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천상 최대의 쇼

2017-08-22 (화) 민경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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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럼버스가 지구는 둥글기 때문에 서쪽으로 가도 아시아가 나온다고 주장했을 때 많은 사람들은 믿지 않았다. 지구가 평평한 것은 너무나 자명해 보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구가 둥글다는 것을 소수의 서양 지식인들은 오래 전부터 알고 있었다. 이에 대한 이론적 근거를 처음 명확히 제시한 사람은 그리스의 아리스토텔레스다. 그는 남쪽으로 내려가면 별의 위치가 달라지며 새로운 별이 나타난다는 점을 들어 지구가 둥글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무엇보다 이를 확실하게 보여준 것은 월식이다. 지구에 가려 달이 보이지 않게 되는 월식 때 지구 그림자가 둥글게 나타나는데 이는 지구가 둥글지 않으면 불가능하다. 달이야말로 지구의 참모습을 알려준 존재인 셈이다.

달은 때로는 인류에게 천상 최대의 쇼를 선물하기도 한다. 바로 지구와 태양 사이에 자신을 끼워 넣어 해를 완전히 가리는 개기일식이 그것이다. 차츰 달의 그림자가 해를 먹어들어가다 마침내 은반지 같은 고리만 남기고 온 세상이 밤으로 변한다. 새들도 지저귐을 멈추고 대지는 고요함에 휩싸이며 별들이 빛나기 시작한다. 해와 달의 이중무가 만들어내는 경이로운 장관이다.

개기일식은 사실 기적 중의 기적이다. 해의 직경은 달의 400배다. 그런데 공교롭게 해는 지구에서 달보다 400배 떨어진 곳에 있다. 이 두 숫자가 서로를 상쇄하는 바람에 지구에서 볼 때 둘의 크기가 같다. 그렇기 때문에 작은 달이 큰 태양을 완전히 가릴 수 있는 것이다.

개기일식은 자주 일어나지 않는다. 지구의 공전면이 달의 공전면과 일치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 면이 서로 만날 때만 개기일식은 일어난다. 이런 경우가 1년에 두번에서 다섯번 정도 있는데 이 때도 지구의 70% 이상이 바다고 나머지도 인간이 살지 않는 사막과 오지가 많기 때문에 보기가 쉽지 않다.

21일 미 전역이 일식 열풍에 휩싸였다. 아침 9시 6분 오리건에서 시작돼 오후 4시 6분 사우스캐롤라이나에서 끝난 개기일식 때문이다. 미 전역에서 개기일식이 일어난 것은 99년만에 처음이다. 이 천상 최대의 쇼를 보기 위해 세계 각국에서 관광객들이 몰려드는 바람에 오리건은 말할 것도 없고 아이다호와 와이오밍 등 시골 마을들까지 방을 구할 수 없거나 있더라도 하루에 1,000달러에서 2,000달러를 호가하는 등 북새통이고 하루 수십대가 오가던 곳에 수천대의 차량이 몰리는 바람에 극심한 교통체증이 벌어졌다. 그러나 이 장관을 한번 목격한 사람은 이런 수고를 아까워하지 않는다. 윌리엄스 칼리지의 천문학자 제이 파사코프 같은 이는 58년 동안 세계 방방곡곡을 누비며 65개의 일식을 구경했다.

미국 대륙을 가로지른 이날 일식 중 가장 극적인 장면을 연출한 곳은 미주리주 캔자스시티가 아닐까. 이곳은 아침부터 천둥 번개가 치며 폭우가 퍼부어 일식을 보러 먼 곳에서 온 이들을 절망시켰다. 그러다가 달이 해를 완전히 가리는 순간 하늘은 구름을 걷고 황홀한 은반지를 선사했다. 이어 달이 해에서 멀어지자 다시 천둥 번개가 치며 비가 쏟아졌다. 세상 일을 결정하는 것은 결국 하늘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가르치려는 하늘의 뜻으로 해석할 수밖에 없다.

모든 좋은 것은 끝이 있듯 이 쇼도 언제까지 계속되지는 않는다. 달의 인력으로 인해 생기는 조석 간만의 차로 지구는 100년에 100만분의 15초만큼 자전 속도가 늦어지고 달과의 거리는 1년에 2.2cm씩 멀어진다. 거기다 태양은 10억년에 5%씩 커지기 때문에 6억년이 지나면 달이 해를 가릴 수 없게 된다. 그 때가 되면 개기일식을 보고 싶어도 보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거기서 다시 10억년이 지나면 부푼 태양이 지구를 달궈 모든 바닷물은 증발하고 지구는 생명체가 살 수 없는 곳이 된다.

이번 일식을 놓친 사람들을 위해 다행히 7년 후에 다시 한번 개기 일식을 볼 수 있는 기회가 찾아 온다. 그 때는 텍사스에서 메인에 걸쳐 장관이 펼쳐진다. ‘Carpe diem’(Seize the day). 기회는 왔을 때 잡으란 말이다. 우리가 앞으로 지상에 남아 있을 날은 많지 않다.

<민경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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