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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투 운동

2018-03-13 (화) 신기욱 스탠포드대 아시아태평양 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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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기욱 스탠포드대 아시아태평양 연구소 소장

“나도 당했다”는 ‘미투(#MeToo)’ 운동이 한국 사회를 강타하고 있다. 서지현 검사의 고발로 촉발된 미투 운동은 법조계, 문학계, 연극계를 넘어서 정치권을 휩쓸고 있으며 배우 조민기가 자살을 하고 유력한 차기 대통령 후보였던 안희정 전 충남지사가 사퇴하는 등 끊임없는 파장을 불러오고 있다. 아침에 일어나 뉴스를 확인하기가 무서울 정도다.

사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남성중심의 가부장적 위계질서가 가득한 한국사회에서 미투 운동이 일어나는 것은 시간문제였고 만시지탄의 느낌마저 든다. 한국사회가 정치적 민주화를 이룬지는 수십년이 지났고 노사 관계 등 경제적 분야에서의 민주화도 진전이 있었지만 사회적인 측면, 특히 남녀 간 불평등과 여성차별의 문제는 상대적으로 경시되어 왔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미투 운동은 늦은 감은 있지만 성숙한 민주사회로 가는 성장통으로 봐야 한다.

3여 년 전 미국대학에서 조교 훈련을 받을 때의 일이 기억난다. 중요한 주의사항 중 하나가 학생들을 면담할 때는 꼭 연구실 문을 반 정도 열어놓으라는 것이었다. 그때만 해도 지금과 달리 성추행, 성희롱, 성폭행에 대한 인식이 부족할 때라 솔직히 좀 의아해 하였는데 지나고 보니 그 이유를 이해할 수 있었다.


지금도 스탠포드를 비롯한 많은 대학에서 교수와 학생 간의 연애를 금지하고 있고 나처럼 연구소장이나 학과장 등 관리직에 있는 교수들은 2년에 한번씩 성희롱(sexual harassment) 방지를 위한 교육을 받는다. 실제로 일어난 사례들을 바탕으로 교직원이나 학생들이 상사로부터 성적인 피해를 당했을 때 기관장으로서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자세히 교육을 받는다.

개개인의 의식과 사회 문화를 바꾸는 것은 하루아침에 가능한 일이 아니므로 지속적인 노력과 교육이 병행되어야 한다. 스탠포드 대학이 엄격한 규정과 교육에 노력을 쏟았음에도 불구하고 지난 2016-17년도에 190건의 성범죄가 보고되었는데 그중에 17건이 강압에 의한 성관계, 15건이 부적절한 신체 접촉이었으며, 피해자 층도 여성, 남성, 교수, 직원, 학생 등 광범위하게 나타나 문제의 심각성과 지속성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스탠포드 대학이 이처럼 매년 보고서를 내 교내 주의를 더욱 환기시키고 문제를 최소화 하려는 노력을 그치지 않고 있다는 점에 큰 의미가 있다.

한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미투 운동이 피해자의 고발과 가해자에 대한 처벌로 그쳐서는 안 되고 사회 구석구석에 만연한 성범죄에 대한 가능성을 최소화하고 예방할 수 있는 제도와 문화를 만들어 가는데 일조해야 한다.

가령 업무상 상하관계라도 직무와 관련 없는 사적인 만남은 거절할 수 있도록 하는 구체적이고 자세한 규정과 함께 이를 어겼을 경우에 엄격한 처벌이 반드시 이루어지도록 해야 한다. 또한 피해자가 보복에 대한 두려움 없이 문제를 제기하고 가해자를 고발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여 2차, 3차의 피해가 발생할 가능성을 최소화해야 한다.

동시에 성범죄 예방을 위한 제도나 노력들이 여성들에 대한 역차별로 이루어져서는 안 된다. 성추행 논란을 원천봉쇄하기 위해 회식자리에서 남성 임원 옆에는 아예 여성 직원을 앉지 못하게 하거나 회식이나 출장이 잦은 주요업무에서 여성을 배제하는 등의 해결책은 또 다른 형태의 차별을 가져올 수 있는 근시안적 방안에 불과하다.

펜스 부통령이 2002년의 한 언론 인터뷰에서 ‘난 아내 이외의 여자하고는 절대로 단둘이 식사 하지 않는다”고 해서 붙여진 ‘펜스 룰’ 역시 같은 사고방식에 기인한다고 볼 수 있는데 이는 문제의 본질은 비껴가고 원인을 여성에게 전가시키는 불합리한 논리이며 또 다른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

올해 초 한국에서 영화 ‘1987’을 관람하며 남다른 감회에 젖었다. 1980년대 민주화 운동에 몸 바친 박종철, 이한열 등 대학생들의 죽음이 헛되지 않았음을 생생히 보여준 영화로 동시대에 대학을 다녔던 나로서는 당시의 어수선했던 사회 분위기와 지난해 촛불집회가 보여준 성숙한 민주사회의 모습이 오버랩되며 가슴이 뜨거워졌다.

마찬가지로 지금 한국사회를 뒤흔들고 있는 미투 운동이 사회적 민주화를 이루는데 중요한 밑거름이 되어 훗날 한국 사회발전에 큰 획을 그은 중요한 사건으로 회자되고 칭송받을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신기욱 스탠포드대 아시아태평양 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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