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외우기와 창의성

2017-10-21 (토) 김순진 / 교육심리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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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식 교육과 미국식 교육을 비교할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것이 교육방법의 차이이다. 한국에서도 최근 일부 학교에서 교육방법의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지만, 대부분의 학교에서 교사는 지식을 전달하고, 학생들은 그 지식을 외우는 것이 대세인 듯하다.

이같은 권위주의식 일방적 교육에 비해, 미국식 교육은 교사와 학생들 사이에 자유로운 질문과 응답, 토론을 통해서, 주제에 대한 이해를 돕고, 비판의식과 창의성을 개발시킨다는 것이 양국 교육방법의 차이로 지적되어왔다. 이 비교의 많은 부분이 사실이지만, 미국에서도 지역과 계층에 따른 여건의 차이 때문에, 자유로운 토론방식의 교육이 항상 실시되고 있는 것은 아니다.

하여간 한국식 외우기 학습은 비효율적이며, 미국식 자유로운 토론 방식은 창의성 개발을 촉진시켜 이상적이라는 것이 대세로 되어있다. 그러나 기계적으로 외운 지식은 학생들이 시험을 치고 나면 다 잊어버리는 시간 낭비적 학습법이라는 주장에 전적으로 동의하지 않는 학자들도 있다.


흔히 “뜻도 모르고 달달 외운다” 는 비판은 외우기의 단점을 과장한 비판이다. 초등학교에서 배우는 구구단으로부터, 중고등학교에서 배우는 과학, 역사 등 거의 무한한 양의 지식을 일일이 원리와 배경을 설명하며 가르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먼저 외워놓고 나중에 이해하는 것도 지식습득의 한 방법이 될 수 있다는 뜻이다.

이들 학자는 창의성과 외우기를 상반된 능력으로 보지 않는다. 창의성은 두뇌 속에 저장된 지식을 기반으로 생성 되는 능력으로 보기 때문이다. 비록 뜻을 모른 채 외웠다 해도, 이렇게 습득한 지식의 조각들은 두뇌 속에 들어가 저장이 되면서 서로 연결하고, 융합해서 새로운 지식을 생성 시키고, 이런 작용이 반복되면서, 어느 순간 “아하!” 하는 깨달음과 동시에 창조적인 아이디어가 생성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물리학자 뉴턴이 어느 날 나무에서 떨어지는 사과를 보고, 그 순간 중력의 법칙을 발견했다는 일화에는 중요한 부분이 빠져있다. 사과의 낙하현상을 목격했던 20대 중반 뉴턴은 이미 수학과 물리학에서 상당한 실력을 쌓은, 주목받고 있던 과학자였다. 축적된 지식 없이는 사과가 땅을 향해 떨어지는 현상과 중력의 법칙 사이의 연관성을 공식으로 성립시키는 일이 불가능했을 것이다.

살아가는데 필요한 모든 정보와 지식이 손바닥만한 전화기 안에 들어있는 세상에서 외우기 찬양을 하는 것은 분명 시대착오적인 사고이다. 그러나 새로운 세상을 만드는 창의성은, 두뇌 속에 외워놓은 방대한 양의 지식의 기반에서 생성된다는 이치를 기억할 필요가 있다. 무에서 유는 나올 수가 없기 때문이다.

셀폰의 출현으로 이제는 구구단을 외울 필요도 없고, 친지의 전화번호를 외울 필요도 없어졌다. 그러나 삶에 필요한 모든 정보를 셀폰에 의존한다면, 두뇌 속에 저장된 정보는 차츰 퇴화해서 무용지물이 되고, 더욱 위험한 것은 두뇌의 정보습득 기능자체가 퇴화한다는 것이다. 셀폰 속 지식은 충전된 전기와 함께 있었다가 사라졌다 하지만, 두뇌 속에 저장된 지식은 언제 어디서든지 꺼내서 쓸 수 있다. 셀폰이 두뇌의 대체물이 될 수는 없다. 아이들의 학습과정에서 외우기를 배제하면 안 되는 이유이다.

<김순진 / 교육심리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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