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트럼프의 바보짓

2018-03-06 (화) 민경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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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자 모든 것을 만들려 하지 말고 잘 하는 일을 해 그 산물을 주고받는 것이 이익이라는 것을 알아낸 것은 인류가 이룩한 위대한 업적의 하나다. 이로 인해 분업과 상업이 가능해졌고 이를 통해 인류는 물질적 풍요로움을 누릴 수 있게 됐다.

개인간에 적용되는 이 원리가 국가간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어떤 나라도 모든 물건을 잘 만들 수는 없다. 그 나라가 놓인 위치와 자원, 인력과 기술이 다르기 때문이다. 문명이 생긴 이래 모든 나라는 무역을 통해 경제를 발전시켜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외국과의 무역을 공권력으로 막으려는 움직임도 오래 전부터 있었다. 그 대표적인 것이 근대 초기 유럽의 중상주의다.

정부가 관세 장벽으로 비효율적인 산업을 보호하려 할 경우 승자는 경쟁력 없는 산업 종사자고 패자는 싸고 질좋은 외국 물건 대신 비싸고 조악한 자국 상품을 사야 하는 일반 국민이다. 게다가 관세 장벽으로 수출길이 막힌 상대방이 보복 관세로 이에 대응할 경우 수출업 종사자들은 직격탄을 맞게 된다.


이런 사태가 역사적으로 실제 일어났다. 1930년 대공황이 몰아닥치자 리드 스무트 연방 상원의원과 윌리스 홀리 연방 하원의원(둘 다 공화당원이다)은 자국 산업을 보호하겠다며 2만개 물품에 대대적인 관세를 부과하는 스무트-홀리 법안을 통과시켰다.

이 법이 시행되면서 잠깐 동안은 고용이 늘어났다. 수입품을 구할 수 없게 된 소비자들이 국산을 사면서 국내 생산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그러나 상대국이 보복 관세를 부과하기 시작하면서 1929년부터 4년 사이 수입은 66%가 줄고 수출은 61%가 감소했다. 이 모두가 관세 때문은 아니지만 보호무역주의가 사태를 악화시켰다는데는 이론이 없다.

연방 의회도 이를 인정하고 1934년 상호 무역협정법을 통과시켜 스무트-홀리법을 폐지했다. 제2차 대전이 끝난 후에는 ‘관세와 무역에 관한 일반 협정’(GATT)을 체결해 자유무역을 기본 정책으로 삼았고 이는 나중에 ‘세계무역기구’(WTO)로 발전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2차 대전 이후 지난 70년은 세계 경제가 역사상 가장 비약적으로 발전한 기간이고 이는 자유 무역주의를 근간으로 하고 있다.

미국이 중심이 돼 마련한 이 체제가 최근 흔들리고 있다. 후보 시절부터 미국 우선의 일방주의를 외친 트럼프가 지난 주 미국 산업 보호를 이유로 외국산 철강과 알루미늄에 대대적인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는 이를 통해 사라진 제조업 일자리를 늘리겠다고 주장했으나 이는 이뤄지지 않을 것이다.

지난 수십년간 미국에서 많은 일자리가 사라진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 대부분은 외국 물건이 아니라 자동화 때문이다. 2000년 이후 중국과의 경쟁에서 밀려 없어진 일자리 수는 200만에서 240만개로 추산되는데 자동화 때문에 사라진 일자리는 그 5배가 넘는다. 미 철강 산업의 경우 1962년부터 2005년 사이 이 분야 근로자의 75%에 달하는 40만명이 직업을 잃었지만 생산량은 줄지 않았다. 기술 발전으로 근로자 수를 대폭 줄이고도 같은 양을 생산하는 것이 가능해진 것이다.

트럼프의 관세가 시행되면 14만에 달하는 철강업 종사자들은 혜택을 보겠지만 그 피해는 650만 철강 소비 산업 종사자와 미 국민들에게 돌아간다. 소비자들은 더 비싼 돈을 주고 차와 냉장고 등 철강 관련 제품을 사야 하고 비용 증가는 판매 감소와 일자리 감축으로 이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트럼프는 이번 관세 근거로 국가 안보가 위협받을 경우 일방적으로 관세를 부과할 수 있다는 무역법 조항을 들었다. 미국이 수입하는 철강 중 중국산은 2.2%, 러시아산은 8.7%에 불과하다. 최대 대미 철강 수출국가는 미국의 우방인 캐나다로 16%, 한국 10%, 멕시코 9% 등이다. 이중 어느 나라가 미국 안보를 위협한다는 말인가. 트럼프가 아니면 내뱉을 수 없는 궤변이다.

미국의 최대 교역국이자 미국 철강의 50%를 수입하고 있는 캐나다와 유럽 연합은 이미 보복 관세 부과를 검토하고 있고 폴 라이언 연방 하원의장도 무역 전쟁에 대한 우려를 표시하며 관세 부과 철회를 요청했지만 트럼프가 이를 받아들일 지는 미지수다.

“무역 전쟁은 좋은 것이며 이기기 쉬운 것”이라는 트위트에서 그의 끝모를 무지와 억지가 엿보인다. “신이 인간을 벌하려 할 때는 그 소원을 들어준다”는 속담이 있다. 신이 트럼프의 소원을 들어줄 지 두고 볼 일이다.

<민경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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