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하마 룰’ (Hama Rules)을 아시나요

2018-04-16 (월) 옥세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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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America의 세계는 어떤 모습으로 나타날까.

알아사드 독재체재, 그러니까 아버지에 이어 아들이 권력을 세습했다. 그 체제의 무차별적인 자국민 학살로 100만 이상이 희생됐다. 전체 2200여만 인구의 절반이 넘는 주민들은 난민 신세가 됐다. 학살, 기근 등을 피해 고향을 버리고 피난길에 오른 사람만 600여 만이다.

아예 국경 밖으로 탈출해 국제난민이 된 사람도 600만이 넘는다. 레바논, 요르단, 터키 등지의 난민촌이 바로 이들의 피난처로 터키의 경우 300여만의 난민을 수용하고 있다. 이들 중 100여만이 유럽으로 흘러들면서 유럽의 안보지형이 흔들리고 있다.


학살은 계속되고 있다. 사람들을 더 공포에 떨게 하는 것은 알아사드 체제의 화학무기 공격이다. 2012년 12월 시리아 정부군이 자국민을 대상으로 화학무기를 사용한 사실이 처음 적발됐다. 이후 최소한 213 차례 민간인을 타깃으로 한 화학무기 공격이 이루어진 것으로 한 국제 비정부기구(NGO)는 밝히고 있다.

올해로 7년 째 끌고 있는 시리아 내전의 참상이다. 뭐랄까. 지옥도 그 자체라고 할까. 그 모습은 바로 ‘Post-America의 세계’의 한 단면을 말해 주는 것은 아닐까.

‘아랍의 봄’과 함께 발생한 세습 독재 권력에 대한 국민적 저항. 그 저항은 외부세력의 개입으로 내전으로 변모했다. 그러나 미국은 외면했다. 그 시리아 내전이 결국 러시아, 이란, 터키 등 열강의 각축장이 되면서 대학살의 현장이 돼 하는 말이다.

그 시리아에서 또 다시 화학무기 참사가 발생했다. 지난 7일 반정부 세력 거점인 다마스쿠스 외곽의 동구타지역에서 시리아 정부군의 화학무기 공격으로 어린이 등 수 백 명의 민간인 사상자가 발생한 것이다.

왜 이 시점에서 또 다시 화학무기 공격인가. 바로 던져진 질문이다. 러시아와 이란의 도움으로 알아사드체제는 내전 승리를 눈앞에 두고 있다. 그러니까 6년 전과는 달리 극도의 곤경에 몰리지도 않은 것이다. 그런데 왜.

‘하마 룰’(Hama Rules)-뉴욕 타임스의 토머스 프리드먼이 쓴 책의 제목이다. 1982년 2월. 당시 시리아대통령 하페즈 알아사드는 하마시를 완전 포위하고 모든 주민을 타깃으로 무차별 폭격을 퍼부었다. 하마는 이슬람형제단이 이끈 반란세력의 거점으로 이 공격으로 최소한 2만5000명(국제사면위 추산)이 학살됐다.

그리고 몇 달 후 하페즈는 철저히 파괴된 하마시에 대한 봉쇄를 풀고 국민들에게 그 현장을 공개했다. 반란은 꿈도 꾸지 말도록 극도의 공포를 심어 주기 위해서였다.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무엇이든 한다. 설사 전 국민을 학살하더라도. 그것이 ‘하마 룰’이라고 프리드먼은 기술했다.


내전 승리가 목전에 있다. 그런데도 화학무기를 사용했다. 바로 심리적 공포를 극대화하기 위해서다. 아직도 수백만의 시리아국민은 독재 권력에 저항하고 있다. 그들에게 본때를 보이겠다는 의도가 화학무기 사용인 것이다.

부전자전(父傳子傳), 그보다는 세습 독재 권력의 ‘극악한 본색발로’- 그것이 시리아 화학무기 참상에서 찾아지는 그림이 아닐까. 그래서인지 3대 세습으로 이어진 북한의 수령유일주의 체제의 그림자가 그 모습에서 어른거리는 느낌이다.

시리아에 화학무기를 수출해왔다. 그 같은 검은 공생관계에 있는 김정은 역시 남 못지않게 화학무기를 선호한다. 배다른 형 김정남을 살해한 무기가 바로 화학무기다. 그리고 대대적인 유혈숙청에다가 고모부는 물론 소위 ‘백두혈통’을 물려받은 형을 죽인 것도 그렇다.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무엇이든 한다’- 그 ‘하마 룰’의 철저한 실천자로 보여 하는 말이다.

화학무기로 자국민을 마구 학살하는 시리아의 알아사드 체제. 그리고 그 반인륜범죄 행위를 돕고 있는 러시아와 이란, 그리고 중국. 시리아 사태의 또 다른 진상이다.

무엇을 말하나. ‘다시는 결코…’(Never Again!)- 무고한 민간인 학살, 유대인학살로 상징되는 홀로코스트의 교훈을 결코 잊지 말자는 2차 대전 이후 서방세계의 모토가 헛구호가 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때문에 새삼 기대되는 것은 트럼프 대통령의 대대적 응징 선언이다. 그 선언은 복잡한 전략적 이해계산을 떠나 도덕적으로 건강한 반응이란 점에서 고무적이다. 그리고 영국과 프랑스가 응징에 동참을 선언하고 나선 것도 그렇다.

어떤 방식으로 응징이 이뤄질까. 지난해 4월 화학무기 사용사실이 드러나자 미국은 59발의 토마호크 미사일로 공격에 나섰다. 상징적 공격에 나선 것. 그 정도로는 안 된다. 알아사드 축출, 다시 말해 참수작전을 포함해 알아사드 체제에 궤멸적인 타격을 입히는 대대적인 군사조치가 요구된다.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는 주장이다.

그 주장에는 다른 목적도 숨겨져 있다. 트럼프와의 회담을 앞둔 김정은, 더 나가 중국에 분명한 메시지를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비핵화에 미온적이거나 속임수를 쓸 경우 군사조치가 바로 뒤따를 수 있다는 점을 시리아응징을 통해 각인 시켜야 한다는 거다.

트럼프의 다음 한 수는 어디에 놓여 질까. 기다려진다.

<옥세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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