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과 8월은 십 수 차례 반복되는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으로 바빴다. 오리엔테이션 일정 중에는 대학생활에 대한 프레젠테이션도 있다. 학생들에게 내가 하는 이야기의 초점은 하나다. “많이 힘들 것이다. 마음 단단히 먹어라.”
몇 달 전까지 고등학생이던 신입생들은 대학생활에 큰 기대를 가지고 온다. 먹고 자고 친구들과 지내는 생활을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고 어른으로서 혼자 힘으로 한다는 기대로 흥분한다. 그들은 막상 공부에 대해서는 그다지 큰 걱정을 하지 않는다. UC 입학이 보장되는 자격인 고등학교 성적 상위 12.5%의 신입생들은 아마도 평생 쉽게 A와 B학점을 받아왔을 것이다.
고등학교에서 매주 30시간 수업을 받던 학생들은 대학교에 들어와서 매주 15시간만 교실에 앉아있으면 된다. 그렇지만 15시간만 공부하면 된다는 뜻은 절대 아니다. 우리 학교는 수업 1시간마다 2시간의 자체 학습을 기대하고, 교수들은 그 기대에 맞춰 시험문제를 제출하고 채점한다. 15시간 수업을 한다면, 추가로 30시간을 공부해서, 도합 45시간을 학습하도록 되어있다.
학생들은 이 말을 믿지 않는다. 따로 공부를 하지 않던 고등학교 시절을 생각하고 수업시간에만 들어가서 앉아 있다가 결국 충격적인 낮은 학점을 받고 경악하는 학생들이 생각보다 많다.
대학교에서 성적이 잘 나오지 않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 우선, 그들이 중고등학교 시절에 C-D-F 학점을 깔아주던 동급생들이 더 이상 같은 학교에 다니지 않는다. 대학교에서 동급생들은 자신들과 같이 쉽게 A-B 학점을 맞아오던 학생들이다.
성적을 고등학교 시절과 비슷하게 유지하기 위해서는 고등학교 시절보다 공부를 더 해야 하고, 성적을 올리고 싶다면 그보다 훨씬 더 공부를 해야 한다. 자율적으로 매주 30시간을 공부하기는 매우 어렵다. 일단 그렇게 자율적으로 공부하는 습관을 가지고 있는 학생은 드물다.
그런데 어른이 되어 자율적으로 생활하게 된 새내기 대학생에게 공부하기란 더더욱 어렵다. 그 어려움 속에는 진화적인 배경이 있다.
인간에게 18-22세, 평균적인 대학생의 나이는 학습하기에 가장 어려운 나이다. 동물들에게 대부분의 학습은 자라는 과정인 성장기에 일어난다. 머리와 몸이 커지면서 다양한 정보를 습득하고 응용하는 연습을 하는 것이 성장기이다. 학습은 놀면서 이루어진다. 어린 동물들이 놀기 좋아하는 이유다. 강아지를 키워본 사람들은 잘 안다.
인간 역시 그러하다. 생물인류학적으로 인간 성장의 완성은 사랑니가 나는 시점인 18세이다. (물론 현대인의 사랑니는 일정에 맞춰 나오지 않는 경우가 많지만, 이는 지난 1만 년가량 농경의 본격적인 시작 이후의 현상이다.) 대학 신입생의 평균 연령이다.
초등학생들은 학교에 가는 일이, 배우는 일이 즐겁다. 그리고 2차 성징이 나타나기 시작하고 어른이 되는 본격적인 준비기간인 사춘기를 겪으면서 대부분의 학생들은 어른이 되어서 할 수 있는 재미있는 일들이 하고 싶어진다. 어른의 일이란 바로 짝을 지어서 새끼를 치는 일이다. 짝짓기와 상관없는 내용의 학습은 점점 지겨워진다.
학습이 지겨워지고 어른의 일이 재미있어지는 자연의 흐름을 거스르고 중고교 시절에 어찌어찌 좋은 성적을 유지했다면 그동안 부모, 선생님들의 회유와 협박이 효과를 봤을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대학교에 입학하여 아무도 매일매일 회유와 협박을 하지 않는 생활 속에서 학생들은 어른으로서의 재미난 생활에 쏠리는 흥미와 관심을 누르고, 공부를 하겠다고 자발적으로 결정하고 실행에 옮겨야 한다. 다양한 방법을 시도하면서 자신에게 맞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이 과정에서 많은 학생들은 시행착오를 거친다. 어떤 학생들은 착착 앞으로 나아가지만, 어떤 학생들은 실패 과정을 거듭하면서 멀리 돌아가는 길을 택하기도 한다. 돌아서 가더라도 가면 된다. 그러나 그 과정은 다른 누구도 대신해 줄 수 없다.
오리엔테이션 중 여기까지 이야기하면 학생들과 학부모들은 모두 걱정근심으로 얼굴이 어둡다. 그러면 나는 한번 더 강조한다. 신입생들은 이제부터 자신이 결정하고 자신이 나아가야 한다. 부모들이 대신 살아줄 수 없다. 마음 단단히 먹자. 그래야 4년 뒤, 졸업식장에서 의젓하게 졸업장을 받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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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희 / UC 리버사이드 인류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