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생명의 위기

2017-08-17 (목) 여주영 / 뉴욕지사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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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 의료봉사로 헌신하다 숨진 알베르트 슈바이처 박사는 인간의 생명을 누구보다 소중하게 여긴 인물이다. 그는 길거리를 다니다가도 어린아이가 발을 다칠까봐 항상 바닥에 떨어진 유리조각을 줍고 다녔다. 그가 인간의 생명을 얼마나 소중하게 생각했는가는 그의 생명 경외사상에도 잘 나타나 있다.

“나는 살려고 하는 여러 생명 중의 하나로 이 세상에 살고 있다. 생명에 관해 생각할 때, 어떤 생명체도 나와 똑같이 살려고 하는 의지를 갖고 있다. 다른 모든 생명도 나의 생명과 같으며, 신비한 가치를 가졌고, 따라서 존중하는 의무를 느낀다. 선의 근본은 생명을 존중하고 사랑하고 보호하고 높이는 데 있으며, 악은 이와 반대로 생명을 죽이고 해치고 올바른 성장을 막는 것을 뜻한다.”


우리 사회가 낙태, 안락사, 자살 외 장기매매나 인간의 신체를 어떤 목적으로 실험하는 모든 행위를 단호히 배격하려고 하는 것은 인간 생명에 대한 존엄성을 파괴하는 행위를 막기 위함이다. 하지만 지금 세상은 얼마나 많은 인간의 생명이 파리 목숨처럼 가볍게 취급되고, 마구 짓밟히고 있는가.

“결혼을 거절했더니 마당에 나를 묶고 목을 베려고 했다.” 수개월간 극단주의 무장조직 보코하람에 납치돼 성노예로 살았던 나이지리아 여성 메나쉬의 말이다. 그녀는 수차례 성폭행을 당한 뒤 손발이 묶인 채 흉기에 찔려 있었는데, 그 때 마침 공중에 비행기가 지나자 납치범이 이를 보고 놀라 도망가는 바람에 극적으로 목숨을 건졌다고 한다.

메나쉬는 함께 납치된 여동생과 생이별 상태에서 고향으로 돌아왔지만 ‘보코하람 매춘부’라는 딱지가 붙어 다시 쫓겨나는 신세가 되었다. 그녀는 지금 유엔인구기금 산하 지역 상담 캠프의 도움으로 간신히 목숨을 유지하고 있다.

인간의 고귀한 생명이 이처럼 열악한 가운데 놓여있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하지만 나이지리아, 케냐 등 아프리카 30여 개국을 포함, 중동, 아시아 등 모든 면이 열세인 지역마다 인간의 생명이 제대로 보호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분쟁과 빈곤에 시달리는 수많은 어린이와 노약자들, 특히 이슬람국가(IS) 만행에 시달리는 많은 청소년과 어린이, 그리고 여성들...

IS대원의 자살폭탄 테러로 자신은 물론, 무고한 사람들의 생명이 하루아침에 사라지는 사건들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이스라엘 국가안보연구소(INSS)의 분석 결과 지난해 자살폭탄테러로 목숨을 잃은 사람이 5,650명이나 된다고 한다. 이는 2년 전 4,330명이던 숫자에 비해 31%나 증가한 수치이다.

그런데도 분쟁과 빈곤에 시달리는 전 세계 여성 돕기 의료시설은 올해 말부터 대폭 줄어든다고 한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60여개국에 보내지던 88억달러의 원조자금줄을 끊으면서 나오는 결과이다.

이 시각 북한에서는 김정은의 압제와 횡포 아래 수많은 동족들이 값없이 죽어나가고 있다. 인간의 고귀한 생명은 경시하면서 정권과 체제만 유지하려는 북한정권의 태도는 용납되기 어렵다. 이것이 북한이 말하는 인민을 위한 정치이며, 가치인가?

북한은 인류보편적 가치아래 인권과 생명을 중시하는 기반 위에서 변화돼야 그것이 살 길이고 국제사회에서 대우받을 수 있다. 인민의 생명을 담보로 핵미사일 개발에만 몰두하며 지구촌의 평화와 안전을 위협하고 있는 것은 인류보편적 가치를 훼손하는 행위다.

그럼에도 북한은 지금 미국과 불안한 시소게임을 벌이고 있다.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도 북한의 김정은 못지않게 ‘화염과 분노’라는 표현까지 써가며 지구상에서 아직껏 보지 못한 재앙을 맛보게 될 것이라고 엄포를 놓고 있다. 이것이 정말 현실화 될 경우 얼마나 많은 인명의 손실을 가져올 것인가.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김정은은 죄 없는 생명을 죽음으로 모는 무모한 전쟁게임을 속히 멈춰야 한다.

“우리가 창조주로부터 받은 최고의 것은 생명이다. 이 생명을 사랑하고 보호하고 기르려고 하는 본성은 함부로 깨뜨리기가 어렵다. 그러나 생명 그 자체의 본질은 역시 신비임에 틀림없다.” 독일의 대문호 괴테의 말처럼 생명은 신비롭고 인간은 존엄하다.

<여주영 / 뉴욕지사 주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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