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간의 짧지만 고단했던 생애와 작별하는 하루의 이야기를 이토록 가슴 시리게 그려낼 수 있을까.
작가 한강(47)이 새 단편소설 '작별'을 최근 발행된 계간 '문학과사회'(문학과지성사) 겨울호에 발표했다.
지난해 5월 영국 맨부커 인터내셔널 상을 받은 직후 소설 '흰'을 출간했지만 미리 써놓은 작품이었고, 수상 뒤에 쓴 새 소설을 발표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이번 작품은 작가 한강이 세계 문학계에서 주목받는 이유를 다시 한 번 확인시켜준다. 묵묵히 문학에만 몰두하며 세상의 아픔과 슬픔을 끌어안으려는 작가의 결연함이 오롯이 읽힌다.
이야기는 어느 겨울날 주인공인 '그녀'가 집 앞 천변의 벤치에 앉아 깜빡 조는 사이 몸이 눈사람으로 변하면서 시작된다. 버스 정류장에서 만나기로 한 남자친구 '현수'가 도착하고 두 사람은 어찌 된 영문인지 몰라 당황한다. 날씨가 조금 풀린 터라 그녀의 몸은 조금씩 녹기 시작하고, 그녀는 남은 시간 동안 짧지만 고단했던 자신의 생애를 돌아본다.
'그녀'는 스물네 살에 홀로 아이를 낳아 기르면서 작은 직장을 전전해왔다. 아이를 돌볼 시간과 힘이 절대적으로 부족했고 수시로 장·단기 예산을 세우면서 아등바등 아끼고 저금해 아이 대학 자금까지는 마련해 놓았다. "그럼에도 마지막까지 미결로 남는 오직 하나의 문제는 그녀 자신의 노후였다. 언제가 끝인지만 알 수 있다면", "그것만 안다면 미래를 준비하는 이 모든 일이 쉬워질 텐데"라고 늘 걱정하던 그녀가 회사에서도 권고사직을 당한다. 그녀는 회사에 다닐 때 인턴 직원으로 만난 현수가 체불된 임금을 끈기있게 받아내고 오랜 가난을 고요히 버텨내는 것을 보면서 자신과의 어떤 접점을 느낀다.
눈사람이 된 몸이 녹아 사라지기 직전 그녀는 고등학교 진학을 앞둔 아들을 만나러 집에 간다. 아들을 보며 잠시나마 가슴 언저리가 따뜻해지고 자신의 인생에 오직 빛났던 순간은 아들이 돌 지난 아기였을 때 순수한 사랑으로 엄마를 바라보던 순간이었다고 떠올린다.
이 소설은 작가가 그동안 여러 작품에서 꾸준히 말해온 사회적인 폭력의 형태가 좀 더 구체화해 표현된 점이 두드러진다.
소설 주인공이 밤에 자주 꾸는 악몽에는 고(故) 백남기 농민이나 세월호 참사를 떠올리게 하는 장면들이 등장한다.
"노동절 시위 중에 경찰의 과잉진압으로 숨진 노동자의 시신을 경찰이 유족 동의 없이 부검하겠다고 발표한 날 밤에는, 어째서인지 살아 있는 그녀를 부검하겠다며 방역 마스크를 쓴 의료진이 들것을 들고 그녀에게 다가오는 악몽을 꾸었다. 특히 지난 삼 년 동안은 죽은 아이들의 꿈을 되풀이해 꾸었다. 겹겹이 흰 천으로 감싼 수백 명의 아기들의 시신을 차례로 종이 상자에 담으며 그녀는 벌벌 떨었다."
'문학과사회' 편집자는 "이 소설은 눈사람이 돼서 한순간에 아주 작은 자극에도 무너질 수밖에 없는 사람이 하루를 반추하는 이야기에 시대의 슬픔과 아픔을 민감하게 다뤘고 마지막으로 사랑이란 것에 대해서도 감동적으로 그려내고 있다"고 설명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