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2018년의 봄, ‘새로운 변곡점’ 인가

2018-03-26 (월) 옥세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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꽤나 길게 느껴진다. 겨울 한파 말이다. 춘분(春分)이다. 그런데 대설주의보가 내려졌다는 서울 발 보도다. LA의 날씨도 다를 게 없다. 음산한 비바람의 연속이었다. 이상기후 탓인가.

“2018년 3월은 ‘새로운 변곡점’(new inflection point)을 이루는 시점으로 기억될 것 같다.” 날씨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국제정세의 흐름이 그렇다는 이야기다.

2018년 3월11일 중국의 시진핑은 황제로 등극했다. 중국전국인민대표대회가 시진핑의 장기집권을 추인했다. 그리고 한 주 후 러시아의 푸틴은 대선승리와 함께 사실상 ‘차르’로 추대됐다.


“중국의 ‘완전한 통일’을 기필코 이루어 내겠다.” 시진핑이 전인대 폐막식에서 한 말이다.

타이완은 말할 것도 없다. 남중국해의 90%에 이르는 해역, 그 해역 내에 있는 모든 무인도와 산호초 등에다가, 동중국해의 무인도들, 그리고 한국의 이어도, 또 인도영토의 일부까지 중국영토로 합병하겠다는 거다. 그리고 그는 이렇게 외쳤다. “우리의 적들과 피의 전투를 벌일 결의에 차 있다.”고.

“세계 어디든 도달할 수 있는 ‘무적의 핵미사일을 개발’과 함께 모국 러시아는 물론 동맹국에 대한 핵 공격에 즉각 대응할 것이다.” 2018년3월1일 푸틴이 국정연설에서 한 말이다.

핵 수퍼 파워임을 대내외적으로 과시하면서 ‘강한 러시아’, ‘위대한 러시아 부활’이 ‘21세기의 차르’ 푸틴의 노선임을 선언한 것이다.

‘황제와 차르의 잇단 대관식’, 그에 따른 과거 한당(漢唐)의 성세를 재현하겠다는 ‘중국몽’(中國夢)의 구체적 선포, 핵 수퍼 파워 입지를 통한 위대한 러시아 부활 선언, 이 모든 것이 2018년 3월이라는 시점에 동시에 나온 것이다.

무엇을 말하나. “제 2의 냉전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는 것은 아닐까. 그런 면에서 2018년 3월은 2차 대전이 끝난 1945년 8월, 냉전(Cold War)이 종식된 1989년 11월, 그리고 테러전쟁이 시작된 2001년 9월과 같은 주요 시점으로 기억될 것이다.” 포린 폴리시지의 진단이다.

리처드 하스 미국외교협회(CFR)회장도 같은 시각이다. 1989년 공산권이 무너졌다. 그러자 자유민주주의의 영원한 승리를 예언하며 프랜시스 후크야마는 ‘역사의 종언’을 주장했다. 그 주장은 이제 신기루가 되고 제2 냉전이 시작됐다는 것이다.


과거의 냉전은 공산 소련제국 대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서방의 대결구도였다. 제2의 냉전은 그 대결구조가 복잡하다. 푸틴 러시아와 시진핑의 중국, 그리고 북한, 이란 등 불량국가와 미국 등 서방이 각각 한 축을 담당한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는 것이다.

이데올로기 대결 측면도 그렇다. 단순히 공산권 대 서방 자유세계의 대결이 아니다. 독재권력, 전제주의와 자유 민주주의 대결양상이다. 이처럼 대결구도가 복잡하고 독재체제와 자유세계의 대결이란 점에서 과거 보다 분쟁지역이 더 널리 분포돼 있다. 오판에 의한 사태발생 가능성도 그만큼 크다는 점에서 더 위험할 수 있다.

지난1월에 발표된 미 국방부의 국방전략 보고서도 바로 이점을 강조하고 있다. 미국의 국방전략의 초점을 테러리즘 저지에서 중국과 러시아를 견제하는 방향으로 전환한 것이다.

2월에 발표된 국방부의 핵 태세검토보고서도 그렇다. 미국은 지난20여 년 간 핵무기를 감축하고 신규배치를 지양해왔지만 잠재적 적국인 중국과 러시아는 반대 행보를 보여 왔다. 이 점에 우려해 미국의 핵무기 운용정책을 공격적으로 바꾸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북한은 물론 중국, 러시아의 미 동맹국에 대한 위협증가로 핵전쟁의 위험은 높아져가고 있다. 따라서 미국은 선제 핵 공격도 고려하는 등 탄력적 대응에 나서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이다.

그러니까 트럼프 행정부는 제2의 냉전에 대비해 준비를 해온 것이다. 초강경주의자들의 잇단 외교안보라인 포진도 같은 맥락으로 보인다.

새 국무장관으로 마이크 폼페이오 미 중앙정보국장(CIA)이 지명됐다.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IC) 보좌관도 존 볼턴으로 교체됐다. 이들은 하나같이 외교노선에서 ‘아메리카 퍼스트’를 주창하는 초강경론자들이다. 그래서인가. 이들의 기용을 적지 않은 워싱턴 관측통들은 일종의 ‘전시내각구성’으로 보고 있다.

“과거 미국과 소련의 냉전은 베를린에서 시작돼 베를린에서 끝났다. 다행인 점은 그 냉전은 말 그대로 열전(熱戰)이 아닌 냉전(冷戰)으로 끝난 것이다.” 계속되는 하스의 지적이다. 제2의 냉전의 주요 전쟁터는 그러면 어디가 될까. “동아시아가 될 것이다.” 중국문제 전문가 고든 챙의 지적이다.

미국 중심의 국제질서에 도전을 해온다. 핵 수퍼 파워임은 틀림이 없다. 그러나 경제적 토대가 허약하다. 위대한 러시아 부활을 외치지만 새로운 제국으로서 이데올로기도 갖추지 못했다. 그런 점에서 러시아의 도전은 잠정적이다.

중국몽에, 일대일로(一帶一路), 거기다가 과거의 중화패권주의를 중국 특성의 사회주의 이데올로기로 교묘히 각색한 중국이 더 위험한 도전 세력이라는 것이 싱크탱크 스트랫포의 로버트 카플란의 진단이다.

‘차르 푸틴,’ ‘황제 시진핑’- 이들은 아무래도 한반도에 거대한 재앙을 불러오는 것은 아닐까. 어딘가 과거의 스탈린, 마오쩌둥이 자꾸 연상돼 하는 말이다.

<옥세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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