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생과 사의 갈림길

2018-03-23 (금) 여주영 뉴욕지사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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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평범한 생활을 하고 있는 지금, 지구상 반대편에는 공포 속에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 두려움에 떨며 울부짖는 사람들이 있다. 반군과 정규군의 공습이 한창인 시리아의 죄 없는 주민들이다. 2011년 봄, 한 10대 소년이 시리아의 독재자를 야유하는 낙서를 쓴 이유로 끌려갔다가 끔찍한 고문과 학대를 당하고 시체가 돼서 돌아온 사건을 계기로 촉발된 시리아 내전.

자유로운 세상을 꿈꾸었던 이 어린이의 희망은 아직도 보이지 않고 반군을 지원하는 미국과 러시아가 지원하는 정규군의 치열한 격전 속에 7년째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생존을 위한 몸부림이 계속되고 있다. 이 내전으로 인한 사망자는 거의 50만명에다가 1,300만명에 달하는 주민이 나라를 떠나고 있는 상황에서 삶과 죽음의 벼랑 끝에 내몰린 어린이만도 580만명에 달한다,

공포가 지속되고 있는 이곳은 현재 공습으로 숨진 어린이를 두고 오열하는 부모, “아빠, 엄마가 어디 있느냐?”고 울부짖는 어린이들로 연일 생지옥을 이루고 있다. 그리고 삶과 죽음의 갈림길에서 목숨 걸고 시리아를 떠나는 탈출행렬은 밤이고 낮이고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터키 해변에서 몇 년 전 숨진 채 발견된 세 살배기 아일린 쿠르디의 죽음은 시리아 난민의 비참한 현실을 여실히 보여주고도 남는다. 2년전 통계에 의하면 그동안 전 세계로 탈출한 시리아 난민은 400만명에 이르고 있다.


삶이냐, 죽음이냐 생사의 갈릴길에서 행해지는 시리아 주민의 탈출행은 최근 반군거점인 동구타 지역에서 아사드 정부군의 무차별공습과 폭격에 의해 대대적으로 이뤄지고 있다고 한다. 하루에만도 수만명이 목숨을 건 대탈출을 감행하고 있으며 대부분이 짐만 챙긴 채 피난길에 나섰다는 소식이다.

이는 지구촌 최악의 비극이며 인류 최대의 불행이다. UN은 이를 언제까지 지켜만 볼 것인가. 이런 비극은 한국 국민들도 일찍이 6.25동란 때 맛보았다. 새벽에 느닷없이 기습한 북한의 남침으로 남한 사람들은 모두가 공포 속에 봇짐을 꾸려 피난길에 올랐다. 그때의 참혹함과 비참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고 한다.

인간이 태어난 이래 전쟁은 국가들이 영토 확장을 위해, 사상과 종교의 갈등으로 인해 끝없이 이어져 왔다. 인간이 생존하는 한, 전쟁은 아마도 끝이 없을 모양이다. 전쟁이 낳은 비극은 꼭 국가 간의 무력다툼만이라고 할 수 없다. 적군 없는 전쟁, 즉 기아와 질병도 전쟁 못지않게 무섭다. 기아선상에 허덕이고 전염병으로 죽어가는 아프리카의 수많은 주민들의 실상이 그것을 말해준다.

우리의 동족인 북한주민들도 배고픔을 참지 못해 중국으로 목숨을 내건 탈출을 시도하고 있다. 잡히면 북한으로 다시 압송돼 수용소행 아니면 죽음이다. 이들을 과연 구해낼 수 있을까. 지구 저편의 자유와 평화도 급선무이지만 당장 우리 앞에 배고픔을 해결하기 위해 죽음도 마다하고 탈출을 시도하는 북한 동족의 문제 해결도 시급하다.

이제 북한동족을 생지옥에서 구할 수 있는 기회가 온 것인가. 지난 평창 올림픽을 계기로 갑자기 찾아온 한반도의 해빙무드, 남북한 정상회담, 남한 예술단북한 방문공연, 그리고 치열하게 대치하던 북한의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과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 등은 기아선상에 허덕이는 북한동족의 앞날에 희망으로 다가오고 있다.

반면, 평생 쓰고 남을 돈도 모자라 온 가족을 동원해 온갖 편법으로 거액의 비자금을 마련한 혐의로 구속 위기에 처한 이명박 전직 대통령의 모습을 보면서 배고픔을 이기지 못해 목숨 걸고 사선을 넘어오는 북한동족의 모습이 더욱 처연하게 다가온다. 또 헐벗고 굶주린 국민을 돌보아야 할 영부인이 이들을 외면하고 작은 푼돈 모으기에 연연하다 망신살이 뻗치고 있는 모습도 매우 가엾게 느껴진다.

앞으로는 제발 한국에도 아프리카 오지의 가난하고 병든 자들을 위해 평생 희생하다 숨진 슈바이처박사 같은 심성의 지도자가 나왔으면 하는 바람이다. 더 이상 북한 동족이 먹을 것을 찾아 죽음의 사선을 넘지 않도록 앞으로 있을 북한과의 모든 행사나 협상들이 평화적으로 잘 이루어지기를 학수고대한다.

<여주영 뉴욕지사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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