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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 200만명이 고혈압… 대부분 그 사실 몰라

2017-10-20 (금) 한국일보-뉴욕타임스 특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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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패스트푸드·가공식품 탓, 고혈압 어린이·청소년 급증

▶ 증세 없지만 치료 안하면 심근경색·뇌졸중 발병위험

아동 200만명이 고혈압… 대부분 그 사실 몰라

어린이와 청소년의 고혈압이 최근 급격하게 증가했다. 2~19세의 미국인 약 200만명이 고혈압이지만 그 사실을 진단받은 사람은 4분의 1에 불과하다. [그림 Paul Rogers]

매튜 굿윈이 세살 때 혈압을 체크 했더라면 바로 1년 후의 응급상황을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간단한 수술을 했는데 혈압이 치솟았고, 그 원인을 찾느라 의사들이 동분서주하는 동안 그는 2주나 소아병동 중환자실에 누워있어야 했다.

결국 알게 된 것은 매튜가 선천성 신장장애를 갖고 있어서 고혈압이 온 것이었다. 의사들은 한쪽 신장을 떼어 다른 곳에 이식하는 수술을 집도했다. 지금 15세인 매튜는 혈압강하제를 복용하고 있으며 철저하게 저염 식단을 지키고 있다.

자신과 같은 케이스가 아주 드물지 않으며 수백만명의 미국 청소년들이 높은 혈압(elevated blood pressure)을 갖고 있음을 잘 알고 있는 매튜는 아동신장병 전문의가 되어 이 분야에서 봉사하려는 꿈을 갖고 있다. 그의 어머니 셀레스트 굿윈은 어린이와 청소년이 정기적으로 혈압검사를 받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부모 및 관련자들에게 교육하고 홍보하는 비영리 단체 ‘전국 소아과혈압 인식고취 재단’을 설립했다.


미국 소아과학회는 지난 8월 청소년의 고혈압 검진과 관리 지침을 담은 74페이지의 보고서를 발간했다. 이 보고서는 의사들이 어린 환자의 혈압이 정상 수치인지 금방 알아 볼 수 있는 단순화된 차트도 포함하고 있다.

어린이 혈압은 성인의 혈압측정기로는 잴 수 없고 같은 단위로 수치를 읽어서도 안 된다. 성인의 정상수치처럼 수축기혈압과 확장기혈압의 120/80으로 읽지 않으며 아이의 나이, 성별, 키, 부모의 혈압 등의 요인에 따라 의사가 차트를 보고 해석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 새로 발표된 가이드라인은 아이의 성별과 나이(3~18세)만으로 혈압 상태를 알아보는 쉽고 단순한 차트를 제공함으로써 의사가 오피스 벽에 걸어두고 부모와 아이도 볼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많은 조사에 따르면 현재 높은 혈압을 가진 어린이 4명 중 3명이 그 사실을 정확하게 진단받지 못하고 있다. 지난 해 소아과학 저널에 실린 대규모 조사는 3~18세 어린이와 청소년 환자 120만명의 전자건강기록을 조사한 것인데, 혈압을 쟀던 39만8,079명 가운데 1만2,138명이 고혈압이었고, 3만8,874명이 높은 혈압(전에는 고혈압 전단계라고 했다)이었다.

그러나 고혈압을 가진 사람의 23.2%, 높은 혈압을 가진 사람의 10.2%만이 그 사실을 진단 받았고 적절한 조치가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새로운 가이드라인을 만든 연구팀의 공동의장이며 이 조사를 지도한 클리블랜드의 메트로헬스 시스템 소아과 전문의 닥터 데이빗 캘버는 “가이드라인을 아무리 잘 만들어도 사람들이 그것을 지키고 실행해야만 좋은 것”이라고 말했다.

