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미국의 총기 범죄

2017-10-11 (수) 남선우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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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총기 범죄

남선우 변호사

닉슨 대통령이 임명했으니 보수적인 대법원장이었지만 워런 버거는 퇴임 직후 1990년에 PBS 공영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연방헌법 수정 제 2조가 제한을 받지 않는 총기 소유권을 시민들에게 보장하는 것이라는 견해에대해 “미국시민들에 대한 사기”라고 표현했다. “효과적으로 운용되는 민병대는 자유를 즐기는 주의 안전을 위해 필요하기 때문에 시민들이 무기를 소유할 권리는 침해될 수 없다”고 된 헌법 수정 제 2조는 그때까지만 하더라도 개인들의 무기 소유권에 관한 것이 아니라 공공질서 유지를 위한 것이었다는 것이 판사들과 학자들의 거의 공통된 견해였다.

그러나 1871년에 창설된 전국총기협회(NRA)가 안전한 총기사용을 확산시킨다는 창립 당시의 취지를 “법을 준수하는 미국 시민들의 헌법수정 제 2조의 권리를 보호하고 방어한다”는 목표로 대치한 20세기 하반기부터 NRA의 무규제 총기소유 캠페인과 입법 로비활동은 2008년에 획기적인 헌법해석을 낳은 토양과 분위기를 조성했다.

1962년 케네디 대통령의 암살, 1964년의 대통령 경선 후보였던 로버트 케네디의 암살 및 민권운동가 마틴 루터 킹 박사의 암살, 그리고 레이건 대통령의 암살 미수 등 외국에서는 드문 중대사건들이 있을 때마다 총기규제 필요성이 제기되었지만 결국 도루묵이 되어온 역사 뒤에도 NRA의 연방의회와 주 의회들에 대한 성공적인 로비가 있다.


2008년의 획기적 대법원 판례는 콜럼비아 지역(워싱턴 DC) 대 헬러라 불린다. 워싱턴 DC에는 1975년에 통과되고 시행되던 총기 규제법이 있어 무기를 개인집에 소유하려면 총알이 장전되지 않았거나 방아쇠에 대한 잠금장치가 있어야만 되게 돼있었다.

데이빗 헬러란 어느 정부기관의 경비원이 범죄가 많은 DC의 자기 동네에서 권총에 실탄이 장전돼있어야 안전하게 자기 집을 보호할 수 있다는 그럴싸한 주장을 펴서 그 법에 대한 도전을 시작한 사건에는 그밖에도 5명의 원고들이 있었던데 대법원까지 가려면 수백만 달러가 되었을 변호사 비용을 NRA가 지불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연방대법원은 무기를 소유할 권리가 민병대와 관계없이 개인의 권리이기 때문에 DC 법이 위헌이라고 5대4의 판결을 내렸다. 2010년에는 개인이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무기를 소유할 수 있는 권한이 헌법수정 제 2조에 보호되어 있다는 판례가 DC만이 아니라 모든 주에 적용되게 되었다.

지난 10월1일 밤 10시경 라스베가스에서 벌어진 살육은 59명이 죽고 500명 이상이 부상당한 미국 역사상 최악의 범죄였다. 64세였던 살인마 자신도 경찰이 범행 장소에 진입하기 전에 자살했기 때문에 그의 동기는 알 수 없어도 그가 꼼꼼하게 빈틈없이 대형 살인을 하기 위해 준비했던 것만은 분명하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그가 약 1년 동안 32점의 총기들을 사들일 수 있었다는 점이다. 현행법으로 아무 문제도 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가 반자동소총이 기관총이나 다름없이 연발을 할 수 있도록 하는 플라스틱 제품인 범프 스탁스(Bump Stocks)를 사용해 약 10분 동안 총들을 난사했다.

문제는 흉악한 총기사건들이 있을 때마다 제기되는 해결책들이란 게 땜질에 불과하다는 사실이다. 1996년 오스트레일리아에서 28세 된 청년이 35명을 사살한 사건이 발생하자 여·야 구별 없이 국민적인 공감대가 형성돼 획기적인 개혁을 했던 것을 미국이 본받아야 도움이 될 것이다.

하지만 그와 같은 극적인 변화는 미국에서 기대할 수 없다는 점에서 미국의 총기 비극은 계속 진행형일 것이다. 더욱이 트럼프가 탄핵이라도 돼 물러나게 되면 트럼프 지지자들의 무력시위도 배제할 수 없다는 전망기사가 뉴요커 등의 잡지에도 실리니 더욱 불안하다.

<남선우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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