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윈체스터와 기관총

2017-10-12 (목) 윤여춘 시애틀지사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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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스베가스의 총기참사로 59명이 죽고 500여명이 부상당했다. 5년 전 샌디 훅 초등학교 사건(어린이 20명, 성인 6명 사망)과 10년 전 한인학생 조승희의 버지니아 텍 사건(32명 사망) 참살기록을 능가했다. 그래서 흔히 ‘사상최악’으로 불리지만 사실은 아니다. 이미 200여 년전 기병대의 토벌작전으로 인디언 원주민들이 수십, 수백명씩 한날에 도륙 당했다.

당시 기병대가 사용한 총은 1800년대 첨단무기였던 ‘윈체스터’ 연발장총이다. 활과 창뿐인 인디언들의 정복이 누워서 떡 먹기였다. 그래서 윈체스터는 ‘서부를 쟁취한 총’으로 떠받들린다. 남북전쟁 때도 영국제 ‘엔필드’ 장총이 주 무기였다. 탄환 아닌 탄약을 총구 속에 다져 넣어 발사하고, 총강을 꽂을대로 청소한 뒤 다시 탄약을 장전하는 ‘머스켓’총이다.

대형 총기참사가 날 때마다 대량살상 무기의 대중판매를 규제해야한다는 여론이 비등한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총기구입 허용연령을 주류구입처럼 21세 이상으로 제한할 것, 범프 스톡 같은 액세서리의 판매를 금할 것, 특히 탄창규격을 5~10발짜리 만으로 낮추도록 요구한다. 패덕은 범프 스톡을 사용해 50발 들이 탄창 수십 개를 개당 4초 만에 비웠다.


학생 12명, 교사 1명이 피살되고 21명이 부상당한 1999년 콜럼바인 고교 학살참사 때도 두 총격범이 탄창을 갈아 끼우는 틈을 타 도피한 학생들이 목숨을 구했다. 라스베이거스 사건에서도 패덕이 10발 들이 탄창을 일일이 갈아 끼웠다면 희생자가 줄었을 터이다. 총기구입 취지가 호신용 또는 방범용이라면 도대체 10발 이상의 탄창을 갖출 필요가 없다.

총기절도와 특히 어린이들의 오발사고를 막기 위해 스마트폰처럼 개인비밀번호(PIN)를 입력해야만 발사되는 ‘스마트 건’을 만들라는 제안도 나왔다. 연간 300여명의 사망자를 내는 사다리 사고를 줄이기 위해 장장 7페이지의 안전규정을 마련한 연방당국이 그보다 100배나 많은 인명을 빼앗아가는 총기사고를 줄이려는 노력은 왜 외면하느냐는 비난도 있다.

새 천년이 시작된 2001년 이후 16년간 미국에서 무려 200여만명이 총격 당했다. 매일 평균 92명, 연간 3만여명이 총에 맞아 죽는다. 1970년 이후 총기사고 사망자(자살?타살?오발 포함)는 독립전쟁을 포함한 미국역사상 모든 전쟁의 전사자 합계보다 많다. 미국 어린이들이 총에 맞아 죽을 확률은 다른 선진국가 어린이들보다 14배나 높다는 추산도 있다.

하지만 총기규제 여론은 자고로 정치인들, 특히 공화당 의원들에겐 마이동풍이다. 이번 사건에도 “불과 엊그제 일이고 수사가 진행 중이다. 입법조치 논의는 시기상조다”(미치 맥코넬 상원 공화당 대표), “이런 사건을 예방하려면 정신건강법을 개혁해야 한다”(폴 라이언 하원의장), “폭력은 언제나 우리 삶의 일부다”(테드 크루즈 의원) 등 동문서답이었다.

공화의원들은 거의 모두가 전국 총기협회(NRA)의 막강한 로비에 휘둘려 있다. 상원 원로인 존 맥케인(애리조나) 의원이 지금까지 NRA로부터 받은 정치자금은 무려 774만 달러 이상이다. 리처드 버(노스캐롤라이나) 상원의원은 590여만 달러, 로이 블런트(미주리) 의원은 455만여 달러를 각각 받았다. 프렌치 힐(아칸소) 하원의원도 약 110만 달러를 챙겼다.

제 1 수정헌법의 언론자유를 주장하며 국기배례를 거부한 풋볼선수들을 ‘개새끼’라고 욕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제 2 수정헌법의 ‘총기소지 자유’ 신봉자이다. 그는 김정은을 정신병자로 매도하고 그가 핵실험을 계속하면 북한을 “지도에서 없애버리겠다”고 호언했다. 대량학살의 공개위협이다. 응징대상인 김정은과 구제대상인 북한주민을 혼동하면 곤란하다.

<윤여춘 시애틀지사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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