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고독한 산책자의 명상

2017-10-10 (화) 민경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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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5년 7월 4일 미국 독립 전쟁의 도화선을 당긴 매사추세츠 콩코드 주민들이 독립 기념일을 축하하고 있을 때 청년 백수 한 명이 돈과 물질을 숭배하는 미국 사회로부터의 독립을 선언하고 인근 월든 호수가로 들어가 오두막을 짓고 고독한 산책자의 삶을 시작한다. 미국을 대표하는 초월주의자 문필가의 한 사람인 헨리 데이빗 소로가 그다.

‘자연 애호가들의 바이블’로 불리는 ‘월든’은 27살 난 소로가 이곳에서 2년간 생활하며 느끼고 경험한 바를 적은 명상록이다. 그는 이 책 앞머리에서 “나는 생의 핵심적인 것들만 대하며 사려 깊게 살기 위해 숲으로 갔다…죽음을 맞을 때 내가 헛살았다는 것을 발견하지 않도록”이라고 적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조용한 절망의 삶”을 살고 있다며 자신은 “깊게 살며 생의 골수를 모두 빨아 먹기 위해” 이곳에 왔다고 밝히고 있다.

소로가 살던 19세기 중반은 미국이 서부를 개척하며 영토적으로 비약적으로 팽창했을 뿐 아니라 급속한 산업화로 일반 미국인들의 생활수준이 크게 향상된 때이기도 하다. 사람들은 신천지 개척을 위해 서부로 떠나거나 새 산업 분야에 뛰어들어 부를 쌓는데 정신이 없었다.


그러나 이런 삶의 방식이 과연 바람직하며 인간의 진정한 행복에 기여하는지에 대해 회의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그 대표적인 그룹이 뉴잉글랜드를 중심으로 나타난 초월주의자(Transcendentalist)들이다. 에머슨을 필두로 한 이들은 맹목적인 부의 추구가 오히려 인간의 삶을 피폐하게 한다며 명상과 자연으로의 회귀를 통해 삶의 참된 목적을 찾을 것을 촉구했는데 그의 후배이자 제자인 소로는 이를 실천에 옮긴 셈이다.

그는 이를 위해서는 혼자 있는 것이 필요하다고 봤다. “나는 대부분 혼자 있는 것이 건강하다고 본다. 가장 훌륭한 사람들과도 함께 있으면 곧 지친다. 나는 혼자 있는 것을 사랑하며 고독만큼 친근한 벗은 없다”고 그는 적었다.

그러나 그는 자기가 살고 있는 사회와 담을 쌓고 산 은둔자는 아니었다. 그는 밀린 6년간의 인두세를 내라는 세금 징수원의 독촉을 받자 불법적인 멕시코와의 전쟁을 일으키고 노예제를 용인하는 연방 정부에 세금을 낼 수 없다며 거부하고 감옥에 갔다. 다른 사람이 대신 내주는 바람에 풀려나기는 했으나 이 때 경험은 그가 나중에 ‘시민 불복종’(Civil Disobedience)이란 글을 쓰는 계기가 된다. 그는 “불복종이야말로 자유의 기초며 복종만 하는 인간은 노예”라는 주장을 펼친다.

이 글은 당시에는 별 주목을 받지 못했지만 100년이 지나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인권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던 간디의 눈에 띄어 인도 독립 운동의 중요한 수단이 된다. 60년대 미국 민권 운동을 이끈 마틴 루터 킹 주니어도 이 글을 읽고 “불의한 정부에 복종하는 것은 불의”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미국 환경 보호 운동의 고전인 ‘조용한 봄’의 저자 레이철 카슨은 “나는 자기 전 소로를 읽는다”고 말할 정도로 그에 대한 각별한 애정을 드러낸 바 있다. 월든에 살면서 철에 따라 변하는 자연의 아름다움과 위대함에 관한 기록을 남긴 소로는 미국 환경 보호 운동의 선구자로 평가받고 있다. 때로는 고독한 산책자가 세상을 바꾸기도 한다.

월든 호수가 옆에는 작년 새 단장하고 문을 연 소로 기념관과 서점이 있다. 기념관에 전시된 기념물들은 이달 초 처음 설치된 것이라는데 모두 반짝반짝 빛난다. 소로의 뜻을 받들어 친환경 공법으로 지어진 이 건물에서 사용하는 전기는 100% 태양열 발전으로 생산하며 목조는 거의 대부분 인근 숲에서 자란 것을 이용했다고 한다.

건물내 상영실에서는 간디의 손자가 나와 소로가 할아버지에게 얼마나 큰 영향을 끼쳤는가를 설명하며 “세상의 변화를 원한다면 네가 스스로 보고 싶은 변화가 되라”는 간디의 말을 들려준다.

소로는 “깨어 있는 자에게만 해는 뜬다. 새벽은 더 온다. 태양은 아침에 뜨는 별일뿐”이라고 ‘월든’의 끝을 맺었다. 올해는 그가 태어난 지 200년이 되는 해다. 44세를 일기로 그가 간지 150여년이 지났지만 그가 사랑하던 월든 호수는 여전히 아름답고 평화롭다. “너는 깨어 있는 삶을 살고 있느냐”는 그의 목소리가 숲가에서 들리는 듯하다.

<민경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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