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이를 ‘장계취계’ (將計就計)라고 하던가

2018-03-19 (월) 옥세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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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어째서…, 어떻게…’-. 벌써 두 주째 접어들었나.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의 정상회담 제의를 선 듯 받아들인 지가. ‘쿠데타 외교’라고 불릴 정도로 파격적이다. 그 충격이 워낙 커서인가. 계속 따라 붙는 것은 여전한 물음표의 연속이다.

미국 대통령의 정상회담계획을 발표하는 기자회견이다. 그런데 미국 관리는 한 명도 배석을 안했다. 김정은을 만나고 온 한국사절단이 그 주인공이다. 그것도 백악관을 배경으로. 그 모양새부터가 극히 이례적이었다. ‘어째서…’.

한마디로 인간이기를 포기한 괴물이다. 미 언론에 노출된 김정은 말이다. 인민을 굶어 죽이면서도 핵 개발에 여념이 없다. 김정은에게 핵은 권력 그 자체이고. 신앙이고, 생명이다. 그 핵을 포기한다. 이는 3대째 이어지는 수령유일주의 체제의 몰락을 의미한다.


그런 김정은이 핵폐기 가능성을 비치는 메시지와 함께 미국과의 대화를 제의하고 나섰다. 도대체 왜. 바로 따라붙은 질문으로 그 해석은 여전히 구구하다.

‘왜…’란 질문은 트럼프가 그 제의를 선 듯 받아들인 대목에서도 던져진다. 거짓말을 밥 먹듯 한다. 최악의 폭정체제 지도자다. 고모부도 죽였다. 형도 죽였다. 고문에, 학대에 죽어나간 사람이 수만이다. 그런 괴물과 미국 대통령이 대좌를 한다니…. 그래서 나오는 질문이다.

무엇이 그런 김정은을 대화의 장으로 나오게 했나. 그 질문에 대한 일반론은 이렇다. 경제제재가 먹혔다. 수백만이 굶어죽은 90년대 말 고난의 행진 직전 상황까지 몰렸다. 거기다가 미국의 군사공격위협이 빈말로 들리지 않는다. 중국도 전쟁 가능성을 우려해 몸을 사릴 정도다.

절체절명(絶體絶命)의 위기다. 그런 가운데 한 가지 돌파구가 보인다. 문재인 정권이다. 그렇지 않아도 눈물겹도록 구애를 해왔다. 그러니 잘만 이용하면 숨을 돌리는 것은 물론, 3대째의 숙원도 이룰 수 있다. 한미동맹이완에, 평양주도의 통일이다.

시나리오는 절묘하게 맞아떨어지고 있다. 평창올림픽을 틈 탄 남북화해무드조성, 그리고 남북정상회담 개최 합의. 그 일련의 수순이 그것이다. 거기서 한 걸음 더 나갔다. 트럼프에게 만나자는 제의를 한 것이다.

그 제의를 트럼프는 선뜻 받아 들였다. 백악관을 배경으로 한국 사절들이 그 사실을 발표하는 아주 기이한 모양새를 연출하면서까지. ‘어째서…’, ‘왜…’.

“아마도 한국의 청와대도 트럼프가 그토록 빨리 제의를 받아들이지 않을 것으로 본 것 같다.” 북한문제 전문가 고든 챙의 지적이다. 왜 트럼프는 그 같은 결정을 거의 즉석에서 내렸나. ‘문재인 대통령이 원해서라는 것’이 그 ‘왜’에 대한 해석이다.


그렇지 않아도 한반도 전쟁위기의 책임은 북한이 아닌 미국에 있다는 것이 한국정부는 물론이고 한국 국민의 일반적 생각이다. 때문에 거부할 경우 그 정서를 파고들면서 북한과 한국의 좌파정부는 한미동맹을 내부에서부터 무너뜨릴 수 있다.

그런 빌미를 주지 않기 위한 조치로. 중국부상에 대비한 한미동맹 강화, 그리고 ‘문재인 한국정부 관리’가 그 당면의 목적이라는 거다. 한국사절단을 통해 김정은과의 정상회담 개최를 전 세계에 알린 것도 같은 맥락으로 보여 진다는 것이다.

‘김정은이 트럼프와의 정상회담이란 카드를 던진 데에도 역시 같은 노림이 숨어 있지 않았을까’-. 내셔널 인터레스트지의 진단이다. 그러니까 당초 트럼프가 거부할 것으로 계산하고 김정은 그 같은 과감한 제의를 했을 수 있다는 분석이다.

그렇게 되면 트럼프는 전쟁광으로 비쳐진다. 반대로 김정은은 ‘평화를 추구하는 정치지도자’란 명성을 얻게 된다. 뒤따르는 것은 국제사회의 동정이다. 그 분위기를 틈타 제재국면을 돌파해나갈 수 있다. 특히 한국의 경우에는 바로 먹힌다. 이런 계산이 숨어있다는 지적이다.

트럼프의 정상회담 수락 발표가 나온 지 두주 째다. 그런데도 북한은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왜. 워싱턴의 일종의 장계취계(將計就計-상대편의 계략을 역이용하는 계략)에 북한은 허를 찔렸다. 때문에 몹시 당황해 하고 있다. 침묵은 바로 그 증좌 일 수 있다는 거다.

이는 다른 말로하면 북한의 제의에는 진정성이 없다는 얘기다. 단순한 시간벌기용 책략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문제는 이제 와서 김정은이 발을 빼기에는 일을 너무 크게 벌였다는 데 있다. 우선 트럼프행정부의 움직임이 그렇다.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이 경질되고 후임으로 마이크 폼페이오 중앙정보국장(CIA)국장이 지명됐다. 그는 예방공격까지 지지해온 대북 강경파다.

거기다가 백악관의 안보 사령탑인 국가안보회의(NSC) 보좌관도 물러날 예정이다. 현 허버트 맥매스터 보좌관의 후임으로 확실시되는 인물은 존 볼튼 전 유엔대사다.

그는 대북 초강경론자로 트럼프-김정은 회담을 적극 지지하고 있다. 다름에서가 아니다. 그 회담은 실패로 돌아갈 것이 확실하고 그 다음 조치는 군사옵션 밖에 없다는 점에서라는 것.

무엇을 말하나. 미국은 강력한 힘을 기반으로 북한과의 대화에 임하겠다는 것이다. 시간 끌기나 속임수 같은 것은 결코 용납하지 않겠다는 분명한 시그널을 보낸 것이다. 그리고 또 한 가지. 협상이 결렬되면 군사옵션으로 바로 이행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둔 것이다.

이래저래 북한의 소년 독재자는 잠 못 이루는 밤이 많아질 것 같다.

<옥세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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