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내로남불’ 이야기

2018-02-27 (화) 민경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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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김영철의 방한을 둘러싼 논란이 한국에서 연일 증폭되고 있다. 천안함 폭침 사건으로 지목되고 있는 김영철이 한국에 온 것을 두고 이성우 천안함 46 용사 유족 협의회 회장은 “’왜 김영철이 한국 땅을 밟게 된 것이냐’는 유족 질문에 청와대가 만족할만한 답변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며 “이 상태가 게속된다면 추가 집단 행동을 검토할 것”이라고 말했다.

풍찬노숙을 하며 김영철이 오는 길목을 막았던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는 “국군 ‘뒤통수권자’가 살인범을 불러 놓고 짝짜꿍을 하고 있다”며 서울 청계 광장에서 김영철 방한 규탄 장외 집회를 열고 문재인 정부를 비판했다.

이에 대해 여당인 더불어 민주당은 자신들이 집권했을 때는 아무렇지 않게 만났던 인물을 문재인 정부는 만나서는 안된다는 주장은 억지에 불과하며 ‘내로남불’의 전형적인 모습이라고 맞서고 있다.


‘내로남불’은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의 줄임말로 한국에서 요즘 인기가 높은 유행어인데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지난 수년간 한국 정치판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태 중 이에 해당되지 않은 것이 없을 정도기 때문이다.

지금 여당인 더불어 민주당은 과거 야당 시절 한일 위안부 합의와 관련, 위안부들의 동의가 없었기 때문에 원천 무효라며 집요하게 물고 늘어졌다. 그러더니 집권한 후에는 당사자들과 아무런 협의 없이 여자 아이스하키 남북 단일팀을 밀어 부쳤다.

일방적으로 대한민국 선수들의 출전권을 뺐는 것은 문재인이 표방한 공정 사회와 거리가 멀다는 비판이 쏟아지면서 젊은 층의 지지도가 폭락하자 정부 여당은 소통 부족을 인정했지만 불과 한 달만에 천안함 유족과는 아무런 상의 없이 김영철의 방한을 허용했다.

청와대는 속으로는 ‘국가 중대사를 결정할 때 국민 몇몇의 동의가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니다’라고 말하고 싶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 와서 그렇게 말할 수는 없다. 그럴 경우 지난 번 위안부 합의 때 주장했던 자신들의 논리가 무너지기 때문이다.

또 과거 심학봉 의원 성폭행 사건과 박희태 전 국회의장 캐디 성추행 사건 등이 연이어 터지자 야권과 재야 ‘진보’ 단체 등은 당시 새누리당을 ‘성누리당’으로 부르며 여권을 짓밟는 전근대적 정당으로 매도했다.

그러나 최근 ‘미투’ 운동과 함께 문화 종교계 인사들의 성추행 비리가 연일 터지는데도 이들은 매우 조용하다. 이 사실은 이번에 성추행범으로 지목된 인사들이 대부분 문재인 지지자들이라는 사실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남수단까지 자원 봉사하러 간 신도를 성폭행하려다 미수에 그친 사실을 인정한 한만삼 신부는 ‘정의 구현 사제단’ 소속으로 구 통진당 이석기 전의원과 한상균 전 민주노총 위원장 석방 운동에 앞장 선 인물이다. 이 신부가 속한 수원 교구는 이 사실을 알고도 묵인해 오다 사건이 언론을 통해 알려지자 “사흘만 있으면 잠잠해진다”는 문자를 신도들에 보내 언론 접촉을 막았다.


수십년간 젊은 여자들을 주물러 온 것으로 알려진 고은은 좌파 문화 권력의 중심인 민예총 창설자로 광우병 난동극을 주도했으며 문재인 핵심 지지자의 하나다. 역시 수십년간 여배우들을 성폭행한 혐의를 받고 있는 이윤택은 문재인과 고등학교 동기동창으로 2012년 문재인 지지 연설을 한 인물이다.

더불어 민주당은 부산 광역시당 여성 당원이 같은 당원으로부터 성추행 당했다는 신고를 받고도 이를 묵살하다 뒤늦게 조사에 들어갔고 평창 올림픽이 열리고 있는 동안에는 민주당 심기준 의원의 보좌관이 술집에서 성추행하다 경찰에 연행됐다. 심의원은 이를 사과하고 비서관의 사표를 받았다.

과거 새누리를 ‘성누리’로 매도하던 ‘진보’ 인사들은 이런 사태에 어떻게 대응하고 있을까. 한 때 ‘나는 꼼수다’라는 팟캐스트로 이름을 날린 김어준은 ‘미투’ 운동이 “문재인 정부 지지자들을 분열시킬 ‘정치 공작’에 이용될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했다. 평소 여권과 인간 평등을 외치던 이들이 성추행범들이 ‘자기 편’으로 드러나자 이들을 비난하기보다 이를 고발한 사람들을 ‘진보’ 분열 공작에 말려든 멍청이로 매도하는 형국이다. 이쯤 되면 ‘내로남불’의 새로운 경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문재인은 ‘미투’ 운동을 지지한다 말했지만 대한민국을 매춘 천국으로 묘사하고 이에 대한 찬사를 보낸 후 “오늘도 즐겨라”를 외친 탁현민이 청와대에 남아 있는한 이는 공염불일 뿐이다. 대한민국 정치인들은 남탓을 하기 전 스스로를 돌아보기 바란다.

<민경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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