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생지옥의 밤, 영웅들이 있었다

2017-10-04 (수)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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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빗발치는 총탄속, 목숨 건 스토리들- 30세 남성, 30여명 대피 시키다 총탄에 부상

▶ 결혼 23주년 여행 남편, 부인 감싸 막고 숨져…해병대 출신 20대, 부상자 40여명 실어 날라

생지옥의 밤, 영웅들이 있었다

라스베가스 총기난사 참극 피해자들의 안타까운 사연들이 쏟아지고 있는 가운데 라스베가스 블러버드와 사하라 애비뉴에 마련된 추모 장소에 주민들이 촛불을 가득 놓고 희생자들을 애도하고 있다. [LA타임스]

결혼 23주년 기념으로 나선 라스베가스 여행길에서 벌어진 총기난사 현장서 부인을 살리기 위해 자신의 몸으로 총탄을 막다가 숨진 남가주 출신 54세 남편.

빗발치듯 쏟아지는 총알 속에서도 부상자들을 살리기 위해 30여 명이나 대피시키다 결국 총에 맞아 부상을 당한 남성 관객.

미 역사상 최악의 총격 사건으로 기록된 지난 1일 밤 라스베가스 총기난사 현장에서 생지옥을 경험했던 생존자들과 희생자들의 안타까운 사연들, 그리고 전쟁터처럼 참혹한 상황 속에서도 목숨을 걸고 다른 사람들 도왔던 사람들의 영웅적 스토리들이 속속 알려져 심금을 울리고 있다.


■“남편은 나의 영웅”

남가주 베이커스필드에 사는 잭과 로리 비튼 부부는 결혼 23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함께 나선 라스베가스를 찾았다. 그런데 휴일 밤 콘서트장에서 유명 가수의 공연을 보며 가진 즐거운 시간이 악몽의 현장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로리는 공연 도중 폭죽 터지는 소리 같은 게 들려 주변을 둘러보며 불꽃놀이 장면을 찾다가 팔에 뭔가가 뚫고 지나가는 걸 느꼈다. 그녀가 남편 잭에서 “폭죽이 아닌 것 같아”라고 말하는 순간 남편이 “엎드려, 엎드려”라고 소리치며 자신의 몸으로 로리를 감쌌다.

로리는 “남편이 ‘아이 러브 유, 로리’라고 말하며 팔로 나를 감싸는 순간 남편의 몸이 축 처지는 것을 느꼈다”며 “남편의 이름을 부르며 비명을 질렀지만 대답이 없었고, 또 다시 갈기는 듯한 총성이 들리면서 누군가가 달리라고 해 뛰어 도망갈 수밖에 없었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팔에 총상을 입고 가까스로 대피한 뒤 이후 남편의 행방을 찾던 로리는 결국 검시국에서 남편의 사망을 확인한 뒤 “건설 일을 하던 남편은 평생 내게 조건 없는 사랑을 주던 사람이어서 이번 일도 놀랍지 않다. 그는 나의 영웅”이라고 말했다.

또 테네시주 출신 남자 간호사 소니 멜튼은 사건 당시 아내 헤더와 함께 있었다. 헤더는 남편이 자신의 목숨을 구했다고 말했다. 그녀는 “남편이 등에 총을 맞았다고 느꼈을 때, 그는 내 손을 잡고 달렸다”고 말했다.

■대답 없는 안부 인사들


지난 1일 오후 라스베가스의 루트 91 하베스트 페스티벌의 무대 앞에서 빛나는 태양 아래 남녀가 어깨를 껴안고 환하게 웃고 있다. 페이스북에 올라온 이 사진 아래 친구의 댓글이 달렸다. “너희 둘 다 괜찮은 거지?…” 그러나 대답은 없었다.

사진 속 주인공 토니 부르디투스는 사진을 찍은 지 얼마 후 아내 드니즈를 잃었다. 토니는 “드니즈가 내 품에서 숨졌다”며 “두 아이의 엄마이자 곧 할머니가 될 예정이었고, 32년간 함께 산 아내를 잃었다”고 슬퍼했다.

시미밸리 교육구 직원으로 컨트리 음악의 엄청난 팬이었던 수잔 스미스는 친구가 좋아하는 음악을 찾아 콘서트장에 왔다가 변을 당했다. 초등학교 행정 관리자였던 스미스에 대해 그의 동료는 “아이들과 직원들에게 잘해주고 이곳 교육 커뮤니티에 없어서는 안 될 존재였다”고 애도했다.

■현장의 영웅들

복사기 수리를 하는 조나단 스미스(30)는 형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라스베가스를 찾았다. 총성이 울리자 처음엔 폭죽이라고 생각하고 음악을 즐겼지만, 총성이 끊이지 않고 무대가 중단되고 불이 꺼지자 비로소 뭔가 잘못됐다는 걸 알았다.

그는 사람들 손을 붙잡아 주차장 쪽으로 이끌었고, 완전히 몸을 숨기지 못한 어린 소녀들을 데리고 오는 등 목 등에 총을 맞기 전까지 30명의 목숨을 구했다. 스미스의 사연은 트위터 등 온라인에서 ‘영웅’으로 불리며 빠르게 퍼져갔다.

그는 워싱턴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나는 영웅이 아니며, 그저 누군가 나를 위해 똑같이 하길 바랄 뿐”이라며 “누구도 컨트리 음악 축제에서 생명을 잃을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미 해병대 출신의 타일러 윈스턴(29)도 총알이 쏟아지는 속에서도 40명이 넘는 부상자들을 트럭으로 실어날라 치료하고 보살핀 영웅적 행동이 알려져 칭송을 받고 있다.

살육의 현장에서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사람들도 있다. 알래스카에서 온 부동산 에이전트 롭 매킨토시(52)는 여러번 총알을 맞았지만 목숨은 건졌다. 그의 친구 마이크 밴시클은 “가족들과 전화를 끊자마자 몸에 총을 세 번이나 맞았다”며 “수술 후 회복 중”이라고 말했다.

한편 온라인에서는 희생자와 그 가족들을 위한 모금이 펼쳐지고 있다. 펀딩 플랫폼 중 하나인 고펀드미(GoFundMe)에는 이번 사고로 숨진 희생자의 남겨진 가족들을 위한 모금이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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