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운명의 한 달

2018-04-25 (수) 조윤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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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트럼프 행정부가 출범할 때 “트럼프이기 때문에” 꽁꽁 얼어붙은 북미관계에 극적인 변화의 물꼬가 트일 수도 있다는 내용의 칼럼을 썼다. 그리고 그런 희망 섞인 예측은 이제 현실이 되기 직전에 있다. 이번 주 남북정상회담에 이어 다음 달에는 사상 첫 북미정상회담이 예정돼 있기 때문이다. 한반도의 명운을 좌우하게 될, 평화체제를 향한 한 달간의 역사적 여정이 시작되는 것이다.

한반도를 둘러싼 상황과 당사자들 간 입장 차이는 합리적으로, 그리고 순차적으로 꼼꼼히 풀어가고 진전시키기에는 너무나도 복잡하게 얽혀 있다. 알렉산더가 칼로 내리쳐 고르디우스의 매듭을 풀었듯 과감한 결단 없이는 해법을 찾기 어려워 보였다. 그래서 ‘현상타파’를 내걸고 당선된 ‘탈 이데올로기적’ 실용주의자 트럼프에게 한 가닥 기대를 걸었던 것이다.

김정은의 전격적인 회담 제안을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즉각 받아들인 데는 냉정한 분석보다 트럼프 특유의 기질이 더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는 공명심이 대단히 강하다. 그의 이런 특성은 연설에서 자주 사용하는 ‘전례 없는’ ‘역사적인’ ‘가장 큰’ ‘최초의’ 같은 표현들에서 잘 드러난다.


그런 트럼프에게 김정은의 제의는 그냥 지나치기에는 너무 매력적이었을 것이다. 여기에다 트럼프는 러시아 스캔들과 성추문 등 여러 골치 아픈 문제들에 발목이 잡혀 있는 상황이다, 그는 김정은과의 회담이 정치적 돌파구가 될 수도 있을 것이라 판단했을 것이다.

김정은의 기질과 처지도 트럼프와 비슷하다. 그 역시 세상이 자기를 중심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여기는 절대 권력자이다. 하지만 서방의 제재와 압박으로 지금 북한경제는 곤경에 처해 있다. 선군정치만으로는 버티기 힘든 형편이다.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뭔가 변화를 도모하지 않으면 안 될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대칭형인 두 지도자를 회담 테이블로 이끌어 낸 것은 세계평화와 같은 고귀한 이상이나 명분이 아니다. 자신들의 에고와 정치적 필요를 만족시키고 채우려 내린 결정이다. 어떤 행위의 동기와 결과를 바라보는 시각은 두 가지다. 좋은 동기를 가졌을 때만 좋은 행위라는 ‘동기주의 윤리관’이 그 하나이고, 동기가 아닌 결과에 따라 판단해야 한다는 ‘결과주의 윤리관’이 다른 하나이다.

국민들의 복리와 안위가 걸려있는 정치와 외교는 결과주의 윤리관으로 판단해야 할 대표적 영역이다. 역사는 정교한 그랜드 플랜의 산물이 아니다. 역사는 무수한 우연들과 인간들의 감정, 특히 지도자들의 캐릭터와 그들의 지극히 사적인 동기 등이 얽히고 뒤섞여 만들어진다. 그렇기에 이번 남북, 그리고 북미정상의 만남이 새로운 ‘평화체제’의 출발점이 된다면, 각자의 동기와 속셈이 무엇이었든 그 성취의 의미가 훼손돼서는 안 된다.

트럼프와 김정은의 스타일로 볼 때 순조로이 대화가 이뤄지면 예상을 뛰어 넘는 통 큰 성과가 나올 수 있지만 만약 틀어진다면 수습 난망의 상황이 초래될 수 있다. 그래서 신뢰형성이 필수적이고, 먼저 김정은과 만나는 문재인 대통령의 중재자로서의 역할이 중요한 것이다.

문 대통령과 정치적 입장을 달리해 온 사람들 입장에서는 그가 역사적 장면의 주인공이 된다는 사실에 불편함과 거부감을 느낄지도 모른다. 특히 회담 결과에 따라 손익을 따져봐야 하는 보수 정치인들은 한층 더 속내가 복잡할 것이다.

하지만 한민족이 살아가고 후손들에 넘겨줘야 할 한반도의 평화는 모든 정파적 이해관계를 넘어서는 상위가치라 할 수 있다. 그러니 정치적 계산과 정쟁은 잠시 접어두고 남북미 정상들의 만남이 어떤 화학적 반응과 성과를 만들어 낼지 차분히 지켜볼 때다. 결과에 대한 지나친 낙관은 금물이지만 습관적인 의구심 또한 바람직하지 않다.

평화를 향한 한 달간의 프로세스는 LA시간으로 목요일 저녁 열리는 남북정상회담으로 첫 걸음을 뗀다. 아무쪼록 첫 단추를 잘 꿰길 바란다.

<조윤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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