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역사전쟁’ 이 시작됐다

2018-03-14 (수) 조윤성 논설위원
작게 크게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율은 65% 내외이다. 취임 초 한때 80%까지 육박하기도 했지만 거품이 빠지면서 지금은 60%대 초·중반에 안착한 형국이다. 그래도 여전히 높은 지지율이다. 그에 반해 문대통령에 대해 부정적 평가를 하는 국민은 대략 30% 내외다. 지도자에 대한 평가기준은 사람마다 얼마든 다를 수 있는 것이니 문 대통령은 이런 국민들의 의견에도 겸손히 귀를 기율여야 할 것이다.

하지만 일부 기득권 세력에게는 문 대통령에 대한 부정적 반응이 사안과는 관계없이 아예 체화돼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가 무슨 말을 하든, 무슨 정책을 발표하든 그냥 싫다는 태도이다. 특히 이들을 대변하는 일부 언론은 문재인과 관련된 것이라면 무조건 어깃장 놓기에 여념이 없다. 대통령은 끊임없이 비판받아야 하는 자리지만 이런 비판이 합리적 논거보다 궤변과 왜곡, 그리고 침소봉대 위에서 이뤄진다면 옳다고 할 수 없다.

문 대통령에 대해 일부 기득권층의 비토가 왜 그토록 극심한 것인지 지난 3.1절을 지나면서 그 이유를 다시 한 번 깨달을 수 있었다. 이런 기득권 세력에게는 결코 달가울 수 없는 문 대통령의 역사인식이 확인됐기 때문이다. 금년 3.1절은 기념식의 형식과 내용에 있어 수구정권 10년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었다.


우선 기념식을 10만 독립투사들이 고초를 치른 서대문형무소 역사관 마당에서 열었다. 이곳에서 기념식이 열린 것은 처음이다. 문 대통령은 기념사에서 “3.1운동의 정신과 독립 운동가들의 삶을 역사의 주류로 우뚝 세우겠다”고 선언했다. 그러면서 “3.1운동의 가장 큰 성과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수립이며 대한민국은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했다”고 밝혀 임시정부 수립이 대한민국 건국의 시발임을 분명히 했다.

문 대통령의 이런 선언과 역사인식은 ‘1948년 건국절’을 주장해 온 극우적 뉴라이트 역사관을 전면 배격하는 것이다. 뉴라이트 역사관이 해방 후까지 계속 한국사회의 지배층으로 군림해 온 친일세력의 ‘역사세탁’을 위한 것이라는 걸 상식을 지닌 사람들은 다 안다.

대한민국 헌법 전문은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민국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 민주이념을 계승하고”라고 분명히 밝히고 있다. 그럼에도 전임 수구정권들이 1948년 건국 주장을 무리하게 밀어붙인 것은 해방 이전의 역사를 부정해야 친일 선조들의 죄과를 흐리면서 자신들도 건국의 공을 주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들에게 문재인은 불편한 존재일 수밖에 없다.

이들이 진보에 덧씌우려 혈안이 돼 있는 ‘종북 프레임’의 근원에는 반공 이데올로기가 있다. 친일 부역세력은 반공 이데올로기를 방패삼아 청산을 피하면서 지배세력으로 뿌리를 내릴 수 있었다. 반공을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르며 자신들의 지지기반을 다져왔다. 그 후유증은 ‘빨갱이’라는 딱지를 거리에 침 뱉듯 아무렇게나, 또 아무에게나 붙여대는 일부 국민들의 의식 속에 남아있다.

내년은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년이 되는 역사적인 해이다. 문 대통령은 오래 전 가졌던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국가를 위해 헌신하면 보상받고, 배신하면 언제든 심판받는 국가의 정직성이 회복돼야 한다.”

그가 대통령에 취임하자마자 무엇보다 먼저 생활고에 시달리는 독립선열 후손들에 대한 생계비 지원을 늘린 것은 이런 정직성 회복을 위한 작은 첫걸음으로 보인다. 이런 일들을 외면하면서 ‘애국’을 입에 올린다면 그것은 위선이다.

대통령의 3.1절 선언으로 한국사회의 새로운 주체를 세우겠다는 세력과 이에 저항하는 오랜 기득권 세력 간의 본격적인 ‘역사전쟁’이 시작됐다. 전쟁은 단지 역사 문제뿐 아니라 남북관계, 정치, 경제 등 여러 전선에 걸쳐 치열하게 전개될 것이다. 그리고 이 전쟁의 승패는 결국 국민들의 선택이 가르게 될 것이다.

<조윤성 논설위원>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