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서울 신드롬’ 과 ‘대한민국 국민주의’

2018-01-29 (월) 옥세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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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들짝 놀랐다고 할까. 당황한 표정이 역력하다. 문재인 대통령 지지율이 50%대로 떨어졌다. 취임 후 처음 있는 일로 기고만장하던 청와대가 놀라긴 몹시 놀란 모양이다.

좀처럼 화내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그런 문 대통령이 청년 일자리 점검회의에서 평소답잖게 직설화법을 써가며 화난 모습으로 목소리를 높였다.

그 모습이 그렇다. 지지율이 계속 떨어지고 있다. 특히 핵심 지지층인 20~30대 젊은 층에서 반란수준의 이탈현상마저 보이고 있는 것이다. 이와 결코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취임 때 84%가 넘었다. 그리고 7개월이 넘도록 70%대를 줄곧 유지해왔다. 그러던 문 대통령지지율이 59.8%(리얼미터 조사)로 떨어졌다. 알앤써치의 1월 넷째 주 정례조사도 지지율을 56.7%로 밝혔다. 두 주 전과 비교하면 거의 15% 포인트 정도 떨어진 것으로 그 하락 속도가 아무래도 예사롭지 않아 보인다.

무엇이 잘못 되어서인가. 이념에만 치중해 현실성보다는 당위성만 앞세웠다. 반대세력에게는 등을 돌리고 지지 세력에만 초점을 맞추는 국정운영방식을 고수해왔다. 그러니까 좌파만 의식한 ‘캠페인’식 국정운영은 이슈마다 반대세력만 양산했다는 지적이 따르고 있다.

말만 통합이지 ‘내편’과 ‘코드’만 중시했다. 그 문재인정부의 걷잡을 수 없는 폭주에 대한 반감이 지지율 하락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거다.

특기할 현상은 거의 모든 연령층, 또 모든 지역에서 지지율이 빠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탄핵지지층에서 문 대통령에게 등을 돌리는 사람들이 나오기 시작했다는 것을 의미할 수도 있다.

지지율 하락의 기폭제 역할을 한 것은 아무래도 북한의 평창올림픽 참가를 둘러싼 논란 같다.

한반도기를 들고 남북선수단이 공동입장을 하기로 결정했다. 마뜩찮지만 거기까지는 그런대로 오우 케이. 그런데다가 여자 아이스하키 남북단일팀 구상을 일방통행 식으로 관철시켰다. 그리고 안하무인격인 ‘현송월 점검단’에 대해 문재인 정부는 비굴할 정도의 저자세를 보인 것이다.

여론이 폭발했다. 특히 20~30세 젊은 세대에서. 촛불의 주역이다. 그 젊은 세대가 크게 요동치면서 지지율은 하락을 거듭하고 있다. 이는 그러면 젊은 세대의 분노, 그에 따른 ‘한 때의 일과성의 현상’으로 그치고 말까.


“오늘날 한국의 젊은 세대는 전 세대와 다른 눈으로 세계를 바라본다. 거기서 비롯된 ‘대한민국 국민주의’(South Korea nationalism)의 분출로 봐야 할 것 같다.” 데일리 비스트의 고든 챙의 분석이다.

문재인 정부는 유일하고도, 적법한 한국국민의 대변자로 자처해왔다. 특히 촛불로 탄생한 정부임을 내세우면서. 그러나 사실에 있어 문재인 정부는 남북연방제를 지지하는 좌파세력이다. ‘햇볕’의 충실한 계승자로 과거 한국의 좌파 정권처럼 중증의 ‘서울 신드롬’증세를 보이고 있다. 북한이 ‘막가파’식의 협박을 해온다. 그럴 때 마다 마냥 퍼주기만 하는.

그 문재인 식 한국형 내셔널리즘에 도전장을 낸 것이 젊은 세대의 ‘대한민국 국민주의’로 해석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의 의식은 오로지 대한민국이라는 환경에서 형성됐다. 그들이 알고 있고, 경험한 대한민국은 민주체제다. 경제적으로 풍요하고, 안정적이다. 군사독재체제 경험도 없다. 북한이라는 체제는 그들에게 남의 나라로 들린다. 대한민국은 그들에게 유일한 ‘우리나라’다.” ‘대한민국 국민주의’의 주체인 오늘날 젊은 세대에 대한 한국문제 전문가 에마 캠벨의 묘사다.

“이 세대는 한국 사회 특유의 현대성(modernity), 세계주의(cosmopolitanism), 그리고 국제적 위상에 무한한 긍지를 느끼고 있다. 그 ‘대한민국 국민주의’는 세계화된, 문화적 내셔널리즘으로 분류될 수 있다.” 계속되는 설명이다.

‘김연아의 나라’, ‘박태환의 나라’ 그리고 테니스 세계 4강에 오른 ‘정현의 나라’가 그들이 알고 있는 대한민국이다. ‘헬조선’이니, ‘흙수저’니 어두움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한류(韓流)의 나라, 세계 반도체 30%이상을 생산하는 IT강국, 촛불의 나라가 한국임을 자랑한다.

열려 있는 사회, 그 대한민국에는 압제와 인권탄압, 빈곤과 핵미사일로 상징되는 김정은의 북한은 끼어들 여지가 없는 것이다. 이것이 그들의 북한관이고 통일관이다.

촛불도 그렇다. 젊은 세대는 좌파의 이념에 물든 것이 아니다. 불의한 권력에 분노했다. 그래서 공정과 정의의 깃발을 들었을 뿐이다.

촛불에 스스로 마비됐다. 대통령 취임 후 줄곧 70%대의 지지율을 보였으니까. 그 문재인 정부가 착각 수를 두었다. 북한에 평화를 구걸하면서 “바람 앞에 촛불 지키듯 남북대화를 지켜달라며 독선적 결정을 내린 것이다. 그것이 마치 시대의 대의(大義)인 양.

여기서 다시 앞서의 질문으로 되돌아간다. 문재인 지지율 급락사태, 이는 젊은 세대의 분노, 그에 따른 ‘한 때의 일과성 현상’으로 그치고 말까. 아무래도 아닌 것 같다.

평화도 좋고, 남북대화도 좋지만 그 비굴한 자세는 오히려 대한민국 국민의 자존심을 건드렸다. 평창은 자랑스러운 한류의 나라, 대한민국의 ‘커밍아웃’무대가 되어야 한다. 그 평창이 북한이라는 세계최악의 폭정체제 선전무대가 되고 있다는 점에서 특히 대한민국 젊은 세대의 자존심이 구겨진 것이다 그 분노가 확산되고 있다. 이제는 세대와 계층과 지역을 넘어서.

이런 면에서 평창올림픽은 뭔가 탄핵이후 한국 정치에 대반전의 계기를 마련해주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스친다. 함성에 가려 촛불은 모두 한 가지 색으로 치부됐었다. 그 촛불 색깔의 분광기(分光器)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 평창올림픽 같다. 그러니까 좌파가 주장하듯 한 목소리가 아닌 것이 새삼 드러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재인 대통령은 북한에 대한 환상을 접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북한 핵은 자위용이고, ‘햇볕’을 계속 쏟아 부으면 김정은은 협상에 나올 것이라는 미몽(迷夢) 말이다.

그나저나 평창 이후가 더 걱정이다. 여전히 들려오는 것은 전쟁의 소식인데 평화의 ‘페이크 뉴스’에 계속 들떠 있는 것이 한국 정부 같이 보여 하는 말이다.

<옥세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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