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가족 이민사를 들려주자

2017-10-03 (화) 민병임/뉴욕지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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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4일은 음력 8월15일로 추석이다. 한국에서는 10일간의 추석 황금연휴로 미국으로 단기여행 오겠다, 제주도 펜션에서 보내겠다, 남해안을 돌겠다 등등 계획이 많다. 미국에 사는 우리로서는 10월4일이 수요일이라 아침이면 정해진 시간에 출근을 해야 하고 보통 때처럼 저녁 늦게까지 일해야 한다.

그래도 이민 1세 중에는 ‘추석날 아침에 차례 지내고 조금 늦게 출근한다’고 말하기는 그렇다며 새벽 6시에 차례를 지내고 가게 문을 열러가거나 직장에 출근하는 이도 있다. 그러자면 차례상에 올릴 음식은 이번 주말에 만들거나 그 전날 밤새워 만들어놓아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

추석이 다가와서인지 지난 주말에 롱아일랜드지역 무궁화동산에 가보니 한인들이 조상의 묘소를 찾아와서 꽂아놓은 노랗고 붉은 국화 화분들이여기 저기 놓여서 주위를 환하게 밝혀주고 있었다. 미국에 와서 산 세월이 오래 되고 나이가 들어갈수록 한국적인, 지극히 한국적인 것이 좋다는 이들이 제법 있다. 한국을 방문해서는 한옥 고택에서 하룻밤 자고 싶어 하고 풍성하고 여유 있는 생활한복을 입고 싶다고도 하고 자녀들에게는 경복궁과 인사동거리를 한복 입고 거닐고 사진 찍는 한복 일일체험을 권유한다.


나도 지난여름, 한국을 방문하여 경북 의성의 부모님 성묘를 다녀오면서 안동 하회마을 북촌댁에서 한옥체험을 했다. 이 집은 220년 된 고택으로 문신 류사촌이 정조21년(1797년)에 건립한 집으로 우리 가족 8명은 큰 사랑과 작은 사랑에 하룻밤 묵었다.

6칸 사랑방은 가장 웃어른이 거주하던 곳으로 새하얀 호청으로 싼 이부자리, 12폭 묵매도 병풍(김홍도 모사작)과 고가구, 고문서들이 놓여있었다. 넓은 대청마루의 앞과 뒤 여닫이문, 미닫이문을 모두 열자 나지막한담장 뒤로 산과 부용대, 넓은 마당이보였다. 바람이 마당과 뒤뜰 양쪽에서 들어와 서로 소통했다. 나무와 흙, 짚과 닥종이로 지어진 집이 숨을 크게 내쉬었다. 뒤뜰의 300년 된 소나무는 마치 낙동강 강줄기 흐름처럼 자연스레 구부러져 어찌나 잘 생겼는지, 먼지 냄새, 나무 냄새, 골동품 냄새가 함께 나면서 딸아이는 대청마루에 벌렁 누워 “너무 좋아, 너무 좋아”를 되뇌었다.

또한 서울에서는 경복궁과 북촌 가는 길에 한국, 미국, 중국이나 인도, 중동 등등 피부색이 다른 다양한 인종들이 저마다 예쁜 한복을 입고 여기저기서 사진을 찍고 있었다. “오늘 여기서 무슨 잔치해? 행사 있어?” 했더니 인근 한복집에서 반나절이나 하루 동안 한복을 대여하여 한복 체험을 하는 이들이라고 했다.

경복궁 입장료 3,000원을 주고 들어가 고종이 가비(현재 커피)를 마시고 책을 읽었다는 집옥재와 팔우정을 갔으나 그날따라 문을 닫아 고궁에서커피 마시는 운치를 포기해야했다. 정갈한 북촌마을 찻집 안에도 연한 컬러와 금박 포인트, 화사한 한복차림으로 담소를 나누는 젊은 커플의 모습은 참으로 신선했다.

미국에 돌아오니 추석을 앞두고 한국 마트에는 벌써 햅쌀과 햇과일이 나왔다. 11월의 추수감사절이 미국에 사는 우리에게 최고 명절 중 하나지만 한국의 추석을 그냥 보내기도 섭섭하니 추석 전후 주말에 일가친척들을 불러 모아 밥 한번 먹는 것은 어쩔까.

우리 조상들은 전통 명절인 추석이면 아무리 어렵고 가난하던 시절이라도 이웃과 함께 음식을 나누어 먹었다. 이날 후손들이 모이면 연, 탈 만들기, 윷놀이, 송편 만들기, 한복 입는 법 등 우리 문화와 예절에 대해서 알려주자. 특히 미국에 첫 발을 디딘 한인이민사, 한인들의 이민사, 우리가족의 이민사를 들려주자.

한국에서 선조의 고향은 어딘지, 어떻게 미국으로 와 살게 되었는지를 알게되면 할아버지, 할머니, 이모, 고모, 삼촌, 사촌들의 존재가 새삼스럽게 다가올 것이다. 자신의 뿌리를 확인하고 가족 간의 더욱 깊은 우의와 사랑을 다지는 기회도 될 것이다.

<민병임/뉴욕지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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