기 위해서다. 요즘에는 자기 이름을 들으면 반응을 보이는 횟수가 늘어났고, 학용품을 입으로 가져가는 일이 많이 줄었다.
렁거하우젠은 “유나가 조금씩 말을 알아듣는 것 같다”며 “최근에는 클리넥스를 자기 코에 가져가기도 했고, 내 손을 입으로 가져가 키스했는데 생전 처음 있는 일”이라며 기뻐했다.
남동생 준(5)은 자기보다 작은 41파운드의 누이를 이제 꽤 잘 돌보고 있다. 목욕하고 나면 머리도 빗겨주고, 유나가 온도조절기 뚜껑을 잡아당기면 손을 붙들어 말리기도 한다.
실험실에서 쥐와 닭의 뇌를 연구하다가 집에 돌아온 수경씨는 유나와 좀 놀아주다가 밤이 되면 한국에 있는 할머니 할아버지와 유나가 페이스타임으로 소통하도록 도와준다. 아버지가 기타를 치며 노래해주면 유나는 웃고 끄덕거린다.
“내일이라도 유나가 우리와 함께 있지 못할까봐 매일 두렵습니다. 하지만 유나는 우리가 감히 꿈도 꾸지 못했던 일들을 해냈어요. 그러니 과연 누가 ‘이 아이는 절대로 이런걸 못할거야’라는 말을 할 수 있겠어요?”
[사진 Ruth Fremson/ NY 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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