어린이 고혈압과 높은 혈압의 진단이 왜 그렇게 중요한지 궁금할 것이다. 닥터 캘버는 아이들은 어렸을 때는 고혈압을 갖고 있어도 증세를 보이지 않지만 적절히 치료받지 못하면 이른 나이에 심근경색, 뇌졸중, 신장질환을 겪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높은 혈압을 가진 아이는 성인이 됐을 때 고혈압이 될 가능성이 높고, 이는 심근경색과 뇌졸중의 주요 위험인자다.


새로운 가이드라인의 주요 저자인 닥터 조셉 T. 플린은 어렸을 때 높은 혈압을 가진 청년들은 벌써 심혈관에서 두가지 손상을 갖게 된다고 말했다. 대동맥으로 피를 펌프하는 좌심실이 비대해지고, 동맥경화증 및 심근경색과 밀접하게 연관된 혈관벽이 두꺼워진다는 것이다. 고혈압은 집안 내력이기도 하지만 어린 시절에 점검하고 잡아내면 그 아이의 평생 건강과 생명을 지킬 수 있게 된다는 것이 닥터 플린의 이야기다.

매튜 굿윈의 이야기로도 알 수 있듯이 어린이 고혈압의 약 20%는 근본적으로 치유가 가능한 것이다. “정확한 진단을 하지 않았으면 매튜 역시 죽었을 것”이라고 어머니 셀레스트 굿윈은 말했다.

어린이와 청소년의 고혈압 및 높은 혈압은 최근 수십년 동안 급격하게 증가했다. 아동 과체중과 비만의 증가와 밀접하게 연관된 문제다. 2~19세 아동의 약 17%가 비만이며 200만명의 어린이가 고혈압을 갖고 있다.

아동 고혈압이 이처럼 많아진 또 다른 주요 이유는 패스트푸드와 가공식품, 염분이 많은 스낵을 점점 더 많이 먹기 때문이다. 혈액에 나트륨의 양이 많아지면 신장으로 가는 미세한 혈관들이 과도한 부담을 받게 된다.

소아과학회의 새 가이드라인은 모든 아동보건 진료소나 의료기관의 관계자들이 어린이 환자가 과체중이 아니거나 건강에 이상이 없어 보이더라도 반드시 혈압을 재고 기록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이런 진료과정이 지켜지지 않는 경우를 방지하기 위해 닥터 캘버는 부모들이 의료진에게 “우리 아이 혈압은 어떤가요?”라고 물어볼 것을 제안했다.

차트 상으로 혈압이 정상 수치 이상일 경우, 가이드라인은 반드시 재방문을 통해 팔로업 검진을 받도록 하며 식습관의 변화와 신체활동 혹은 투약 등의 다양한 처방을 내리도록 하고 있다. 그런 치료에도 불구하고 지속적으로 혈압이 높다면 혈압이 높은 근본적인 이유를 찾으라는 것이 새로운 지침의 내용이다.

고혈압과 높은 혈압의 진단은 연속해서 3회 잰 수치가 모두 높게 나왔을 때 이루어져야 한다. 아이들은 의사를 만나는 것만으로도 스트레스를 받아서 혈압이 높게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시애틀 아동병원의 소아신장과 주임인 닥터 플린은 이를 정확히 알기 위해 혈압 수치가 높게 나온 아이는 무조건 이동 혈압측정기를 채우고 24시간 모니터하고 있다. 이들 가운데 30~40%는 ‘화이트코트 하이퍼텐션’(white-coat hypertension)이라고 부르는 진찰전 혈압 상승임이 밝혀진다고 한다. 이동 혈압 모니터는 스마트폰보다 약간 큰 기기로 아이의 평상시 활동과 수면 중에도 혈압을 측정하게 된다.

이 모니터를 사용하면 어린이가 혈압 측정을 위해 의사 만나는 횟수를 크게 줄일 수 있으며 가족뿐 아니라 의료 시스템에서도 비용과 스트레스를 많이 줄일 수 있다고 닥터 플린은 말했다.

<한국일보-뉴욕타임스 특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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