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다시 갈라서는 미국

2017-08-22 (화) 윤여춘 / 시애틀 지사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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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한 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한국이 옛날엔 중국의 일부였다더라” 라고 뚱딴지같은 말을 해 한인들의 울분을 샀다. 정상회담 도중 시진핑으로부터 들었다고 했다. 시진핑의 엉터리 역사지식이 한심했지만 트럼프가 그 말을 언론에 흘린 속내가 더 아리송했다. 두 정상이 마주 앉아 한국의 고대역사를 공부했을 리 만무하다.

트럼프는 타고난 장사꾼이다. 뭐가 자기에게 이득이 될지 본능적으로 간파한다. 당시 중국은 미국의 한국 내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 방어체계) 배치계획에 신경질을 냈고(지금도 여전하다), 트럼프는 진작부터 사드배치 비용 10억 달러를 한국에 요구할 속셈이었다. 한-중 양국을 이간질시켜 관계를 악화시킨 뒤 어부지리를 취하겠다는 계산이었던 것 같다.


요즘 트럼프의 이간질 때문에 미국이 남북전쟁 후 150여년 만에 다시 둘로 갈라지는 듯한 모양새다. 그는 지난 12일 버지니아주 샬러츠빌에서 난동을 벌인 백인우월주의자들(KKK)과 이들에 맞서 시위를 벌인 시민들을 싸잡아 비난했다. 그 시위에서 신 나치(neo-Nazi) 계열 청년이 반대시위 진영으로 자동차를 돌진시켜 여성 한명이 숨지고 여러 명이 다쳤다.

트럼프는 샬러츠빌 사태 후 발표한 첫 성명에서 양쪽 시위대를 두루뭉수리 나무랬다. 말도 안 된다는 비난여론이 들끓자 그는 14일 또 성명을 내고 KKK와 신 나치를 지목하며 “인종차별은 악”이라고 톤을 높였다. 하지만 그는 이튿날 뉴욕 사저에서 기자들을 만나 다시 양비론으로 회귀했다. 신 나치 그룹보다 더 폭력적인 ‘대안 좌파’들이 많다고 주장했다.

백인우월주의자들은 샬러츠빌에 세워져 있는 로버트 리 남부군 사령관의 동상이 철거되는 것을 막으려고 전국 각지에서 몰려들었다. 이들은 공공연하게 남부국기와 나치 깃발을 휘날리며 히틀러 식 경례를 주고받았다. 동상 철거를 트럼프는 ‘바보 같은 짓거리’라며 여전히 인종차별주의자들 편을 들었다.

트럼프는 지난해 대선에서 미국사회를 분열시키고 백인우월주의자들을 부추겨 당선됐다. 그의 양비론 주장은 인종주의자들의 환심을 사기 위한 생존전략이다. 지지율이 30%대로 떨어지고 특별검사가 대선 당시 자신의 러시아 결탁의혹을 조사하는 등 취임 후 고작 200여일 만에 총체적 위기에 처한 자신을 밀어줄 유일한 계층이 바로 백인우월주의자들이다.

‘스와스티카’(나치 문장)와 남부국기를 흔드는 사람들만 백인우월주의자는 아니다. 인종차별은 미국 건국 이전부터 뿌리내린 고질이다. 소위 WASP(백인 앵글로색슨 신교도)만 주인행세를 했고 아일랜드·이탈리아·폴란드 등 천주교 계열의 유럽 이민자들은 백인 취급도 못 받았다. 최근 ABC 여론조사에서도 인종주의 경향이 있음을 자인한 응답자가 적지 않았다.

트럼프가 원래 인종차별주의자라는 것은 본인만 빼고 모두 인정한다. 그는 1970년대 아버지와 함께 뉴욕에 지은 1,800 유닛의 대형 아파트에 흑인들의 입주신청을 거절했다가 연방법무부에 기소돼 벌금을 물었다. 당시 인기 포크싱어 우드 거트리는 ‘올드 맨 트럼프’라는 노래를 지어 흑인 빈민들의 마음에 상처를 준 트럼프 부자의 인종혐오를 개탄했다.

하지만 트럼프의 분열작전은 이제 부머랭이 되고 있다. 공화당 중진들이 외면한다. 세계 각국 지도자들도 인종주의가 발붙일 땅은 없다며 비아냥한다. 애플의 팀 쿡과 페이스북의 마크 저커버그(유대인) 등도 비난대열에 동참했다. 워싱턴포스트는 “국민이 울 수밖에 없다”는 사설을 게재했다. 을사늑약을 개탄한 장지연의 ‘시일야방성대곡’을 연상케 한다.

그래도 트럼프는 달라지지 않을 터이다. 나라야 양분되든 말든 자기의 생존전략인 사회분열을 포기하지 않을 태세다. 공화당이 의회를 장악하고 있어 탄핵 위협이 적다. 실제로 그의 막말이나 거짓말이 탄핵 요건의 범죄는 아니다. 하지만 그도 닉슨처럼 사임하게 될지 모른다. 어쨌거나 확실한 건 그가 미국 역대 대통령 중 최악으로 꼽힐 것이라는 점이다.

<윤여춘 / 시애틀 지사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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