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폭락하는 다우

2018-02-06 (화) 민경훈 논설위원
작게 크게
도널드 트럼프는 주식 시장에 대해 이야기 하기를 좋아한다. 무리도 아니다. 다우 존스 산업지수는 그가 당선된 후 지난 1월 26일까지 8,000 포인트, 그가 취임한 후부터 따져도 6,000포인트 이상 올랐다. 이에 고무된 트럼프는 지난 주 국정 연설에서도 자기가 당선된 후 미국 주식 시장이 기록을 거듭 깨며 시가 총액으로 따져 8조 달러나 증가했다고 자랑했다.

미국 대통령들은 주식 시장에 대해 잘 이야기하지 않는 것이 관례다. 대통령 직무 수행과 주식 시장의 등락은 직접적인 상관 관계가 없으며 주가가 폭락할 때 대통령이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주가 상승이 자기 공이라고 주장하면 주가가 폭락했을 때 그에 대한 책임도 져야 한다.

트럼프가 국정 연설을 한 지난 주는 미국 증시가 트럼프 취임 후 30% 까진 올랐던 상승을 마감하고 하락세로 반전한 주다. 그 주 한 주 동안 2일 666 포인트 하락을 포함 1,100 포인트 떨어졌다. 그리고는 5일 사상 최대 폭인 1,175 포인트 폭락했다. 불과 1주일 사이 8.5% 추락하며 올 상승분을 모두 까먹었고 미 증시에서 2조 달러 가까운 돈이 날아갔다.


5일 하락은 단순 포인트로는 크지만 비율로는 4.6%로 역대 최고치인 1987년의 22.6%(508포인트)에 훨씬 못 미친다. 또 주가가 폭락했다고 반드시 불경기가 오는 것도 아니다. 1987년 대폭락에도 불구, 미 증시는 그 해 말 플러스로 장을 마감했고 경기도 나쁘지 않았다.

그러나 주가 폭락을 그냥 가볍게만 볼 수도 없다. 1929년 대공황과 2008년 세계 금융 위기는 주가 폭락과 함께 시작됐기 때문이다. 지난 1주간의 폭락은 어느 쪽에 속하는 것일까.

대다수 전문가들은 지금 세계 경제가 동반 상승하고 있고 올 경기가 좋을 것으로 전망되는만큼 일시적인 주가 하락에 일희일비할 것 없다고 말한다. 오히려 그 동안 미국 증시가 거의 조정이 없었다며 떨어져 바닥을 다진 다음 다시 오르는 것이 더 건강하다고도 주장한다. 일리가 있는 말이다.

그러나 지금 미국 주가는 여러 객관적인 기준으로 볼 때 1929년 대공황과 2000년 하이텍 버블이 터지기 직전을 제외하고는 가장 과대 평가돼 있다. 주식 평가의 가장 기초자료인 수익에 대한 가격 비율(PE ratio) 가운데 기존 수익에 대한 PE 비율, 미래 수익에 대한 PE 비율, 장부상 가치, 배당금 비율 등이 모두 평균을 훨씬 웃돌고 사이클을 감안한 PE 비율은 역대 평균치의 2배가 넘는다. 이들 수치는 향후 주식의 상승폭이 제한적일 것을 말해준다.

2009년 금융 위기가 한창일 때 다우 지수는 6,000대까지 떨어졌다. 올 들어 2만6,000을 넘었으니까 9년 사이 4배나 오른 것이다. 그러나 주식에 투자해 이 정도 돈을 번 사람은 거의 없다고 봐도 된다. 2009년은 세계 경제가 파국으로 치닫고 있다는 뉴스가 온 지면과 방송을 뒤덮던 때였다. 그런 상황에서 주식에 투자한다는 것은 보통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반면 지금은 대대적인 감세안이 시행되고 실업률은 최저며 전 세계 경제는 동반 호황을 구가하고 있다. 주식 시장에 투자하기 아주 좋은 때처럼 보인다. 돈을 벌기가 그처럼 쉬우면 모든 사람이 오래 전에 부자가 됐을 것이다.

주식 시장 불변의 진리는 주식은 오르기도 하지만 떨어지기도 한다는 것이다. 많이 오르면 떨어지는 폭도 크다. 그리고 떨어지는 속도는 오르는 속도보다 훨씬 빠르다. 많은 돈을 벌어 잘 먹고 잘 살고 싶은 욕망보다 전재산을 날리고 쪽박 차고 싶지 않다는 공포의 힘이 더 크기 때문이다. 나스닥이 1995년 1,000에서 2000년 5,000까지 가는데 5년 걸렸지만 다시 1,000으로 떨어지는데는 2년이면 충분했다. 다우가 2002년 7,500에서 2007년 1만4,000 가는데 5년 걸렸지만 6,600으로 추락하는 시간은 1년 5개월이 채 안 됐다.

지금 미 증시는 9년 동안 호황을 이어왔다. 황소 치고는 매우 늙은 황소다. 언제 곰으로 돌변할 지 아무도 모른다. 은퇴가 가까운 사람, 여유 자금이 부족한 사람, 심장이 약한 사람은 투자에 신중해야 할 때라 본다.

<민경훈 논설위원>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