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치고받기 식 무역전쟁

2018-03-24 (토) 이형국 정치철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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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상적인 보호무역 공세를 펼치면서 자칫 국제무역 질서의 괴멸을 불러올 수 있는 트럼프의 극단적인 보호무역주의 통상정책이 세계경제를 강타하고 있다. 8,000억 달러의 무역적자, 선택의 여지가 없다고 트럼프 대통령은 판단한 것 같다.

미국은 19개 국가와 ‘자유무역협정’을 체결하고 있다. 그리고 60여개 주요 ‘교역국’을 가지고 있다. 지난해 미국은 총 291억 달러 철강을 국내 생산 가격보다 싼 가격에 수입해 대형 소비자인 자동차·항공기 산업 등에 공급했다. 이번 관세부과 조치는 미국 내 철강·알루미늄 산업을 보호하기 위한 노골적인 불공정 무역 개입이다. 극소수의 승자와 많은 패자를 생산해 내는 이번 조치는 한 산업이 다른 연관 산업을 해칠 수 있어 전혀 경제적 실익이 없다.

수입품이 싸다는 이유로 관세를 부과하는 것은 무역구제가 아니라 횡포이다. 관세부과는 무역협정을 위반했을 때 그리고 이를 증명해야만 가능하다. 미국은 이것을 입증하지 못했다. 단지 철강산업의 쇠락이 국가안보에 위협이 된다는 이유로 관세를 부과했다.


그동안 기축통화 이점을 누리며 남발한 달러 찍어내기는 그나마 미국으로부터 흑자를 낸 국가들이 미국 국채 매입과 다시 미국 내 재투자로 미국경제의 인플레이션과 재정적자 부작용을 막는 방패 역할을 했기 때문에 미국경제를 어느 정도 안정시켜온 게 사실이다. 중국은 1조 달러 이상의 미국 부채를 소유하고 있다. 중국을 선두로 다른 외환보유국들이 달러를 풀었을 때는 미국경제에 감당키 어려운 큰 타격을 줄 수 있다.

트럼프는 무역적자를 줄이겠다고 공약했지만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오는 11월 중간선거와 재선 승리를 위해 무모한 관세부과 카드를 내밀었다. 달러 강세 아래서는 제조업의 경쟁력은 떨어져 수출 경기 또한 둔화 위험이 커진다.

따라서 달러 약세를 유도하기 위해서는 환율조작국 제재와 무역관세 부과 등으로 보호무역을 강화하는 유혹에 빠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세계적으로 보호무역이 확산되면 결국 미국의 수출도 줄어들어 재정확대를 통한 경기부양 효과는 떨어진다. 펀더멘털이 이끄는 달러 강세를 실력 행사로 저지하겠다는 발상이 무모하다.

그리고 이번 관세 폭탄은 지난 대선에서 트럼프에 가장 많은 표를 몰아준 러스트벨트 지대에 대한 보상이다. 미국의 경제적 이익보다 누가 봐도 뻔한 정치적 승리를 선택한 잘못된 결정이다. 보수 신문 월스트리트 저널마저 사설을 통해 트럼프의 관세를 통한 수입규제안은 명백한 실수라고 지적하고 있다.

주류 경제학자들은 트럼프의 이번 조치로 치고받기(tit for tat)식 무역전쟁이 시작되면 1930년대 대공황과는 비교할 수 없는 경기침체를 불러 올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로버트 실러 예일대 교수는 2일 CNBC 방송에 나와 “마치 1930년대 대공황 당시에 발생했던 상황을 초래하고 있다”며 당시 보호 무역을 앞세운 무역전쟁으로 1929~1932년 동안 국제무역은 63%나 감소했고 각국 국내총생산도 크게 줄었다고 경고하고 있다.

세계는 상호 의존적 관계를 형성한다. 각국은 경쟁자이기도 하지만 경제 공동체 동반자이기도 하다. 무역 전쟁은 너무 많은 것을 잃어 결코 승리하지 못한다. 트럼프의 미국 우선주의는 세계적 무역협력 시스템 구축에 찬물을 끼얹는 행위이다.

무역 불균형을 해소하려면 보호무역보다는 글로벌 정책 공조가 더 긴요하다. 철강 산업의 대부분의 일자리는 경쟁력 하락과 자동화 공정으로 인해 사라졌다. 관세는 이러한 일자리를 되찾는 데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과거의 산업인 석탄·철강에서 일자리를 보호하는 대신 미래의 산업인 생명공학·재생 에너지·IT에 집중하는 것이 훨씬 더 합리적이다.

<이형국 정치철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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