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남북’ 보면 ‘북미’가 보인다… ‘비핵화 담판’에 성패

2018-04-25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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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北 ‘완전 비핵화’ 의지 가늠할 리트머스 시험지…정상간 합의수준 주목
북미, 상호 긍정적 제스처…北 ‘핵·미사일실험 중단’ 비핵화 협상 탄력

▶ 남북회담, 비핵화 결실 ‘마중물’ 역할 기대…북미회담 일정과 장소 물음표

27일(한국시간 기준) 판문점에서 막을 올리는 남북정상회담은 다음달 또는 6월 초로 예상되는 북미 정상회담의 '리트머스 시험지'로 불린다.

비핵화와 평화체제라는 공통 의제를 사전에 점검하는 일종의 '예비협상' 무대라는 의미다. 바꿔말해 역사적 테이블에 마주 앉는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어떤 수준의 합의를 이뤄내느냐가 북미정상회담의 성패를 판가름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는 이번 정상회담을 북미 정상회담의 사실상 '전초전'으로 간주하면서 연일 북한을 향해 복잡한 '신호'를 보내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정상회담이 다가올수록 강온 양면에서 비핵화를 압박하는 메시지의 수위를 높여가고 있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트럼프 대통령은 정상회담을 사흘 앞둔 24일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북미 정상회담 준비상황에 대해 "우리는 매우 좋은, 매우 좋은 논의를 하고 있다"고 평가하고는 김정은 위원장에 대해 "정말로 매우 많이 열려있고 우리가 보는 모든 점에서 매우 훌륭하다"고 치켜세웠다. 그런 한편으로 "(회담이) 공정하고 합리적이고 좋지 않다면 나는 과거 행정부들과 달리 협상테이블을 떠날 것"이라는 경고의 목소리도 분명히 했다.

여기에는 북미정상회담을 반드시 성공시키겠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강력한 의지와 자신감이 읽혀진다. 트럼프 대통령은 "회담들이 준비되고 있고, 나는 북한의 비핵화를 보고 싶다"며 "이미 많은 양보가 이뤄졌다. 우리는 양보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이번 남북정상회담에서는 비핵화, 평화정착, 남북관계 개선이 포괄적으로 의제로 오르지만 최상위 이슈는 '비핵화'다.

핵 문제가 풀리지 않고는 평화체제와 남북관계의 근본적 개선이 불가하다는 컨센서스 속에서 남북 정상이 어떤 수준에서 비핵화 합의에 이르느냐에 따라 북미 정상회담의 결과가 좌우된다는 것이 워싱턴 외교가의 관측이다.

일단 협상의 키를 쥔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이 서로 약속이라도 한 듯 긍정적 제스처를 보이면서 비핵화 협상의 '입구'가 크게 넓어진 상태로 평가된다.

무엇보다도 김정은 위원장이 21일 핵 동결 '깜짝' 선언으로 남북·북미 정상회담에 대한 기대치를 끌어올린 것이 주목된다. 핵실험 및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등 미사일 시험발사 중단,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라는 전례없는 조치를 담고 있다.


여전히 미국 내에서는 회의론이 있지만, 북한이 비핵화의 의지를 구체적 행동으로 보여줌으로써 북미 정상이 오는 5월~6월 초 마주 앉을 회담장의 분위기를 밝게 하는 요인임은 분명하다.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과 전 세계에 매우 좋은 뉴스로 큰 진전"이라고 크게 반겼다.

이는 이달초 트럼프 대통령의 특사인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 지명자가 평양을 방문해 김정은 위원장을 극비 면담한 과정에서 큰 틀의 '비핵화 로드맵'이 도출됐을 가능성에 무게를 싣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18일(현지시간) 플로리다 주 마라라고 리조트에서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와 정상회담을 한 뒤 기자회견에서 "남북 간 종전 논의를 정말로 축복한다"고 밝힌 것도 이와 맞물려 주목된다.

종전선언은 비핵화 논의와 '동전의 앞뒷면' 격인 평화체제 문제와 연계돼있어, 앞으로 북미 정상이 포괄적으로 의제를 올려놓고 담판을 지을 수 있도록 사전 분위기를 형성하는 측면에 의미가 적지 않다.

만일 남북 정상회담에서 문 대통령과 김 위원장이 종전선언에 합의한다면 한국전쟁 당사자인 미·중이 함께 할 가능성이 커졌다. 이 경우 종전 선언은 단순한 선언적 의미를 넘어 법적 효력에 준하는 의미를 갖는다. 즉, 1953년 정전협정 이후 65년째 이어진 남북 간 군사적 대결이 종식하고 평화체제 구축 수순을 밟을 수 있는 실질적 토대가 마련될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북미정상회담에서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가 핵심 의제가 되는 것도 물론이다.

비핵화 당사자인 북미의 정상회담 분위기는 무르익고 있지만 비핵화 로드맵을 놓고는 여전히 작지 않은 괴리가 발견된다.

특히 세분화한 조치와 보상을 동시에 진행하는 방식인 북한의 '단계적·동시적 비핵화'에 미국은 '완전한 비핵화'를 강조하며 일찌감치 선을 그었다. 단계적 비핵화 구상은 역대 미 정부의 실패를 답습하는 결과를 초래한다는 것이다.

이와 반대로 트럼프 대통령은 김 위원장에게 신속한 핵무기 폐기를 요구하는 한편, 핵 동결에 따른 대한 제재 완화는 없다는 뜻을 밝힐 것이라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보도했다.

세라 허커비 샌더스 백악관 대변인도 23일 브리핑에서 "비핵화를 향한 북한의 구체적인 조치를 볼 때까지 분명히 제재는 해제되지 않을 것"이라고 못 박았다.

이에 따라 오는 27일 판문점에서 문 대통령과 김 위원장이 공식적인 비핵화 선언과 더불어 어느 수준에서 비핵화 내용을 성안하느냐가 한반도 운명을 가를 관건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켄 가우스 미 해군연구소(CNA) 박사는 연합뉴스와의 서면인터뷰에서 "남북정상회담은 북미정상회담의 토대를 마련하는 데 매우 중요하다"면서 "문 대통령은 남북정상회담에서 알아낸 정보를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국무위원장과의 회담을 준비할 때 도움을 주도록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남북정상회담이 끝난 이후인 다음달 중순께 미국을 방문해 한미 정상회담을 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어, 이를 계기로 남북미가 합의 도출할 수 있는 비핵화 로드맵에 대한 깊이있는 조율이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북미 정상회담의 정확한 일정과 장소는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남북정상회담의 결과물이 나온 뒤 주말을 거치며 가닥이 잡힐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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