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겨울이 그린 수채화, 은빛과 푸르름이 공존하는 제주

2018-01-05 (금) 글·사진(제주)=우현석객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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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눈 내린 한라산 어리목 산길 가지마다 눈꽃·상고대 장관

▶ 사철 짙푸른 화순 곶자왈은 북방·남방한계 식물 어우러져

겨울에는 눈을 쫓아다녀야 한다. 눈이 없는 겨울 풍경은 을씨년스럽기 때문이다. 한라산에 눈이 내렸다는 예보를 듣고 제주로 내려왔다. 도착해서 제주관광공사에 들러 귀동냥을 했더니 “눈이 내린 지 이틀이 지났고 중산간 아래로는 모두 녹았지만 해발 1,000m 위로는 눈이 남아 있을 것”이라고 했다. 그런데 제주관광공사가 추천한 12월 제주관광 10선 보도자료에는 흰 눈이 무색할 정도로 푸르른 곶자왈도 들어 있었다. 곶자왈은 사시사철 짙푸른 활엽수림이 하늘을 가리고 있는 터라 눈 덮인 백록담과 푸르른 숲을 대비시켜 보고 싶었다. 마침 제주의 하늘은 시리도록 파랬고 다음날 예보는 강설 표시가 돼 있었다. 눈이 내리면 시계 확보가 어려울 것 같아 우선 어리목으로 방향을 잡았다.

어리목에서 올려다본 한라산은 눈이 부셨다. 눈은 흰색이건만 눈이 내린 한라산은 은빛으로 빛났다. 어리목은 국립공원관리사무소가 있는 5개 탐방로 중 하나다. 성판악·어리목·영실·돈내코·관음사 등 5개 탐방로 중 백록담 정상으로 오를 수 있는 탐방로는 성판악·관음사 두 곳뿐이지만 해발 1,700m 윗새오름 남벽 분기점까지 이어지는 어리목 코스는 그에 못지않게 인기가 많은 탐방로다. 특히 남벽 순환로를 따라 1.2㎞ 더 나아갈 수 있는데 과거에는 이곳에 정상까지 이어지는 루트가 있었지만 풍화·침식으로 폐쇄되고 말았다.

오후1시가 넘어 도착한 어리목광장에서 사재비오름까지는 낙엽활엽수림이 펼쳐지는데 한 시간쯤 걸리는 1,400m 고지에 이르면 숲이 끝나고 고산 초원이 펼쳐져 시계가 트인다. 사재비오름까지는 가파른 숲길이지만 이후부터는 경사가 완만해져 힘들이지 않고 갈 만하다. 그래도 윗새오름까지는 왕복 5시간 동안 눈길을 걸어야 한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산길로 접어들자 어리목광장 위로는 나뭇가지마다 눈꽃과 상고대가 장관을 이뤘고 하얀 눈을 뒤집어쓴 백록담의 모습도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어리목광장 한쪽에서는 제주관광공사가 주관하는 소규모 축제도 열리고 있어 등반이 부담스러운 가족단위 관광객들이 어린아이들을 데리고 눈 장난에 정신이 없었다.

첫날은 그 정도로 한라산 눈 구경을 마무리한 뒤 다음날 일찌감치 서귀포의 이곳저곳을 배회하다가 박영석 해설사와 약속 시간에 맞춰 화순곶자왈로 향했다. 박 해설사는 기자가 5~6년 전에 한 번 수고를 끼친 적이 있는데 박식하고 성실한 분이다. 1년에 전국 각지를 돌며 40~50명의 해설사를 만나지만 그를 뚜렷이 기억하는 이유다.

박 해설사 역시 수많은 관광객들을 만나 해설을 할 텐데 용케도 기자를 기억하고 있었다. 그를 통해 화순곶자왈의 설명을 듣게 됐다는 사실에 마음이 놓였다. 박 해설사는 “화순곶자왈은 폭 1.5㎞, 길이 9㎞ 규모로 안덕면 상창리 병악오름에서 분출한 용암이 화순으로 흘러내려 생성됐다”며 “이곳의 용암은 점성이 높아 뾰족하고 거친 모양의 바위가 조성됐다”고 말했다.

그 같은 환경 위에 지금처럼 빽빽한 숲이 덮인 것은 지난 1975년 이후다. 연탄과 석유 사용이 대중화되면서 땔감 채취가 뜸해지자 활엽수와 관목들이 생태계를 복원하기 시작한 것이다. 한때는 낙엽수도 번성했지만 지금은 한반도의 아열대화 현상이 뚜렷해지면서 상록활엽수림이 번성하고 있다. 박 해설사는 곶자왈의 정확한 의미를 묻는 기자의 질문에 “곶자왈은 ‘곶’과 ‘자왈’이 합쳐진 제주어로 곶은 ‘숲’이라는 뜻이고 자왈은 ‘나무와 덩굴이 성겨 수풀이 조성된 곳’ 정도로 이해하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제주의 곶자왈은 용암 분출 때 생성된 돌무더기로 인해 농사를 지을 수 없어 그동안 방목지로 이용하거나 땔감을 얻는 벌목소, 약초 등을 채취하는 장소로만 이용되는 등 불모지로 분류돼왔다. 그러나 박 해설사는 “곶자왈 내 화산암으로 조성된 지하에는 강수를 저장하는 능력이 있는데다 북방한계 식물과 남방한계 식물이 공존하며 숲을 이뤄 생태계의 허파 역할을 하고 있다”며 “곶자왈은 투습성이 좋아 비가 오면 지하로 스며든 물이 해안가의 용천수로 나오기까지 18년 정도 걸려 저수조 역할을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제주도에서는 1997년 이래 곶자왈 지대를 지하수 보존 2등급 및 생태보전 3등급 지역으로 관리하고 있는데 도내 곶자왈의 면적은 113.3㎢로 제주도 면적의 6%를 차지하며 제주의 생태를 보존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글·사진(제주)=우현석객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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