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문제는 결국 방향성이 아닐까

2018-02-19 (월) 옥세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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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립스틱 외교’, ‘모나리자의 얼굴’, ‘북한의 이방카’-. 평창 올림픽이 개막되자 미 언론을 장식했던 말들이다. 핵 위협에, 미사일을 마구 쏴댄다. 육두문자를 불사하면서.

그런 북한이 편 매력공세에 전 세계의 이목이 쏠렸다. 이것이 평창 올림픽의 초반전 상황이었다. ‘이 평창 올림픽은 무엇을 보여주고 있나’- 관련해 한 미국 언론이 질문을 던졌다. 그리고 스스로 답을 내렸다. ‘오히려 남과 북의 격차가 날로 더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이 아닐까’-.

올림픽에 참가한 선수 전원에게 삼성전자의 스마트 폰이 선물로 주어졌다. 북한 선수들만 받아들이지 않았다. 왜. 대한민국 체제의 우월성을 보여주기 위한 선전전으로 보아서인가. 아니 그보다는 스마트 폰 자체가 그들에게는 쓸 데 없는 물건이기 때문이다.


작은 에피소드다. 그러나 날로 심화되고 있는 남과 북의 격차를 상징하고 있다는 거다.

이른바 ‘북한의 미녀 응원단’을 대하는 태도에서도 남과 북의 이질감은 드러난다. 일사불란한 응원을 펼친다. 얼굴의 미소까지 동시에 피어날 정도로. 그 북한 응원단의 모습 속에서 한국의 관중들이 보는 것은 굴종만 강요하는 전체주의 체제의 모습이다.

이제 설 연휴와 함께 중반전에 접어들면서 평창 올림픽은 스포츠제전으로서 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와 함께 하나 둘 드러나기 시작하는 것은 한층 성숙된 한국의 모습이다.

아주 당당하다. 패기에 넘쳐 있다. 메달을 따낸 한국의 10대, 20대 올림피언들의 모습 말이다. 비인기종목에 메달도 받지 못했다. 그런 선수들도 당당하기는 마찬가지다. 여자 스노보드 최연소 우승기록을 세운 10대 재미동포 2세 클로이 김도 그렇다. ‘아메리칸 드림’에 ‘코리안 드림’이 오버랩 돼 있다고 할까. 그래서 더 감동적이다.

‘한국인의 자긍심이 되살아나고 있다’- 초반을 지나 중반전으로 접어든 평창 올림픽을 통해 새삼 드러나고 있는 광경이다.

‘평창의 상공에는 한반도기가 휘날리고 있다. 그 한반도기에 쏟아지고 있는 평화에의 염원과는 달리 그 저류에는 심각한 긴장이 흐르고 있다’- 평창 올림픽을 바라보는 또 다른 시선이다. 이와 함께 던져지는 질문은 이렇다. ‘김정은은 왜 여동생 김여정을 파견하면서까지 파격에 가까운 평화공세를 펴고 있는 것일까.’

“2018년의 시작과 함께 북한은 칼날 위에 서 있는 형세를 맞고 있다. 핵실험에, 미사일발사에 거칠게 없었다. 2017년의 상황이다. 그 결과 자초한 것은 전례 없이 강경한 국제사회의 응징이다. 중국마저 주저할 정도다. 북한은 사면초가의 상황을 맞이했다. 경제가 마비된 것은 물론이다. 북한이라는 국가의 안정마저 흔들리고 있다.”

아메리칸 엔터프라이즈 인스티튜트의 니콜러스 에버스타트의 진단이다. 김여정까지 동원된 대대적인 ‘립스틱 외교’, 그 평화공세는 뒤집어 보면 북한체제가 맞은 절박성을 반영하고 있다는 것이다.


북한 전문가 안드레 란코프도 비슷한 진단을 하고 있다. 북한의 평창 올림픽 참가는 평화에의 염원에서가 아니다. 미국의 공격이 두렵다. 그것을 피하고 보자는 것이 그 우선의 목적이다. 그리고 국제사회의 대북 응징체제의 한 축을 허물어 보지자는 것이 또 다른 목적이라는 거다.

어떤 계산 아래 김정은은 이런 도박에 가까운 대남 구애작전을 펴고 있나. “한국이, 더 좁혀 말하면 문재인 정부는 북한제제라는 국제사회의 연결고리 중 가장 약한 부분이라는 판단에서다.” 계속되는 에버스타트의 지적이다.

보수와 진보, 아니 그보다는 우파와 좌파로 갈라져 준 내란상태에 있는 것이 현재의 대한민국 이다. 한국의 좌파는 대한민국 그 자체의 정통성을 인정하려들지 않는다는 데에서 다른 나라의 좌파와 다르다.

그러면서 북한에 대해 일종의 콤플렉스를 지니고 있다. 민족의 순수성은 북한이 지키고 있다는 것이 그들의 생각이다. 그 ‘전통적 좌파들’이 두루 포진하고 있는 곳이 문재인의 청와대다. 바로 거기에 기대를 걸고 김정은은 ‘올인’에 가까운 평화공세를 펴고 있다는 진단이다.

이와 함께 북한이 내세우고 있는 것이 ‘우리끼리’란 구호다. 외세를 배제하고 우리민족끼리 남북문제를 해결하자는 그럴듯한 평화공세를 펴고 있다는 것이다. 그 전략이 먹힐까.

“혈연중심의 민족주의는 한국에서 이제 그 입지가 점차 약해자고 있다.” 란코프의 지적이다. 이 한국의 전통적 민족주의에서 통일은 항상 주요 논제였다. 그런데 이제는 그게 시들해졌다.

‘북한은 한민족의 구성원이 아니다’란 시각이 점차 넓혀지고 있는 것이다. 특히 젊은 세대에서 그 같은 인식이 확산돼 30대 이하에서 37%가 그 같은 생각인 것으로 밝혀졌다.
그러니까 ‘우리민족끼리’는 이제 철지난 유행가인 셈이다. 그런데도 북한당국은 그 유행가를 제창을 통해 한국국민의 정서를 파고드는 전술을 구가하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문재인 정부도 같은 주제곡을 선호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남북문제에 왜 외부세력이 간섭인가’- 벌써부터 청와대 일각에서 불거지고 있는 불만이라고 한다. 동시에 이런 이야기도 들려온다. 올림픽이후로 예정된 한미군사훈련을 또 다시 연기하는 안을 모색 중이다, 가급적 빠른 시일 내에 남북정상회담을 성사 시키겠다 등등.

문재인 정부의 문제는 아무래도 방향성에 있는 것이 아닐까. 그런 생각이 점점 짙어진다.

<옥세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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