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한반도에 봄은 오는가

2018-03-09 (금) 여주영 뉴욕지사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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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온몸에 햇살을 받고/ 푸른 하늘 푸른 들이 맞붙은 곳으로/ 가르마 같은 눈길을 따라 꿈속을 가듯/ 입술을 다문 하늘아, 들아/ 내 맘에는 나 혼자 온 것 같지를 않구나!/ 네가 끌었느냐, 누가 부르더냐, 답답위라, 말을 해다오./... 나는 온 몸에 풋내를 띠고/ 푸른 웃음, 푸른 설움이 어우러진 사이로/ 다리를 절며 하루를 걷는다. 아마도 봄 신령이 지폈나 보다./ 그러나 지금은- 들을 빼앗겨 봄조차 빼앗기겠네”

시인 이상화의 시 ‘지금은 남의 땅,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중 일부이다. 이상화는 한국의 일제 식민지 당시 국권을 상실한 민족의 비통한 마음을 이같이 노래했다. 빼앗긴 국토에 대한 회복을 간절히 염원하며 쓴 시이다.

당시 상황으로는 도저히 나라를 되찾을 것 같지 않았지만 일본통치 36년 만에 한국은 온갖 설움과 수모 속에서 마침내 국권을 회복했다. 어떠한 압박과 통제라 할지라도 기어코 제자리에 올 것은 오고야 만 것이다. 닭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오듯이 아무리 어둡고 컴컴한 터널속이라고 해도 반드시 출구가 있게 마련이고 잘못 끼어진 단추는 언젠가는 바로 끼어지게 마련이다. 이것이 역사의 필연이고 귀결이다.


겨울의 추위가 아무리 혹독해도 봄은 어김없이 오게 마련이듯 도도히 흐르는 역사의 물꼬는 누구도 거스를 수가 없다. 현실의 염원이 설사 실패로 끝난다 하더라도 그 씨앗은 후세대를 위한 비옥한 거름으로 남게 되어 있다. 이를 생각한다면 어떠한 시련과 어려움이 있어도 좌절이나 포기가 아니라 훗날 이 땅에 아름다운 열매를 거두려는 마음으로 봄부터 열심히 씨앗을 심어야 할 일이다.

옛 부터 봄은 축복의 상징으로 일컬어온 계절이다. 혹독한 추위를 이기고 돌아오는 봄을 사람들은 누구나 새로운 축복이 찾아오는 절기라고 믿고 겸허한 자세로 반가이 맞이하려 든다. 황량한 땅에서 사방을 들러보아도 아무 것도 싹틀 기미가 없고, 아무리 혹독한 강추위와 세찬 눈보라가 온 산천을 뒤덮는다 해도 기어이 봄은 오고야 만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봄은 인간에게 희망을 심어주고 무엇인가를 이루겠다고 하는 각오와 신념을 갖게 한다. 그래서 우리 조상은 일찍이 대문에다 ‘입춘대길 건양다경(立春大吉 建陽多慶)’이라는 글귀를 써 붙이고 집안의 화목과 번영, 그리고 가족의 안녕을 빌곤 했다.

남북한이 두 동강나고 쌍방 총부리를 겨누고 산지 어언 70여년, 과연 올 봄 한반도에 밝고 희망찬 봄이 올까. 얼마 전 폐막된 강원도 평창 동계올림픽에 북한에서 대거 방문단이 참석해 한반도와 세계를 들썩이게 하더니, 이제 다시 남한의 대북특별사절단이 북한을 방문하고 돌아와 또 다시 한반도를 뒤흔들고 있다. 어둡고 암담한 한반도에 예기치 않은 봄소식을 가져왔기 때문이다. 드디어 한반도에 남북긴장이 해소되고 북미간에 화해의 물꼬가 터지려는 조짐일까.

이제 핵무기만으로는 더 이상 체제유지에 어려움을 느낀 걸까. 하루아침에 북한의 노동당 위원장 김정은이 남한측 대북특사단을 전례 없이 반갑게 맞이하고 미소로 화답, 남측 대통령의 친서를 받아 쥐고 순순히 남북한 관계개선과 화해의 물꼬를 터가겠다고 했다니 과연 이것이 꿈인지 생시인지 모르겠다.

4월말 판문점 평화의 집에서 남북한 정상회담은 물론, 남측 태권도단과 연예단의 북한 방문 공연 등도 개최키로 했다고 한다. 툭하면 발목을 잡고 사사건건 트집을 잡던 김정은의 행보치곤 너무도 판이해 어디까지 믿어야 될지 모르는 형국이다. 김정은도 이제 더 이상 강경 대북압박에 견딜 수 없었는지 체제유지만 보장한다면 비핵화도 할 용의가 있고 미국과도 대화에 응할 뜻이 있다고 했다니 그것이 사실이라면 한반도 평화정착과 남북한 관계개선에 더 이상 무슨 문제가 있겠는가.

이를 계기로 한반도 전쟁위기가 종식되고 미국과의 관계도 정상화돼 한반도에 진정 평화가 정착되는 날이 하루빨리 왔으면 하는 바람이다. 반드시 이런 날이 올 것이라 믿고 싶다. 이것이 역사의 필연 아니겠는가.

<여주영 뉴욕지사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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