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추락하는 문재인

2018-01-23 (화) 민경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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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 우리당은 2003년 정치 개혁의 완수를 내걸고 47석의 미니 여당으로 출범했다. 그러나 2004년 소수 여당을 우습게보고 한나라당과 민주당 등이 추진한 노무현 탄핵안은 이 당의 운명을 바꿔 놨다. 대통령이 집권당 지지 발언을 했다는 억지 이유로 야당이 밀어붙인 탄핵안은 국회는 통과했지만 ‘국민이 뽑은 대통령을 국회가 쫓아내려 한다”는 역풍에 직면, 그해 4월 열린 총선에서 열린 우리당의 의석수는 152석으로 수직 상승했다.

승리의 기쁨에 취한 열린 우리당은 100년 정당을 꿈꿨으나 아마추어식 정치 행태와 정책 실패, 집권당 내 의견 분열 등으로 집단 탈당이 이어지더니 2007년 대통합 민주신당에 흡수 통합되면서 4년의 짧은 생을 마감하고 말았다. 이처럼 빨리 폈다 진 정당은 한국 역사상 없을 것이다.

그렇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열린 우리당의 급성장이 자기 힘이 아니라 노무현 탄핵이라는 야당의 떡수 덕이었기 때문이다. 남의 실수로 일어난 당이 실력도 없으면서 기고만장 하다 제풀에 쓰러진 것이 열린 우리당의 역사다.


제대로 된 사람이라면 과거의 잘못에서 교훈을 찾는다. 과거 잘못을 저지른 것이 자신이라면 더욱 그렇다. 지금 한국의 집권 여당 중 상당수 인사는 열린 우리당에 몸담았던 사람들이다. 그러나 지난 수개월간 이들이 하는 것을 보면 그 때의 실패에 대한 아무런 반성이 없다.

지금 더불어 민주당이 집권한 것은 야당일 때 잘 한 것이 있어서가 아니다. 10년 가까이 정권을 쥐고 있었으면서 당 이름 바꾸는 것만 말고는 뭘 했는지 알 수 없는 한나라/새누리/자유한국당의 행태와 박근혜의 실정에 분노한 국민들이 야당에 기회를 준 것뿐이다.

그러나 문재인이 집권한 후 내놓은 지난 수개월 동안의 정책은 대부분 국민들을 실망시키거나 혼란스럽게 한 것들이다. 최저 임금 대폭 인상은 일자리를 잃은 알바생과 는 비용 때문에 고통받는 자영업자들의 분노를 사고 있고 기간제 교사의 정규직화는 예산 부족과 정규 교사와의 형평성 문제로 폐기됐다. 유치원의 영어 교육 금지안은 돈 있는 집 아이만 영어 교육을 받게 한다는 학부모들의 반발로 철회됐고 가상 화폐 투기 광풍을 막기 위해 거래소를 폐쇄하겠다는 법무장관의 발표는 젊은 세대의 반대로 무산됐다.

문재인 정부가 출범 초부터 목을 맸던 남북 대화 재개도 정부 지지율을 올리는데 역효과를 내고 있다. 최근 갤럽 조사에 따르면 문재인 지지율은 66%로 1주일 사이 6% 포인트가 빠졌다.

남북은 한 민족이라며 북한 집권층에 대해 관대한 586과는 달리 한국의 젊은 세대들은 북한 김씨 왕조에 대한 환상이 없다. 이들에게 김씨 일가는 천안함을 침몰시켜 한국 젊은이들을 수장시키고 목함 지뢰로 발목을 끊은 집단이고 김정은은 부모 잘 만나 호의호식 하며 툭 하면 한국을 불바다로 만들겠다고 협박하는 핵수저일 뿐이다.

이들에겐 선수들이 한반도기를 들고 올림픽 행사장에 들어오는 것이 한반도에 평화를 가져다주리라는 환상이 없다. 오히려 남북한 단일팀을 만든다며 4년간 피땀 흘린 선수들 출전권을 박탈하는 것이 공정한가를 묻고 있다. 남북 단일팀 구성에 반대하는 40대는 68%였지만 20~30대는 82%에 달했다. 한일 위안부 합의가 위안부 의사를 반영하지 않은 절차상의 문제가 있다던 문재인 정부가 남북 단일팀을 구성하며 선수들과 일말의 상의도 없었다는 것은 자가당착이다.

정부가 떡수를 연발하고 있는 것과 때맞춰 집권 여당의 태도는 오만불손하기 이를 데 없다. 작년 가을 추미애 대표는 방미 성과를 묻는 기자 질문에 “빠져 주셔 귀하는. 노땡큐”라고 말했다. 여당 대표는 그만 두고 말단 정치인으로도 경망한 발언이다.

최근에는 또 인터넷 댓글을 보고 “익명의 그늘에 숨어 대통령을 재앙으로 부르고 지지자를 농락하는 것은 명백한 범죄 행위”라며 “이를 방기하는 포털의 책임도 묻지 않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명예 훼손죄를 개정해 언론에 막대한 배상금을 물리겠다는 트럼프 식 천박함과 언론의 자유에 대한 무지가 엿보인다.

문재인은 집권 초 80%가 넘던 지지율을 회복할 수 있을까. 어려울 것이다. 1987년 이후 초기에 높던 지지율이 말기까지 이어진 대통령은 단 한 사람도 없었다. 그리고 퇴임 후에는 더 불행한 사태가 벌어졌다. 집권당과 정부는 남 탓을 하기 전에 자신이 무엇을 잘못 하고 있는지 겸허하게 돌아보기 바란다.

<민경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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